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윤(公允), 호는 소암(小庵). 아버지는 이준성(李浚性)이며, 어머니는 하빈이씨(河濱李氏)로 진사 이시근(李時根)의 딸이다. 장복추(張福樞)의 문인이다.
이석균은 평생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면서 구국을 위해 애국 운동에 참가하였다.
곽종석(郭鐘錫)과 함께 최종적으로 성리학을 집대성한 마지막 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국운이 쇠퇴해 가고 왜세의 침략이 점점 노골화되어 가는 격변기에 사회·경제·문화·풍습 등 여러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황(李滉)의 이기설에 입각해 성리학을 재정립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고 노력하였다.
이석균은 훈고적인 측면보다 도(道)에 있어서 이(理)와 기(氣)의 근본 의미 파악과 실제 실천적 활용으로의 전이 과정 및 방법 등에 대해 깊이 천착하였다.
그 구체적인 연구로 정전(井田)제도를 연구했으며, 또 가례(家禮)와 향례(鄕禮)를 비롯해 예 전반에 대해 연구하면서 새로운 지평에서 예의 체(體)와 용(用)을 재정립하였다.
병법(兵法) 연구에 있어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팔진도(八陣圖) 외에 우리나라 고유의 오위진도(五衛陣圖) 등을 연구하였다. 곽종석이 주도한 구국항일운동의 일환으로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기로 서명 운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장례는 사림장(士林葬)으로 치러졌다.
이석균의 저서로는 『소암문집(小庵文集)』 10권 5책, 『주자어류고략(朱子語類考畧)』 9권, 『고략의견(考畧意見)』 1책, 『주자정전유설참고(朱子井田類說參考)』 1책, 『예기집설주소고략(禮記集說註疏考畧)』 1책, 『선성선사석전의(先聖先師釋奠儀)』 1책, 『가향이례고략(家鄕二禮考畧)』 1책, 『퇴도매화시차운(退陶梅花詩次韻)』 1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