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당나라는 과거가 있을 때마다 외국인을 위하여 빈공과라는 별시를 보이는데, 헌덕왕 때 김운경(金雲卿)이 신라인으로서 처음으로 등과한 뒤 모두 58인이 합격하였고, 오대(五代)의 양(梁)과 당(唐) 때에도 32인이 합격하였다.
이들 합격자 중에서도 두드러지게 이름을 나타낸 십여 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886년(정강왕 1) 시전중감(試殿中監) 김근(金僅)이 경하부사(慶賀副使)로 당나라에 입조할 때 숙위학생으로 따라갔는데, 수학한 지 10년에 이르러 그 연한이 끝나 양영(楊穎)·최환(崔渙)·최광유(崔匡裕)와 함께 하정사(賀正使)인 급찬(級飡) 김영(金穎)을 따라 귀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