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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질(假質)

    조선시대사개념용어

     병자호란 뒤인 1638년 대신들의 적자를 대신하여 청나라에 잡혀갔던 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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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조선시대사
    유형
    개념용어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병자호란 뒤인 1638년 대신들의 적자를 대신하여 청나라에 잡혀갔던 인질.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병자호란으로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던 인조는 1637년(인조 15) 정월 삼전도(三田渡)에 나와 항복하고 청나라의 요구대로 11개항의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 가운데 세자와 다른 왕자, 그리고 여러 대신들의 아들을 인질로 보내기로 한 약속에 따라 그해 두 왕자, 즉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주 01)을, 이듬해에 여러 대신들의 아들을 심양(瀋陽)에 인질로 보냈다.
    그런데 1640년 이들이 대신들의 적자가 아닌 서출·양자 또는 문중의 먼 자제라는 사실이 탄로나게 되었다. 즉, 평성부원군 신경진(申景禛)은 그의 얼손(孽孫), 판중추부사 심열(沈悅)은 첩자(妾子), 병조판서 이시백(李時白)은 서자를 보냈으며, 그밖에도 인질을 대신 보낸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그 책임을 물어 완성부원군 최명길(崔鳴吉), 이조판서 이경석(李景奭), 전 형조판서 홍보(洪○), 공조판서 남이공(南以恭), 병조판서 이시백 등을 파직하여 중도(中道)에 귀양보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뒤의 효종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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