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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전(落星傳)

고전산문작품

 조선 말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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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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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구성 및 형식
이본으로 「방한림전」과 「쌍완기봉」이 있다. 작품의 제목은 주인공이 낙성의 조짐을 보고 양자를 얻은 데에서 유래하였다. 표지 좌측에 종서로 ‘落星傳(낙성전)’이라고 되어 있고, 우측에는 좀 작은 글자로 ‘낙셩젼’과 ‘ᄂᆡ훈’이라고 병서되어 있다. 제1엽은 똑같은 내용이 중복 필사되어 있다.
본문 첫 장에 ‘대명뎡덕가심쌍원긔봉방공ᄌᆡ득용’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본전은 별칭 ‘쌍원[완의 잘못]기봉’임을 알 수 있으며, ‘방공재득용’이라는 장회명으로 보아 원래는 장회소설이었던 듯하다. 이 작품에서 장회명은 그 밖에도 초반부에 제2회와 제3회가 더 나타나고 있다.
「ᄂᆡ훈」을 제외한 「낙성전」은 전 55엽이다. 말미에 추록(追錄)인 듯한 글씨로, ‘계미 시월 초일일 필셔ᄒᆞ다 쇼소졔 글시 가이 아ᄅᆞᆷ답지 안ᄉᆞ오니 이 압 보시나니 ᄌᆡ조 용둔ᄒᆞ물 우스실 일 붓그럽도소니다 글씨난 보ᄅᆡᄌᆞᆨ지 안ᄉᆞ오나 단권 ᄎᆡᆨ졔난 보ᄅᆡᄌᆞᆨ ᄒᆞ온이 앗겨 보ᄋᆞᆸ소셔.’라고 되어 있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필사 연대가 대략 1883년임을 짐작할 수 있고, 규방에서 필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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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명 정덕 연간 북경 유화촌에 성명은 방관주요 자는 문백이라 하는 한 처녀가 있었다. 그 부모가 늦도록 혈육이 없더니 노년에야 비로소 여아를 낳으니, 이가 곧 관주였다.
방소저가 자라 글을 배우기 시작하매 놀라운 재주를 발휘하여 4·5세에 이미 고금 시서에 능통하였다. 소저는 늘 남복을 입고 자랐으며 행동도 남아처럼 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은 물론 친척들도 그녀가 여아임을 몰랐다.
그녀가 8세가 되었을 때 부모를 모두 잃었으므로 스스로 가사를 총집하고 학업에 몰두하였다. 9세에 유모 주유랑과 시녀·차환들이 여공(女工)에 힘쓸 것을 권유하니, 방공자(실은 방소저)는 변색하고 도리어 하녀들을 꾸짖으며 문장과 무예에 더욱 힘을 썼다.
부모의 3년상을 마친 어느 봄날, 방공자는 갑자기 일어나는 감회를 억누르지 못하고, 비복들에게 부중 일을 맡긴 다음 청려를 타고 유랑길에 올랐다. 그는 세상을 두루 다니며 견문을 넓힌 다음 1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방공자 12세에 과거령이 내리자 그는 시험을 보기 위하여 상경하였다. 과거에 장원급제한 방공자가 한림학사를 제수받으니, 명공가에서 다투어 구혼하였으나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 신임 병부상서 겸 태학사 서평후 영희정(자는 균지)이 7자 5녀를 두었는데, 위로 7자 4녀는 모두 성례시키고, 제5녀 혜빙만이 남아 방년 13세라 배필감을 구하던 중 방한림에게 구혼하였다. 한림이 일단 나이 어림을 들어 사절하니, 서평후는 명일 매림(梅林)에서 향을 받들자고 권유하였다.
이튿날 방한림이 매림을 찾아가니 서평후는 술이 몇 순배 돌은 후 여아(혜빙)을 불러내었다. 이미 계책을 생각한 방한림은 후의 간청을 받아들이고 돌아왔다.
한림은 놀라는 유모 유랑에게 길례를 준비시켰다. 한편, 혜빙은 방한림의 목소리와 용모를 몰래 엿보고 그가 여자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혜빙은 남자의 총실(寵室)이 되어 순종하고 아당하는 것이 싫게 여겨져 방한림과 혼약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두 사람의 혼례가 끝나자, 혜빙은 침석에서 신랑의 정체를 밝혀냈다. 두 사람은 비밀을 지킬 것을 굳게 약속하고 부부되기를 맹세했다.
그 후 방한림은 이부시랑 겸 태학사가 되었다. 방시랑에게 작첩하기를 권유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그는 굳이 거절하였다. 불행히도 간신의 시기를 받아 방시랑은 형주안찰사로 좌천되어 부인과 이별하고 임지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방안찰사는 임지에 이르러 선정을 베풀었다.
어느 가을날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 시를 읊으며 거니노라니 갑자기 벼락이 치며 별이 떨어져 내렸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별은 없고 어린아이가 있고 가슴에는 ‘낭성’이라 쓰여 있었다. 그래 아이를 데려다 민가에 맡겨 기르며 이름을 낙성이라 하였다.
낙성을 얻은 지 수십여 일 후 대장군 양직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천문을 보니 낭성은 빛을 잃고 자신의 주성인 문곡성(文曲星)은 찬란하였으므로 머지않아 자신의 벼슬이 더할 줄 예감하였다.
과연 이듬해 봄에 임금이 그를 병부상서 추밀사로 불러 그는 체직(遞職) 상경하였다. 상서부부는 양아들 낙성에게 정을 쏟았다. 낙성도 양부모에게 효도하며 문장 수업에 전력하였다.
추밀사 김회가 3자 1녀를 두었는데, 여아의 나이가 9세 되어 혼처를 구하였다. 방상서의 생신연에서 낙성을 보고 구혼하니, 방상서가 허락하고 혼약하였다. 유모 유랑이 방상서부부에게 인륜을 끊지 말고 각각 배필을 맞을 것을 간언하였으나 양인은 유모의 말을 물리쳤다.
간신 유신 등이 천총(天聰)을 흐리매 방상서가 상소를 올려 간하였으나 용납되지 못하였다. 그때 북호(北胡)가 침입하니 방상서가 자원 출병하였다. 임금은 그를 대원수 정북장군으로 삼아 십만병을 거느리게 했다. 방원수가 싸움에서 크게 이기니 호왕은 목숨을 구해 도망하여 복수할 궁리를 하는데, 마침 승상 야율달이 풍운술로 방원수를 해하겠다고 자청하였다.
이때 방원수는 천문을 보고 자객이 이를 것을 미리 알아 자지 않고 기다렸다. 삼경쯤 되어 음풍이 불며 찬 기운이 침입하매 방원수가 검을 휘둘러 치매 오랑캐의 시체가 떨어졌다.
남편의 죽음을 안 야율의 아내 달비(달녀)가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 역시 자원 출전하였다. 양진이 대결하자 진법 경쟁이 벌어졌다. 대전 끝에 달녀는 죽임을 당하고 호왕은 사로잡혔다. 방원수는 호왕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 돌려보냈다.
방원수는 난을 평정한 뒤 그 공으로 승상과 강능후에 봉해졌다. 부인 영씨는 진국부인이 되고, 그 부모도 각각 우승상 평양후와 한국부인이 되었다. 낙성의 나이 12세 되매 김추밀이 택일을 하여 자신의 딸과의 예를 올렸다. 낙성은 13세에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이어 평장을 거쳐 17세에 병부상서를 역임하였다.
어느 날 현산도사가 찾아와 승상의 명한(命限)이 멀지 않았음을 예언하고 사라졌다. 이에 방승상은 이듬해 봄에 대연을 베푼 끝에 비감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운명이 다하였음을 선언하였다.
승상이 병석에 눕자 부친이 현몽하였다. 임금이 병문안을 하여 오자 비로소 방승상은 자신의 본색이 여자임을 실토하고 기군(欺君)한 죄를 빌었다. 임금은 방승상을 쾌히 용서하고 빨리 쾌차하기를 빌었다. 임금이 환궁한 다음에야 비로소 서평후는 사위가 여자였음을 알았다.
방승상이 39세를 일기로 별세하고 이어 영부인도 별세하였다. 방상서가 부모의 3년상을 마치자 임금은 그의 벼슬을 돋워 참지정사 태중태부로 하였다.
방참정의 치정(治政)이 그 부친에 못지않았다. 방참정은 부인 김씨에게서 7자 3녀, 후취 이씨에게서 3자 2녀를 얻었다. 그는 우승상 진양후로 되었다가 위국공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다.
진양후 부부 세 사람이 70여 세에 졸하니, 남손이 50여 인이오 여손은 20여 인이었으며, 그 열 아들이 모두 좌승상 대도독에 이르러, 그 집안의 빛남이 명조(明朝)에 으뜸이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이상과 같은 내용으로 볼 때, 이 작품은 매우 유별난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우선 남성과 여성만의 관계만을 절대시하는 일반 사회의 고정관념이나 이를 반영하는 문학작품의 전형성을 탈피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방관주와 영혜빙이라는 두 여성의 결혼생활을 통하여, 기왕의 남성 중심적이며 가부장적인 사회와 결혼제도 내에서의 여성 억압을 거부하고, 주체적이고도 자유 의지가 강한 여성들이 자아 실현을 해가는 여성 존중적인 삶의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조선의 봉건적 남성 중심 사회에서 매우 드물게도 페미니즘적 사상과 의미를 지닌 작품으로 여겨진다.
원본은 원래 정병욱(鄭炳昱)의 소장했던 것을 현재는 정학성(鄭學成)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본으로는 김동욱(金東旭) 소장본(현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 소장) 「방한림전」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의 「쌍완기봉」이 알려져 있는데, 이들 이본간의 내용상 차이는 별로 없다.
한편, 스킬랜드의 『고대소설(Kodae Sosl)』에서는 「낙성전」을 「낙성비룡」의 이본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것은 유사한 작품명에서 유추한 잘못된 견해로, 「낙성전」과 「낙성비룡」은 제목이 유사하나 내용은 전연 다른 별개의 작품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조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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