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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독본(家庭讀本)

교육문헌

 1941년 이만규(李萬珪, 1882~1978)가 저술한 여자 교육용 독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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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41년 이만규(李萬珪, 1882~1978)가 저술한 여자 교육용 독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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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야자(也自) 이만규(李萬珪)는 1889년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한 교육사상가로, 1906년 경성 의학강습소에 입학하여 1911년 졸업하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0년대 경성 상동 사립학원·한영서원·송도고보의 교사를 역임하고, 1920년 6월 창립된 고려청년회의 학예부장을 맡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민중계몽운동에 뛰어들어 1920년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4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민풍(民風)’이라는 기고문을 연재하였다.
1926년에 배화여고보로 전근하면서 한글운동과 가정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한글운동과 관련하여 1929년부터 조선어학회 사전편찬위원회의 위원, 1932년 조선어강습회 강사, 1933년 조선어철자법 통일토의회 위원, 1934년 표준어 사정위원회 위원, 1936년 조선어학회 간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일제 강점기인 1938년에 동아일보사는 ‘생활의 문화화·과학화·경제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구관누습타파운동(舊慣陋習打破運動)’을 전개하였다. 이때 교육계몽가이자 한글운동가였던 이만규는 남녀차별과 가정문제의 불합리한 점을 타파하기 위해 본격적인 계몽운동을 벌였는데, 1939년 7월 6일부터 9월 19일까지 37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이 ‘가정독본(家庭讀本)’이다.
이 논설문은 1941년 영창서관에서 『현대문화 가정독본(現代文化家庭讀本)』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며, 광복 이후 1946년 같은 출판사에서 재발행되었다. 1994년에는 강만길 교수의 추천글과 함께 창작과 비평 출판사에서 복간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편찬/발간 경위
『현대문화 가정독본』은 1939년 7월 6일부터 9월 9일까지 37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연재한 ‘가정독본’을 보완한 책이다. “조선 재래의 가정은 이 과학적 인위와 문화적 개혁 없이 자연 그대로 습속 그대로 방임하여 몇 백 년을 지나 왔다. 이것이 오늘날 가정생활에 불합리가 많게 된 원인이다.”라고 진술한 ‘머리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구관누습타파운동(舊慣陋習打破運動)’의 연장선에서, 가정문제를 과학적· 문화적·사회적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로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의 ‘머리말’이 쓰인 시기는 1940년 1월이며, 실제 책이 출판된 시점은 1941년 5월 15일이다. 그가 이 책을 쓴 시기는 1938년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6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2년 7개월간 배화여고보에서 해직되었던 기간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에 그는 『가정독본』과 『조선교육사』 집필 작업을 병행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서지사항
양장본. ‘머리말’과 장 번호 없는 14장의 본문, ‘새시대 가정 여성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은 ‘어버이와 자식’, ‘시어머니와 며느리’, ‘딸의 가치’, ‘여성의 미’, ‘여성과 가정’, ‘신랑 신부에게’, ‘보다 나은 결혼’, ‘가정 화락의 법칙’, ‘자녀 교육의 비결’, ‘여자 교육의 중요성’, ‘이성’, ‘축첩론’, ‘가례’, ‘가정을 다시 인식하자’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동아일보』에 연재될 당시부터 한글을 전용하였으며, 어려운 한자는 괄호 안에 병기한 점이 특징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목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가정교육과 여성교육을 주요 주제로 삼은 독본이다. 가정문제와 관련해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결혼관’, ‘가정의례’, ‘자녀 교육’, ‘가정의 화목’ 등을 주제로 삼았고, 여성문제와 관련해서는 ‘딸의 가치’, ‘여성의 본질’, ‘여자교육’, ‘이성 문제’, ‘축첩 제도의 폐단’ 등을 다루었다.
가정교육의 특징은 부모 중심의 가정교육을 탈피하고, 부모의 모범된 생활과 합리적인 교육 환경을 조성하여 어린아이와 청소년의 자존심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함을 강조한 데 있다. 이러한 가정교육관은 ‘가정을 다시 인식하자’라는 마지막 장의 여덟 가지 본질과 관련되는데, 그가 본 가정은 ‘사랑의 씨를 뿌린 묘포(苗圃)’, ‘봉사의 꽃이 피는 화원’, ‘감정의 훈령장’, ‘운명의 창조소’, ‘위안의 전당’, ‘조화의 동산’, ‘축소된 세계’, ‘보존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성교육은 ‘가정에서의 딸교육’, ‘학교에서의 여자교육’, ‘사회에서의 주부교육’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딸교육은 남녀평등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며, 여자교육은 남녀평등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부교육은 가정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어느 정도까지 주부의 권력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결혼의 본질’을 설명하고 ‘축첩 제도’나 ‘가례’의 모순을 살핀 까닭도 가정에서의 여권(女權)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열한 번째 장에 해당하는 ‘이성’에서는 ‘성교육의 필요성’, ‘이성 사이의 우정’, ‘연애의 길은 위험’ 등의 절을 두어 성(性)지식을 전달하고자 했는데, 이는 한국교육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본격적인 성교육에 해당한다. 이 장에서는 성지식을 얻는 과정, 성교육의 방법, 이성교제의 본질과 태도 등이 서술되었다.
부록에 실린 ‘새시대 가정 여성훈’은 ‘시어머니의 길’, ‘며느리의 길’, ‘아내의 길’, ‘딸의 길’, ‘시누이의 길’, ‘어버이의 길’, ‘주부의 길’, ‘문화적 여성의 길’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정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역할을 강조한 내용이다. 이 내용은 1946년 5월 을유문화사에서 같은 제목의 소책자로 인쇄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일부의 연구자들은 이만규의 삶과 교육사상이 친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는 한글운동가이자 민중계몽운동가로서 청소년교육과 여자교육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1933년 2월 『신가정』의 ‘남녀 학생 사교 문제 대좌담회’, 1936년 1월 4일 『동아일보』의 ‘당혼(當婚)한 딸을 위한 어머니 좌담회’ 등에서 중학교시대의 남녀교제 불가를 주장한 점 등은 다소 보수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 그러나 결혼이나 가정생활이 본질적으로 남녀평등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으며, 이런 생각은 1936년 『학등』 제 2·3월 합호에 실린 ‘여자 교육의 재고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정독본』은 그의 가정교육관과 여자교육관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저서이자, 한국여성운동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현대문화 가정독본  (이만규, 영창서관, 1941)

  • 「황민화 시기 이만규의 국가 정체성: 친일적 경향을 중심으로」(이길상,『한국교육사학』34-1,2012)

  • 「이만규의 친일성에 대한 반론」(심성보,『한국교육사학』34-2,2012)

  • 「이만규와 『가정독본』」(박용규,『이만규 지음 가정독본』,1994)

  • 「민족주의 교육사상가 이만규」(박용규,『역사비평』22,1993)

  • 「이만규의 삶과 교육사상」,(심성보,『한국교육사학』14,1992)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4년)
허재영(단국대학교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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