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탑의 높이는 1.7m이고, 구조는 모든 부재의 평면이 8각으로서 기단부 위에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얹었으며,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형성한 형태이다. 본래 남아 있는 기단 아래에는 지대석(地臺石)과 하대석 하나가 더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승탑와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실상사 승탑(보물 제33호)와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형태는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짜여져 있다.현재의 기단부는 상대석·중대석·중대받침(하대석으로 보기도 함)으로 구성되었으며, 중대받침 각 측면에는 1좌씩의 사자상(獅子像)을 돋을새김하여 모두 8좌인데, 이들은 모두 동적인 자세이다. 상면에는 중대석을 받는 3단의 받침을 똑같은 높이와 형식으로 마련하였다.
중대석은 낮은 편으로, 각 면에 안상(眼象)을 오목새김하고 그 안에는 각기 연(輦)·향로(香爐)·화문(花文) 등을 조각하였는데, 특히 연은 연좌와 보개(寶蓋)·보주(寶珠)·화문 등으로 장식되었다.
상대석은 아래에 8각으로 3단 받침을 마련하였는데, 이것은 중대석 받침대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측면은 원형을 이루었고, 여기에는 단엽의 앙련(仰蓮)을 이중으로 조각하였는데, 상·하열에 16판씩이고 연판 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형태는 풍려한 편이다. 상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원형으로 낮은 받침으로 1단 돌리고, 그 중앙에 8각으로 원호와 각형의 2단 받침을 마련하여 8각의 탑신굄대를 받치고 있다.
탑신굄돌은 딴 돌로 조성하여 끼운 것이며, 각 측면에 안상을 1구씩 오목새김하고, 그 내면에 연화좌 위에 앉아 있는 천부상(天部像)을 1구씩 조각하였다. 측면 상단은 갑석형을 이루었으나 부연(副椽) 등의 받침단은 없으며, 상면에는 8각으로 원호와 각형의 2단 받침을 마련하여 8각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은 승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목조건축의 팔각당(八角堂)을 그대로 돌에 옮겨 좋은 듯, 이 부분에서는 목조가구(架構)의 형식을 많이 볼 수 있다. 각 면에 양
우주(隅柱)주 01)를 세우고 앞뒤에는 문비형(門扉形)을 새겼다. 문 안에는 자물쇠와 문고리 두 개를 돋을새김하였으며, 상부에는 양쪽에 굴곡이 있는 호형(弧形) 안을 화문으로 장식하였다.
문비 양쪽에는 각기 사천왕상을 배치하였는데 매우 도드라지게 새겼으며, 각 상의 표현은 원형두광과 무기·갑주(甲胄)·머리모양, 천의의 휘날리는 모습, 돌출된 대좌 등에서 매우 사실적이다. 탑신 면 양 우주 아래로 하방(下枋)을 돌리고, 상부에 인방(引枋)과 평창방(平昌枋)을 건너지르고 있음은 목조 건물의 벽면을 연상시킨다.
옥개석은 탑신 위에 놓이는 하면 부분에 낮은 1단의 받침을 조출하고, 호형을 이룬 처마 부분에는 비천상을 조각하였는데, 전면이 아니고 1면씩 건너 4면에만 배치하였다. 그리고 추녀에 이르는 하면에는 각형 서까래를 모각하였다. 옥개 상면은 8면의 합각에 굵은 우동형(隅棟形)을 표시하고, 낙수면에는 기왓골을 조각하였으며, 그 끝은 막새기와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각 우동 끝에는 원각(圓刻)한 잡상(雜像)을 배치하였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추녀는 거의 수평으로 모서리에 이르러 약간 곡선을 보이는데, 각 전각(轉角)에는 별다른 조각 장식이 없다. 이와 같이 옥개석의 서까래와 기왓골, 암막새기와형, 우동형의 모각과 잡상의 배치 등은 목조 건축을 충실하게 모방하고 있는 양식이라 하겠다. 옥개석 정면(頂面)에는 8각으로 높직한 1단의 받침을 마련하여 상륜부를 받치게 되어 있으나, 현재는 상륜부재가 하나도 놓여 있지 않다.
이 승탑을 경복궁으로 옮기기 이전에 촬영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사진을 보면, 옥개석 정상에 3석의 상륜부재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복발(覆鉢) 1석과 보륜(寶輪) 2석으로 복발은 거의 공모양이며, 하단에 단엽의 앙련이 조식되고 중간에는 원좌화문(圓座花文)과 두 줄의 횡대(橫帶)를 돌려 표면을 장식하고 있으며, 보륜 2석은 같은 형태로서 8모서리에 귀꽃을 조각하였다. 이들은 현재 모두 행방을 알 수 없으나, 다른 석조승탑들의 상륜 고찰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