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금강록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금강록(金剛錄)

    고전산문작품

     1890년(고종 27) 조병균(趙秉均)이 지은 금강산 기행록.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금강록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890년(고종 27) 조병균(趙秉均)이 지은 금강산 기행록.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불분권(不分卷) 1책(58장). 국문필사본. 작자의 자필 필사본이다. 금강산을 구경하고 지은 것으로, 원래 이름은 ‘금걍녹’이다. 작자는 이 작품이 있게 된 여행동기에 대해 진사로서 훌륭한 문장력과 웅대한 지략을 기르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또 이 기행록을 저술하게 된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자세히 구경하고 일기 수권을 진서로 하였으나 문력이 부족하니, 글 못하는 후회막급일너라……언서 일권으로 대강 적으니 산천의 진경을 알고자 하여 이 책을 보는 사람은 지로와 풍치를 알 듯하니 와유금강산이라 하염직하도다.” 즉, 금강산 여행자의 안내서이자 방 안에서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는 자료가 되게 하려는 의도였다.
    내용은 앞에 금강산에 있는 장안사 이하의 47개 누(樓)·암(庵)·봉(峰)·대(臺)와 표훈사 이하 교(橋)·대·누·문·암·봉·수(水) 60개, 유점사 이하 31개, 신계사 이하 52개, 고성읍 이하 8개, 해금강 이하 5개, 삼일포 이하 5개, 총석정 이하 3개소의 이름들을 각각 적었다. 그 다음에는 ‘금강산 총론’을 실었으며, 그 다음부터 본문이 시작된다.
    일정은 1890년 5월 13일에 서울을 떠나 개운사-양주 원당리-포천화산점-영평 만세교-김화읍-김성읍-창도역-단발령-회양 괘궁정-회은암-장안사-업경대-영원암-망군대-백화암-표훈사-명연담-방광대-헐성루-금강문-만폭동-원통암-보덕굴-마하연-백운대-마하연-불지암-비로봉-묘길상-칠보대-효운동-유점사-득도암-구련포-불정대-미륵봉-오선대-환희현-구자령-고성읍-해금강-삼일포-몽천암-사선정-신계사-발연사-온정-학선대-삼선봉-자미성-신·구만물초-신계사-용연-옥류동-비봉포-구룡연-옥류동-재미암-옥순봉-통천읍-총석정-추지령-개운사를 거쳐 7월 1일 귀가하기까지 50일간 1,600여 리가 된다.
    이 작품은 금강산 곳곳에 얽혀 있는 20여 항의 신앙전설과 지명연기설화(地名緣起說話)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당시 금강산의 각 사찰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산승들의 생활상과 음식·복식·대인범절 등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안경을 쓴 석수의 모습과 우리나라 동해안에 정박해 있는 한 척의 왜선(倭船)에 들어가 구경한 뒤, 그 배를 지은 제도(制度)가 조밀하고 기이하다는 소감을 전해주고 있다는 점 등에서 특징적이다. 조선 말엽에 지어진 국문기행록 중에서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 작자는 이 작품의 모본(母本)이라고 할 수 있는 한문일기로 상하 2권 1책의 「봉래일록(蓬萊日錄)」을 짓기도 하였다. 「금강록」에 실려 있지 않는 지은이의 한시 100여 수와 「동정부(東征賦)」 200여 구가 「봉래일록」에는 더 실려 있다. 또한 내용도 상당히 달라서 「금강록」과 「봉래일록」은 별개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봉래일록을 살핌」(최강현,『설태박요순선생화갑기념논총』,1987)

    • 「미발표기행 ‘금강녹’ 소고」(최강현,『국어국문학』82,1980)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최강현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2)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