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응구(應久), 호는 몽은(夢隱). 검열 최해(崔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희증(崔希曾)이고,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최역(崔櫟)이며, 어머니는 희릉령(熙陵令) 이석(李晳)의 딸이다.
1576년(선조 9)에 사마시에 합격, 1585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감찰·형조좌랑·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1590년에는 병조정랑이 되어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전라도도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관찰사 이광(李洸)이 패주하자, 죽기를 맹세하고 전주 사민(士民)에 포고하여 힘껏 싸워 전주를 수호하였다. 1597년 수원부사로 임명되고, 1599년 내자시정(內資寺正), 1601년에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호조참의로 전임되었다.
1604년에 춘천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1608년 선조가 죽자 풍수지리설로 산릉(山陵)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가 소를 올려 의논을 정하게 한 바 있다. 저서로는 『몽은집(夢隱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