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손 ()

이윤손 유서
이윤손 유서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공조참판, 형조참판, 한성부윤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시호
장간(章簡)
이칭
원손(元孫), 맹숙(孟叔)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14년(태종 14)
사망 연도
1467년(세조 13)
본관
가평(加平)
주요 관직
경상좌도병마절제사|공조참판|형조참판|한성부윤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공조참판, 형조참판, 한성부윤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가평(加平). 초명은 이원손(李元孫). 자는 맹숙(孟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춘계(李椿稧)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평의사사 이침(李忱)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이다림(李多林)이며, 어머니는 지금주사(知錦州事) 송리(宋理)의 딸이다. 동생은 우림위장 이형손(李亨孫)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53년(단종 1) 경상좌도병마절제사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첨지중추원사·호조참의를 거쳐, 1455년(세조 1)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평안도도절제사를 역임하였다.

1457년 한성부우윤을 거쳐, 이듬해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로 있던 중 진하사(進賀使)로 부사인 형조참판 송처관(宋處寬)과 같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중추원부사·한성부윤·경창부윤 겸 강원도도관찰사·병마도절제사 등을 지냈다.

1459년 호조참판에 이어 공조참판·형조참판·한성부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행상호군을 지냈다. 그 뒤 1461년(세조 7) 평안도관찰사·도진무(都鎭撫)·충청도도절제사를 역임하고, 1463년 지중추원사를 역임하였으며, 이듬해 충청도도절제사를 다시 역임하였다. 1466년에는 내금위장이 되었고, 이듬해는 중추부지사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참고문헌

『단종실록(端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천순원년이윤손유서(天順元年李允孫諭書)』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