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후경(厚卿). 이행건(李行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이만웅(李萬雄)이다. 아버지는 이징하(李徵夏)이며, 어머니는 정보연(鄭普衍)의 딸이다. 김창흡(金昌翕)의 사위로서 김창흡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5년(영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어버이의 상을 당하여 복상 중이었는데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총융사 장붕익(張鵬翼)의 종사관으로 기복(起復)하여 반란군의 장수 이배(李培)를 잡아 난을 평정한 공을 세웠다.
이에 영의정 홍치중(洪致中)의 천거를 받아 북평사(北評事)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1732년(영조 8) 지평(持平)을 거쳐 정언(正言)을 오랫동안 지내면서 탕평책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한 때 이유신(李裕身) 부자의 무고를 받았고 만년에 외직을 원하여 부안현감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