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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사태(KBS事態)

    현대사사건

     1990년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 대한 KBS 노동자들의 방송민주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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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KBS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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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에 대한 KBS 노동자들의 방송민주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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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990년 최초의 민선사장으로 노조와 대화를 통해 KBS를 이끌던 서영훈 사장은 노사합의로 지급된 법정수당 1억여 원이 잘못 지급되었다는 혐의로 정부로부터 사퇴압박을 받았다. 정부는 2월 8일 감사원을 통해 특감을 실시했으며, 언론을 통해 KBS의 방만한 경영을 문제 삼았다.
    3월 2일 서영훈 사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3월 3일 KBS노조는 ‘KBS 자주수호 사원비상총회’를 열어 700여 명의 사원이 참여한 가운데 “정부의 방송공사에 대한 외압중단” 등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3월 8일 이사회에서 서영훈 사장의 사표가 수리되고, 4월 3일 이사회가 3차 투표 끝에 서기원을 사장으로 임명제청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노조는 ‘KBS비상대책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농성을 확대했다. 4월 4일 조합원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서기원 출근저지 특별감시조’를 편성해 서기원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기로 결의했다.
    4월 11일 출근하려던 서기원 사장이 저지조에 막혀 출근하지 못하자, 4월 12일 서기원 사장은 청원경찰 30여 명과 실장, 국장 200여 명의 호위 하에 사장실로 진입했다. 이어 경찰백골단 300여 명이 사내에 진입해 조합원들을 폭행하고 117명을 강제로 연행했다.
    공권력 난입사태에 맞서 KBS노조는 4월 13일 조합원 4,000여 명이 참여한 ‘전국비상사원총회’를 개최하고 서기원 퇴진과 구속자가 석방 될 때까지 송출기술부를 제외한 전원의 방송제작 거부를 결의했다.
    KBS노조의 투쟁에 대해 CBS, MBC노조가 동맹제작거부를 결의하고, 실장, 국장들마저 사원요구 관철과 공권력 개입반대를 결의하는 등 서기원 퇴진여론은 점점 힘을 얻어갔다. 그러나 정부는 4월 20일 밤 11시 15분 전경 3000여 명을 방송공사 본관에 투입해 조합원 333명을 연행했다.
    5월 1일 MBC노조는 KBS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즉각적인 연대제작거부에 돌입했다. 또한 KBS비대위 역시 MBC로 사무실을 옮겨 5월 2일 양 방송사 노조의 연대로 ‘구속동지 석방축구 및 노태우정권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5월 4일 KBS비대위 위원장이 연행 당하자, KBS노조는 김철수 신임 비대위 위원장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정비해 언론민주화와 국민의 방송을 위한 국민걷기대회, 서기원 퇴진 100만 명 서명운동 등을 벌였다.
    KBS방송민주화투쟁은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국민에게 고발하는 성과를 남겼지만, 5월 7일 MBC노조가 제작복귀한 데 이어 KBS노조도 5월 17일 제작복귀를 선언함으로써 종료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5년)
    유경순(역사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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