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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江陵神福寺址石造菩薩坐像)

    조각문화재 | 유물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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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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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정면
    이칭
    신복사지 석불좌상
    분야
    조각
    유형
    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지정부류
    보물
    지정번호
    제84호
    , 유물
    성격
    불상
    시대
    고려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보물 제84호. 높이 181㎝.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제87호) 앞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데, 근처의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 개태사 석조보살좌상(머리 부분 결손)과 함께 고려 초에 조성된 독립 공양상으로서 주목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이 보살상은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과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처럼 원통형의 높은 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관 위에 천개(天蓋)가 놓여 있기 때문인지 관은 높이도 낮고 약간 뒤로 젖혀진 모습이다. 관의 표면과 관 위의 천개 안쪽에 커다란 구멍들이 있는데, 금속 장식을 달기 위하여 뚫었던 듯하다.
    부드럽고 복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입을 안으로 꼭 다문 천진한 모습은 예천 청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24호)의 입 모양과 흡사하다. 눈썹은 초승달 같은 곡선을 이루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귀의 양 끝에 구멍이 뚫려 있어 금속제 귀걸이를 끼웠던 것으로 보인다. 편평한 목 위에 선각(線刻)으로 층을 이룬 삼도(三道)를 새겼고 무늬 없는 목걸이와 팔찌를 두르고 있다.
    두꺼운 천의를 어깨와 가슴에 둘렀다. 왼팔을 무릎 위에 올리고 모아 쥔 두 손은 가슴에 꼭 붙이고 있으며 손에 뚫린 큰 구멍에는 지물(持物)의 손잡이였던 금속주(金屬柱)가 남아 있다.
    이 보살상은 원형의 대좌받침이 있는데, 안이 움푹한 원래의 연화대좌에 이것을 끼워 넣게 되어 있다. 현재 대좌받침의 앞부분이 없어졌다. 대좌 위에는 두 개의 금속주가 있어 원래는 대좌받침 촉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대좌가 정확히 맞추어져 있지 않아서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연화좌 밑에는 폭이 좁은 중대석이 있고 거기에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 넓은 팔각형의 지대석이 묻혀 있으며 복련(覆蓮)주 01)의 하대가 있었을 것이지만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풍만한 신체와 다정한 얼굴에서 상당히 인간적인 분위기를 준다. 그러나 반타원형으로 조각된 보발(寶髮)이나 규칙적인 간격으로 나누어진 옷주름 등에서 약간 형식화된 점이 발견된다. 같은 강원도 명주 지방에서 제작된 한송사지 보살좌상이 보여주는 신라적인 요소가 차츰 사라지고 양식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초기 10세기 후반의 작품이라고 생각되며, 한송사지 보살좌상, 월정사 석조보살과 함께 고려 초기에 강원도 명주 지방에서 유행하던 불상 양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예술총람』고려편(예술원,1964)

    • 「고려초기 명주지방의 석조보살상에 대한 연구」(최성은,『불교미술』5,동국대학교박물관,1980)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최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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