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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문좌부(開門左符)

    조선시대사물품

     조선시대 도성의 폐문 시간에 긴급한 일로 성문을 열고자 할 때 사용하던 부험(符驗)의 좌편(左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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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시대 도성의 폐문 시간에 긴급한 일로 성문을 열고자 할 때 사용하던 부험(符驗)의 좌편(左篇).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443년(세종 25) 교어부(交魚符)라는 명칭으로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원형의 목제 표찰로서, 초기에는 한 면에 전자(篆字)로 ‘信符(신부)’라 쓰고 뒷면에는 압인하였으나, 후기에는 한 면에 ‘某更符驗(모경부험)’이라 쓰고 뒷면에 해당 문 이름을 새겼다.
    이를 두 쪽으로 나누어 좌부는 궁중에 비치하고, 우부는 수문장들에게 교부하여 유사시 서로 맞추어보고 문을 열어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선전표신(宣傳標信)주 02)과 함께 제시해야 유효하였다.
    이것들은 정문(正門)주 03)에서 사용되는 것이었으며, 간문(間門)주 04)에는 따로 개문표신이 사용되고, 부험은 필요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는 야간의 시간대[更]마다, 또 성문마다 사용되는 부험이 정해져 있었다. 부험은 문을 연 뒤에 곧 반납하고, 표신은 일이 끝난 뒤에 반납하게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확인표찰
    주02
    승정원에서 왕명으로 발부하는 특수표찰
    주03
    4대문
    주04
    4소문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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