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건함(建咸), 호는 심산(心汕). 아버지는 조인형(趙麟衡)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조임형(趙任衡)에게 입양(入養)되었다.
1910년 일본의 탄압이 있자 경술국치 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上海)의 임시정부(臨時政府) 요인에게 혈서로서 구국결심(救國決心)을 나타냈으나, 의기(意氣) 투합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혼자서 구국운동을 하다가 마침내 만주의 안동현(安東縣)에서 일경(日警)에게 체포 투옥되었다가, 의주(義州)로 이감되었다.
그 뒤 풀려나왔다가 다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어 갖은 고초와 협박을 당했으나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2년 동안 옥(獄) 중에서 경서(經書)를 암송하면서 홀어머니에 대한 효성이나, 형제간의 우애를 못한데 대한 한(恨)이 골수에 맺히어 시(詩)로서 그 애절한 심정을 달랬으며, 많은 순국선열의 행적으로 귀감(龜鑑)하기를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그 뒤 풀려나왔다가 1923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공교회(孔敎會: 중국의 유림을 진작시키기 위한 단체)의 주도(主度) 진환장(陳煥章)과 유학을 진흥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 가난하여 두 아이가 굶어 죽기까지 했어도 불의(不義)로 재물을 구하지 않는 청빈한 선비였다는 평을 들었다.
인술(仁術)을 잘하여 재물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데 썼다. 그러면서도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특히 경학(經學)과 역학(易學)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효제충신(孝悌忠信)과 덕행(德行)에도 힘썼다. 저서로는 『심산유고(心汕遺稿)』 6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