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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실왕(嘉悉王)

    고대사인물

     삼국시대 가야의 제7대(재위:421~451)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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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가실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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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
    가보왕
    분야
    고대사
    유형
    인물
    성격
    성별
    출생일
    미상
    사망일
    미상
    시대
    고대-삼국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삼국시대 가야의 제7대(재위:421~451) 왕.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금관가야(金官加耶)에 관한 기록인「가락국기 駕洛國記」에는 가실왕의 이름이 보이지 아니하므로 금관가야를 제외한 다른 가야국의 왕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대가야(大加耶)의 왕이라는 견해, 또는 아라가야(阿羅加耶)의 왕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는 가실왕은 곧 금관가야의 취희왕(吹希王)이라는 견해도 있다. 당나라의 악기 쟁(箏)을 보고 열두달의 악률(樂律)을 형상하는 십이현금(十二弦琴), 곧 가야금(加耶琴)을 만들었다. 또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다르므로 성음(聲音) 또한 일정하게 할 수 없다고 하여 악사(樂師)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십이곡을 만들게 하였다.
    이때 우륵이 지은 열두곡은 「하가라도 下加羅都」·「상가라도 上加羅都」·「보기 寶伎」·「달이 達已」·「사물 思物」·「물혜 勿慧」·「하기물 下奇物」·「사자기 師子伎」·「거열 居烈」·「사팔혜 沙八兮」·「이혁 爾혁」·「상기물 上奇物」 등이었다.
    가야가 망하게 되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투항하였는데, 신라의 진흥왕은 그를 국원(國原)에 두고 가야의 음악을 계승케 하였다. 우륵과의 관계를 보면 가실왕은 신라 진흥왕과 같은 시기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상·하가라의 시조설화(上·下加羅의 始祖說話)」 ( 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박영사,1976)

    • 「우륵십이곡의 해석문제」 ( 백승충 ,『한국고대사논총』 3,1992)

    • 「金官國の世系と卒支公」 ( 村上四男 ,『朝鮮學報』 21·22合輯,1961)

    • 「加羅諸國の史的發展について」 ( 鬼頭淸明 ,『朝鮮史硏究會論文集』 11,1974)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신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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