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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통(家統)

    가족개념용어

     유교적 가계전승 양식으로서의 집안의 내림 또는 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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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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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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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교적 가계전승 양식으로서의 집안의 내림 또는 계통.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역사적으로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가계전승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계전승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생명의 전승을 통한 인간의 자기 보존본능 때문이고, 이차적으로 생활공동체로서 가정이 갖는 사회적·경제적 기능의 중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각 문화권에 따라서 가계전승의 구체적인 모습은 다양하게 전개되며, 그것에 부여되는 의미의 경중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가계전승의 전통은 민족고유의 전승양식과 유교적 전승양식이 복합된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기록에 의하면 민족고유의 전승양식은 남계(男系)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경우에 따라 여계(女系)에 의한 가계전승을 허용하고 있다. 데릴사위제도라든가 여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 등에서 그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 건국 이후로 우리에게 크게 영향을 끼친 유교적 전승양식은 남계에 의한 전승만을 허용하고 있으며, 여계에 의한 전승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계에 의한 전승에서는 혈통의 친소(親疏)를 매우 중요시한다.
    우리가 흔히 가통이라고 할 때는 그러한 유교적 가계전승 양식을 가리킨다. 그것은 곧 성리학이 수입된 이후에 형성된 가계전승양식이다. 고려 말에 수입된 성리학은 그 사상체계의 핵심이 통의식(統意識)에 있다. 성리학의 본체론인 『태극도설』은 태극-음양-오행-남녀-만물-인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면서 가통의 시원과 전승에 대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성리학의 심화는 가통의식의 심화를 가져온다.
    조선시대에는 모든 사회제도가 성리학 중심으로 전환됨에 따라 사대부들 사이에는 유교적 가계전승을 중시하는 가통의식이 성장한다. 즉, 가통을 받들어 모시기 위한 가묘(家廟)를 세우고, 가통을 기록하기 위한 족보를 만들고, 가통에 대한 유교적 상례와 제례를 가다듬을 뿐 아니라 가통을 잇기 위한 입후(立後)가 성행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가통의식은 조선 초기에는 사대부들을 중심으로 성장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는 일반 서민층에까지 확산되어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으로 자리잡는다. 한편, 조선시대의 이러한 가통의식은 생활규범과 사회제도로 정착되어 사회 전체를 통제하고 이끌어가는 기능을 수행한다. 가통이 가지는 사회적인 성격은 다음과 같다.
    ① 부계를 통해서만 전승된다. 생명을 낳은 사람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낳고 어머니는 기른다〔生之鞠之〕’는 생각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가통을 이을 수 있는 사람은 남자뿐이며 여자는 가통의 전승에서 제외된다. 그 때문에 여자는 자연히 남자에게 종속하는 위치에 서게 되며, 따라서 여자는 왕이 될 수 없고 가정의 주인도 될 수 없다. 여자는 어릴 때는 친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지아비를 따르고, 지아비가 죽고 나면 아들을 따라야 한다. 그러한 부계전승의 원칙 아래 남아선호, 남존여비 등은 당연한 결과였다.
    ② 가통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가통을 잇지 못하는 것은 최대의 죄악이었다. 남자는 아들을 얻기 위하여 첩을 거느릴 수 있는 데 반하여, 여자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집에서 쫓아내는 구실로 삼는다. 때로는 입양으로 가통을 잇는다. 일단 입양하고 난 뒤에는 친자(親子)가 태어나더라도 입양한 아들이 적자가 되고, 친자는 다음 서열이 된다. 그것은 가통의 기준이 혈통의 친소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③ 가통은 정당한 생명의 전승관계에 따라야 한다. 부정한 관계나 비정상적인 관계에 의한 생명의 전승관계로부터 구별된다. 정처·양첩·천첩의 구별이 있고, 그로부터 출생하는 자녀 또한 적자·서자·얼자(孼子)로 구별한다. 여기서 전승의 정당성과 관련된 적서 차별이 생겨난다.
    ④ 가통은 그 중심에서 얼마나 멀고 가까운가에 따라서 엄격한 친소본말론(親疏本末論)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통의 중심에서의 거리는 촌수로 구별된다. 삼촌·사촌·오촌 등의 촌수가 사람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됨으로써 가통에서의 거리가 바로 사람을 파악하는 기준이다.
    그러한 기준에 따라 일차적으로 유복친(有服親)과 무복친(無服親)으로 구분하고, 이차적으로 유복친은 다시 오복(五服)으로 구분된다. 거기서 친소를 무시하고 먼〔疏〕 사람을 가까운〔親〕 사람과 동등하게 대하거나 후대하면 패리(悖理)가 된다.
    ⑤ 가통은 빛내어야 한다. 따라서 선비들은 입신하여 후세에 이름을 떨쳐야 한다. 즉,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내는 한편 부모를 영화롭게 하여야 한다. 한편, 선비들은 가통을 드러내기 위하여 족보와 문집을 간행하고 비각과 비석을 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가통의식은 오늘날에 와서는 크게 약화되었다. 그것은 사회적 여건의 변화에 따른다. 특히 기독교 및 개인주의 등 서구적 가치관의 수용과 도시화·공업화 등의 급격한 사회변동 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가통의식은 아직도 우리들의 의식 속에 남아 있다. 남아선호사상·남자호주제도·족보간행·종친회 등이 그 좋은 보기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朝鮮時代선비精神硏究-統意識을 中心으로-(崔鳳永,정신문화연구 18,韓國精神文化硏究院,1983)

    • 韓國家族制度硏究(金斗憲,서울大學校 出版部,1980)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최봉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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