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황산진구전투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황산진구전투(黃山津口戰鬪)

    고대사사건

     77년(탈해이사금 21)에 황산진구에서 있었던 신라와 가야의 전투.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황산진구전투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77년(탈해이사금 21)에 황산진구에서 있었던 신라와 가야의 전투.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황산진구는 지금의 경상남도 양산과 김해 사이의 낙동강 하류로서, 황산진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황산강상류가 되는 양산 서쪽 40리에 있다고 한 가야진(伽倻津)으로 추정된다.
    당시 신라는 가야연맹체의 동쪽 국경인 황산강을 장악하여 가야지역 진출의 발판으로 삼는 한편, 황산강을 봉쇄하여 상류와 하류를 잇는 가야연맹체의 수운교통을 차단시키고, 또 해상으로는 가야세력이 일본열도로 진출하는 것 및 일본과 교섭하는 것을 저지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기 77년 8월신라의 아찬(阿飡) 길문(吉門)이 거느린 신라군이 황산진구에서 가야병과 싸워 1,000여 명을 죽이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길문은 이 공으로 파진찬(波珍飡)으로 승진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도학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