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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육(家庭敎育)

교육개념용어

 가정에서 일상생활을 통해 행하여지는 자연발생적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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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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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일상생활을 통해 행하여지는 자연발생적인 교육.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가정교육은 비형식적·자연적으로 이루어지면서도 그 교화력은 전인격적인 범위까지 미치게 된다. 단일한 분야나 특수한 기능에만 교육을 한정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 목표나 방법도 가정마다 서로 다른 양상을 나타내게 된다.
현대가정교육은 학교교육의 효과를 강화, 실천하면서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학교교육에서는 성취되기 어렵거나 미진한 정서·예절·품위·도덕 등 인격형성에 치중할 것이 기대되고 있다. 따라서 부모 자신들이 바람직한 모델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원시시대의 가정교육은 정신적인 풍요보다는 생존에 관한 것이 중심을 이루었다. 신체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데 필요한 훈련이나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는 데 필요한 예전의식(禮典儀式)의 훈련,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관습·금기(禁忌)·억제 등에 관한 훈련이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는 자녀에게 나무나 흙·돌·뿔 등으로 수렵 및 생활에 필요한 도구의 제작법과 사용법을 비롯하여 농사짓는 법, 고기잡는 법, 옷감 만드는 법, 사냥하는 법, 전투방법 등을 모두 포함하여 가르쳤다. 또한, 천재지변 등의 두려움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제사의식을 가르치는 한편, 의식에 필요한 노래와 춤 등도 가르쳤다.
특히, 사나운 동물을 만나거나 전쟁에 임해서 살아남기 위한 훈련에서는 자녀가 두려움 없이 단련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부모를 때리는 연습을 시키고, 좀더 자라면 부모가 자녀를 때려서 인내심과 신체를 단련시키는 특이한 방법도 취하였다.
교육은 주로 부모가 맡았는데, 아버지는 전투·농사·사냥·도구제작·제사의식 등에 관한 것을 지도하였고, 어머니는 가정관리법과 자녀양육법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뒤에 성년식이 사회행사로 첨가됨에 따라 성년식에 대처하는 교육도 함께 하게 되었다.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생존권을 보호한 삼국시대 전후에는 가정교육이 생활 전영역에서 크게 축소되어 문무(文武)의 교육과 도덕교육 등으로 집약되었다. 그 구체적인 교육양상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료 등을 통해서 볼 때 충효와 도덕교육, 정절교육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공자는 『예기』에서, 우리 나라의 대련(大蓮)과 소련(小蓮)이 부모상을 당하였을 때 3년 동안 눈물만으로 지새웠음을 밝히고 효의 표본으로 삼았다.
또한, 김유신이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 기생 천관(天官)과 관계를 끊은 것이나 아들 원술(元述)이 전장에 나가서 죽지 않고 돌아오자 가훈인 충효를 어겼다고 하여 천륜을 끊은 것, 효성이 지극하였던 의자왕이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리웠던 것 등은 당시의 가정과 사회에서 효가 얼마나 강조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일례이다.
그리고 최치원이 “집에 들어가면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한다. ”고 한 것이나, 충담(忠談)이 「안민가 安民歌」를 지어서 ‘임금은 아버지’라고 한 것 등에서는 충과 효, 가족윤리와 국가윤리를 일치시키려 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가정교육에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강조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사회에 그것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서 漢書』 지리지에 의하면,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았고 도둑질을 하지 않는 백성’이라 하였으며, 『동국통감』에는 낙랑인들이 밤에 신라 변방을 침임했다가 사람들이 문을 잠그지 않고 잘 뿐 아니라 들에 곡식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물러갔다고 하였다.
또, 『신이경 神異經』에는 곤경에 처한 이가 있으면 누구라도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며 남을 비방하지 않는 민족이라 하였으며, 『삼국사기』에는 사다함(斯多含)과 무관랑(武官郎)의 신의에 대한 철저한 의식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당시의 가정에서 행했던 도덕과 인의에 관한 교육이 사회에 어떻게 반영되었던가를 증명하는 것들이다.
또한, 『삼국지』·『후한서』 등에서 우리 민족의 용맹과 소년들의 씩씩함 등을 찬양한 것으로 보아, 당시의 가정에서 남자아이에게 특별히 강조했던 덕목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삼국지』와 『산해경』에서는 “민족의 기질은 어질고 나라 안에는 군자가 많이 산다.”, “서로 즐겨 사양하고 다투지 않는다.”,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한걸음을 멈추어 타인에게 양보하였다.”는 등의 기록으로 보아 인(仁)과 겸양 등이 가정교육에서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가정에서는 남녀 모두에게 효(孝)·충(忠)·신·의·용(勇)·인 등이 사회생활과 국가를 위한 기본적인 교양으로 교육되었으며, 가무(歌舞)와 산천의 순례는 정서생활과 품성을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행하여졌다. 특히, 여자에게는 정절에 관한 것과 바느질·길쌈·가사돌보기 등의 교육에 크게 치중하였다.
도화녀(桃花女)가 왕에게 불려가서, “여자가 지킬 것은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인데, 아무리 천자의 위엄을 가졌다고 해도 유부녀를 어쩌지는 못한다.”고 한 것이나, 김유신의 여동생 아해(阿海)가 남녀유별론을 이유로 들어서 김춘추의 옷을 꿰매주지 않은 것 등이 좋은 예이다.
또한 문희(文姬)가 혼인 없이 임신하였다고 해서 화형으로 다스림을 받게 된 것, 선화공주가 서동과 내통했다는 소문 때문에 쫓겨나게 된 것 등의 고사들은 여자가 지켜야 할 정절과 용기, 혼인의 예절에 대한 태도교육 등이 가정에서 충실히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가락국 왕후 허씨의 덕행과 혁거세의 비인 알영(閼英)의 덕행 등은 성모숭배사상 (聖母崇拜思想)과 함께 여자를 위한 가정교육의 표본으로 강조되었으며, 여자에게 노래와 춤, 심신수련을 위한 옥외활동을 시킨 것은 이 시대 가정교육의 큰 특징이었다.
과거제도가 실시되어 인재를 등용하였던 고려시대에는 과거의 과목인 문무의 교육이 가정교육의 큰 특징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교육에서 소임을 분담하여 엄부(嚴父)·자모(慈母)의 상호보완적인 구실을 수행했던 점에서는 고대의 가정교육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남자에 대한 교육은 아버지가 담당하여 문무의 교육, 미래의 가장으로 키우는 교육, 정서교육 등에 치중하였다. 문무의 교육은 과거시험에 대비해서 강화된 것이다. 고려 초기의 역대 임금들이 문치(文治)를 강조함에 따라 가정교육은 글읽기 등에 치중하였으며, 자연히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대도윤리(大道倫理)에 바탕을 둔 인격형성과 사회질서의 근본원리를 가르쳤다.
특히, 상류층 가정에서는 과거에 대비하여 가정교육의 방향을 조화있는 인·의·예·지·신의 실천에 두었고, 서민층에서는 의학이나 기술 등 생계와 직결되는 교육에 중심을 두었다.
그러나 무신정권 이후의 상류층 집안에서는 무예에 대한 교육도 크게 성행하였고, 무예를 가르치기 위해서 특별히 무사를 집안에 두기도 하였다. 가장으로 만드는 교육은 아들을 아버지의 조수로 삼아 아버지의 행동을 모방하는 가운데 스스로 터득하는 방법을 취하였으며, 때때로 적절한 상벌을 내렸다.
정서교육은 학교에서도 가르쳤던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육예(六藝)를 비롯하여 차전놀이·바둑 등의 기예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여성에 대한 가정교육은 어머니의 책임 아래 이루어졌다.
가정은 여자들의 모든 교육을 전담하는 학교로서 고대와 마찬가지로 가사관리·육아·요리·베짜기·바느질 등을 가르쳤으며, 일부 상류가정에서는 교양으로 글읽기와 유서(儒書) 및 불경도 가르쳤다. 정서교육에 있어서도 고대와 같이 활달한 기질이 전승되어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윷놀이·쌍륙 등은 가정에서 즐긴 여성놀이였으며, 애정이 깃든 노래 등도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연등회·팔관회 등의 불교행사와 명절행사에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가서 정서교육의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근친혼·동성혼·일부다처제가 유행했던 당시 사회에서 정절에 관한 교육이 특별히 강조되었다는 전거는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가사 등을 볼 때 남녀 애정관계에 대한 교육은 오히려 자율적이고 활발한 양상을 띠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에 도입된 유교윤리는 조선 초기부터 실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유교의 윤리를 실제행동규범으로 제시한 『소학』이 필독의 책으로 채택되었으며, 억불숭유정책이 국시(國是)로 정해짐에 따라서 가정교육도 그 양상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특히, 조선은 문중을 중요시하는 대가족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씨족단위가 하나의 가정이 되어서 독특한 가정교육을 하게 되었다. 가부장제 사회였으므로 원칙적으로 가정교육의 책임자는 아버지였지만, 잘못하는 자녀에 대해서는 친척 중 어느 누구도 그 잘못을 꾸짖거나 타일렀으므로 부모 없는 자녀에게까지도 가정교육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남자에 대한 가정교육은 대체로 유교의 기본윤리인 삼강오륜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국가의 윤리와 사회의 윤리가 일치되었던 이 시대에는 아버지에 대한 자식의 도리와 임금에 대한 신하의 도리를 하나로 받아들였으며, 남편과 부인 사이에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 있고,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지켜져야 할 도리와 친구 사이에서 지켜야 할 의리 등은 당시의 전통 사회 속에서 남아의 필수적 역할교육으로 강조되었다.
따라서 가정에서도 삼강오륜의 준수는 그 어느 교육보다도 우선적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남자에게는 대가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을 효도의 기본으로 삼았고, 가장의 임무라고 가르쳤다. 또한 군자의 도를 존숭하여 아들에게 군자가 될 수 있는 갖가지 덕목을 가르쳤으며, 이를 가훈으로 남겨 후세에까지 널리 준수하도록 하였다.
가훈에 의하면, 기존질서의 준수를 위한 것, 자녀교육에 대한 것, 몸가짐과 마음가짐, 건강관리·대인관계·재산관리·관혼상제, 관직에 임하는 자세 등을 광범위하게 교육시켰음을 살필 수 있다.
아들의 정서생활과 심신단련을 위해서는 고려시대와 같이 육예를 가르쳤으며, 정서함양을 위한 명절놀이와 여러 가지 아동놀이 등이 행하여졌다. 승경도(陞卿圖)놀이는 글공부하는 남아들의 학습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해 장려되어 특히 가정에서 많이 행하여졌다.
집안에서 가르쳤던 책으로는 서당에 가기 전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천자문』·『동몽선습』·『소학』·『명심보감』과 족보 및 조상의 문집 등이 연령이나 학습수준에 맞게 사용되었고, 사서오경은 서당·서원·향교의 교육이 시작됨과 동시에 가정에서도 반복 학습되었다.
그리고 집안 및 이웃의 혼인·제사·생일·회갑 등에 참여시켜 필요한 생활상식과 태도를 습득하게 했다. 여성의 경우에는 고려시대보다 더욱 엄격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즉, 자식·며느리·처·어머니로서의 4대역할을 근간으로 하여 그 실천사항으로 삼종지도(三從之道)·칠거지악(七去之惡) 등이 가정교육의 기초를 이루었다.
그 위에 베짜기·바느질·요리·육아·가사관리 등의 기능과 부덕, 부용, 부언, 부공의 4종이 품성교육으로 행하여졌다. 그리고 글공부도 이러한 목표에 도움이 되는 최저의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여성의 정서교육에 있어서는 고려시대 등과는 달리 사대부 집안의 딸에게는 노래와 춤이 금지되었고, 명절이나 집안의 행사 등 한정된 범위 내에서 다리밟기·널뛰기·화전(花煎)놀이·그네뛰기 등 몇 가지 놀이만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도 여성들은 내방가사문학(內房歌辭文學)을 발전시켜 스스로의 정서를 함양시킴과 동시에 딸의 교육에도 이를 활용하였으며, 실내놀이로서는 윷놀이 등을 즐겼다. 여성들의 가정교육서는 신분이나 계층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다.
양반가문에서는 한글과 함께 『명심보감』·『내훈』·『삼강행실도』·『계녀서 戒女書』·『규합총서 閨閤叢書』·『사소절 士小節』·『언문사서 諺文四書』·『소학언해』·「오륜가 五倫歌」 등을 비롯하여 이야기책·서간문 등을 사용하였으며, 그 위의 단계로는 『사기 史記』·『논어』·『시전』·여사서(女四書) 등까지도 가르쳤다.
그리고 출가 후에도 친가의 조상에 대한 지식과 긍지를 잊지 않도록 가계보(家系譜)를 가르치는 문중도 많았다.
서구문물이 일시에 유입되었던 개화기 이후에는 전통윤리의 고수와 신교육의 수용에 따른 혼란 속에서 가정교육도 많은 변화를 일으켰으며, 현대에는 서구문물과 서구식 학교교육, 출세지향적이고 황금만능주의를 나타내고 있는 사회양상에 의해서 전통적인 가정교육은 거의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산업의 고도화에 따른 핵가족제도가 형성되고, 각급 학교가 설립, 보급됨으로써 가정의 교육적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경제체제가 변화됨에 따라 부모들이 가정 밖에서 일을 하게 되자, 긴밀한 혈연관계에서 이루어지던 가정의 교육적인 교화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교육은 학교에 맡기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됨에 따라, 가정에서 형성되어야 할 예의범절이나 인격형성조차도 학교교육에 의존하는 그릇된 풍조가 생겨났다.
특히 고도 산업사회화의 조건으로서 지적 기능이나 전문교육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서 고학력 취득을 위한 교육열이 팽배하게 되었고, 가정교육의 주안점을 오로지 상급학교 진학에 필요한 지적 기능의 습득에 두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전통시대와 현대 가정교육의 차이점은 다음의 10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의 검토는 현대 가정교육의 문제점을 상세히 파악하고, 어떤 방향으로 개선과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를 시사해 준다.
① 전통가정에서는 삼강오륜 등에 기초를 두고 남아와 여아의 성역할에 맞는 교육을 시켰으나, 현대에는 뚜렷한 윤리적 가치관이 보이지 않고, 남녀평등과 능력중심의 사조로 인해 남녀의 성차(性差)에 따른 성역할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② 전통가정에서는 인격과 품성 등에 가정교육의 목표를 두고 가훈이나 가풍 등을 정하여 특유의 전통을 유지하였으나, 현대에는 인격과 품성교육까지 학교교육에 미루고 있으며, 뚜렷한 가정교육 방침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③ 전통가정에서의 부모는 자신의 성별에 따라 자녀의 교육을 분담하였고, 통합적인 효과를 위하여 엄부·자모의 상호보완적인 구실을 수행하였으나, 현대의 가정은 아버지의 직장중심 생활로 아버지의 영향이 약화되었고, 여성의 사회진출 등으로 그 소임이 전도되거나 교육적 책임이 어머니에게만 맡겨지고 있다.
④ 대가족제도였던 전통가정에서는 친척들이 촌수의 원근에 따라 훈계 등을 통하여 가정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나, 핵가족제도인 현대에는 부모 이외의 친척들은 가정교육에는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⑤ 전통가정에서는 가족의 응집력을 강화하는 대화를 많이 하여 자녀교육에 크게 기여하였으나, 현대에는 텔레비전·라디오 등 대중매체의 침투로 대화를 통한 교육이 크게 감소되었으며, 타인의 인생을 구경하는 방관자적인 인생태도가 생기고 있다.
⑥ 전통가정에서는 가족전체의 노동생활을 통해서 노동의 가치 등을 배우고 참여의식이 강화되었으나, 기계화·분업화로 가족공동의 노동이 퇴화된 현대에는 노동의 가치나 가사에 대한 참여의식을 배우기 어렵게 되었다.
⑦ 전통가정에서는 성인중심의 생활체제를 강조하여 청소년이 성인세계에 보다 빨리 들어갈 수 있었으나, 현대가정은 자녀중심의 생활체제로서 성인문화의 학습이 지체되어 인사예절, 존칭어 사용 등과 같은 생활의 기본예절 등이 바람직하게 교육되지 못하는 가정이 많다.
⑧ 전통가정은 자녀의 개성이나 특기보다는 성별에 따른 성역할 교육을 강조하였으나, 현대가정은 자녀의 적성과 개성에 따른 특기교육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특기교육이 자녀의 흥미나 적성에 관계없이 유행에 따르는 경향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⑨ 전통가정은 사람됨의 교육과 등과를 준비하는 교육을 조화있게 병행하였으나, 현대에는 사람됨의 교육보다는 부모의 포부나 기대에 의해서 높은 학업성취를 자녀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많다. 자녀의 능력이나 적성과는 관계없이 일류학교의 진학과 인기직종을 위한 전공선택을 강요하기도 한다.
⑩ 확고한 윤리체계를 확립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가정에서는 자녀들에 대한 훈육이 크게 약화되었다. 특히 여성에게 매우 엄격했던 조선시대와는 달리 현대의 가정에서는 여성의 활달한 기질과 행동을 묵인 또는 허용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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