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갈항사(葛項寺)

불교유적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승전이 창건한 사찰.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갈항사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김천 갈항사지 전경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승전이 창건한 사찰.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삼국유사(三國遺事)』 의해편 ‘승전촉루(勝詮髑髏)’조에 의하면 갈항사(葛項寺)는 신라의 승려 승전(勝詮)에 의해 창건되었다. 승전은 의상(義相)의 제자이며, 당에 유학하여 현수 법장(賢首法藏)에게 수학하였던 화엄종의 승려이다. 승전은 귀국하면서 법장의 저술인 『탐현기(探玄記)』, 『교분기(敎分記)』, 『기신소(起信疏)』 등과 함께 법장이 의상에게 보낸 서신도 함께 가져왔다. 또한, 승전은 갈항사에서 ‘석촉루(石髑髏)’, 즉 돌 80여 개를 대상으로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표현으로 보아 승전은 80권본 『화엄경』을 중시한 것으로 보인다.
갈항사는 처음 작은 절로 개창하였다가 758년(경덕왕 17)에 중창되었다. 갈항사 삼층석탑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영묘사(零妙寺)의 언적(言寂) 법사와 조문 황태후(照文皇太后), 경신태왕(敬信太王) 등이 중창에 관여하였다. 경신이 원성왕(元聖王)의 원래 이름이므로 삼층석탑은 원성왕의 재위기간인 785년부터 799년 사이의 시기에 조성되었다. 따라서 갈항사 중창은 삼층석탑을 세운 시기와 탑에 명문을 새긴 시기, 총 2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언적과 원성왕의 어머니 박씨 계오부인(繼烏夫人)인 조문 황태후 형제가 중창을 주도하였으며, 이들이 사찰의 중창 내력을 탑에 새긴 것은 원성왕이 즉위한 이후였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9 ‘불우(佛宇)’조에 갈항사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까지는 사찰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갈항사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므로 폐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장충식
개정 (2017년)
조명제(신라대학교 교수, 한국 불교사)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