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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영정(孤雲影幀)

      회화문화재 | 작품

       신라 말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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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고운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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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말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영정.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 세로 105㎝, 가로 74㎝.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일곡동 학남서원 계동사(1882년 건립)에 소장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원래 해인사에 있었던 것을 구한말 일본인들이 약탈해 갈 것을 우려하여 최씨 문중에서 해인사와 교섭하여 낮실(日谷) 마을로 옮겨 영정각(影幀閣)을 세우고 보존해 왔다고 하니, 원래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었던 본의 모본(模本)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치원의 초상화는 이곳 말고도 전라북도 정읍시 무성서원을 비롯해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달성군최치원 사당, 전라북도 단동사, 경기도 포천시 청성사, 경상남도 창원시 고운영당 등 전국 도처에 봉안되어 있다.
      화면의 왼쪽 상단에 세로로 ‘신라최선생고운지진영’(新羅崔先生孤雲之眞影)의 제기(題記)가 쓰여져 있다. 고운은 검은 사방모(四方帽)에 녹색 도포를 입고 오른손에 깃털 부채를 쥐고 편안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파초선을 든 동녀(童女)가 시립(侍立)해 있으며 왼쪽에는 청자 그릇에 담은 석류를 공양하는 동자상(童子像)이 그려져 있는데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이 중국풍이다.
      무성서원이나 청성사 등에 전하는 최치원상이 관복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인데 비해 이 본(本)은 선명한 극채색을 사용하고 뒷배경도 진홍색을 칠해 사대부의 초상화라기 보다는 무속화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경주 최씨 시조인 최치원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해 활약했다. 876년(헌강왕 5년) 당나라에서 지은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은 뛰어난 문장으로 유명하다. 28세에 귀국하여 「시무 10여조」 등을 올려 분열되어 가는 통일신라 말의 난세를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끝내 절망하여 각처를 유랑하다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전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01년)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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