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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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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그마한 집모양으로 생긴 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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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집모양으로 생긴 탈 것.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안에 사람이 들어 앉고, 앞뒤에서 두 사람 또는 네 사람이 밑에 붙은 가마채를 손으로 들거나 끈으로 매어 운반한다. 대개 가마뚜껑과 가마바탕 및 가마채로 이루어지고, 여기에 방석이 곁들여진다. 가마의 범주에 드는 것은 연(輦)·덩·가교(駕轎)·사인교(四人轎)·보교(步轎) 등이 있다.
가마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신라 기와에 바퀴 달린 연 비슷한 것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구려의 안악3호분(安岳三號墳) 전실 서측벽에 있는 「주인도 主人圖」와 「부인도 婦人圖」에는 호화로운 가마에 앉아 있는 주인과 부인의 모습이 각각 그려져 있다.
『고려도경』에도 채여(采輿)·견여(肩輿) 등을 비롯한 고려시대의 가마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의 품계에 따라 수레나 가마를 타는 데 차등을 두었던 교여지제(轎輿之制)가 있었다.
이에 따르면, 평교자(平轎子)는 일품과 기로(耆老), 사인교는 판서 또는 그에 해당하는 관리, 초헌(軺軒)은 종2품 이상, 사인남여(四人籃輿)는 종2품의 참판 이상, 남여는 3품의 승지와 각 조의 참의 이상, 장보교(帳步轎)는 하급관원이 탔다.
한편 가마를 타고 대궐의 문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은 삼정승과 조선 말기의 청나라 공사에 한정되었다.
조선시대의 가마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연 임금이 타던 가마로 덩 비슷한데, 좌우와 앞에 주렴(구슬을 꿰어 만든 발)이 있고, 헝겊을 비늘모양으로 늘이었으며, 두 개의 채가 길게 붙어 있다.
(2) 덩 공주나 옹주가 타던 가마로 연과 비슷하다.
(3) 가 교 임금이 타는 가마로, 두 마리의 말을 앞뒤에 한 마리씩 두어 말 안장의 양편에 채의 끝을 걸어 멍에하고, 앞뒤 양쪽에 각각 거덜이 서서 채가 흔들리지 않도록 껴누르고 간다.
(4) 사인교 앞뒤에 각각 두 사람씩 모두 네 사람이 메는 가마로, 혼인 때 신랑·신부가 주로 이용한다.
(5) 초 헌 외바퀴 수레로, 긴 줏대에 외바퀴가 밑으로 달려 있고, 앉는 곳은 의자 비슷하게 되어 있으며 위는 꾸미지 않았다.
(6) 남 여 의자 비슷하게 생긴 것의 밑에 두 개의 약간 긴 채를 꿰어 붙인, 포장이나 덮개가 없는 작은 가마이다.
(7) 삿갓가마(草轎) 초상 중에 상제가 타던 가마로, 가장자리에 흰 휘장을 두르고 위에 큰 삿갓을 덮은 것처럼 꾸몄다.
(8) 용정자(龍亭子) 나라의 옥책(玉冊)·금보(金寶) 등 보배를 운반할 때에 사용하던 가마이다.
(9) 채 여 왕실의 의식이 있을 때에 귀중한 물건을 실어 옮기는 데에 사용하던 가마로, 채가 달려서 앞뒤에서 메게 되어 있다.
(10) 갸 자 음식물을 실어나르는 데에 사용하던 들것으로, 두 사람이 가마 메듯이 하여 나른다. 묘를 지을 때에 흙을 담아 나르기도 하고, 추수할 때는 곡물도 담아 나르기도 하여 다양하게 쓰인다.
(11) 보 교 모양이 정자(亭子) 지붕모양으로 가운데가 솟고 네 귀를 내밀었으며, 바닥은 소의 생가죽 올로 가로 세로로 엮어서 만든 것이며, 바닥·기둥·뚜껑 등을 조립식으로 만들었다.
(12) 장독교(帳獨轎) 뒷부분 전체가 벽이고 양옆에는 창을 냈으며, 앞쪽에는 들창처럼 버티게 된 문이 있고, 뚜껑은 지붕처럼 둥그스름하게 마루가 지고 네 귀가 추녀처럼 되었으며, 바탕의 바닥은 살을 대었는데, 전체가 붙박이로 되어 있다. 사람이 없을 때는 소 등에 올려서 고정을 하고, 한 사람이 뒤채를 잡고 조정하며 간다.
가마를 메고 갈 때는 권마성(勸馬聲) 소리를 한다. 권마성이란 임금이 말이나 가교를 타고 거동할 때나 봉명관(奉命官)·수령 및 그들의 부인이 쌍교(雙轎)를 타고 행차할 때, 위세를 더하기 위하여 앞에서 하졸들이 목청을 가늘고 길게 빼어 부르던 소리이다. 임금이 거동할 때에는 사복(司僕)·하인들이, 그 밖의 경우에는 역졸들이 불렀다.
민간에서는 가마를 메고 가다가 맞은편에서 낯모르는 가마가 오게 되면 길을 비키지 않고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마끼리 맞대고 밀어붙이며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기세에 밀리거나 싸움에 지면 가마에 타고 있는 사람이 운수가 사납고 불길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쪽으로 승화된 것으로, 우리 민속에 가마싸움이라는 놀이가 있다.
팔월 한가위 명절에, 수십명의 학동이 한패가 되어 영기(令旗)·청도기·청룡기·백호기·주작기·현무기 등을 앞세워 양쪽 기수가 앞에 서고, 뒤에서는 가마를 메고 마을을 한바퀴 돌고 나서, 상대편의 가마와 맞부딪쳐 먼저 많이 부순 편이 이기게 된다.
앞에 가는 가마꾼이 “어이야” 하면 뒤에 따르는 사람이 “어이야 네 말 좋다 자랑마라, 내 말 좋다 자랑마라”라는 노래를 흥겹게 부른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박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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