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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군은(感君恩)

고전시가작품

 조선 초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악장(樂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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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악장(樂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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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 대한 송축가(頌祝歌)이며 향악의 곡명이기도 하다. 『악장가사』와 『고금가곡』에 가사가 전한다. 지은이와 지은 때는 전하지 않는다. 지은이를 상진(尙震)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상진은 1493년(성종 24)에 나서 1564년(명종 19)에 죽은 사람이다.
이 작품에 대한 언급은 『조선왕조실록』 세종 24년 2월 기록의 “왕께서 관습도감에게 전지를 내리되, 이후 조정에서 사신(使臣)의 위안 잔치 때나 정재(呈才)가 없는 행주(行酒) 때에 「낙양춘(洛陽春)」·「환궁악(還宮樂)」·「감군은」·「만전춘(滿殿春)」·「납씨가(納氏歌)」 등의 노래를 섞어 주악하라.”는 말 중에 보인다. 세종 24년은 상진이 태어나기 전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 명종 19년 윤2월 기록의 “상진이 임종 때 자제들에게 말하되, 내가 죽거든 비를 세우지 말고 다만 단갈(短碣)주 01)에 ‘공은 늦게 거문고를 배워 항상 「감군은」 한 곡만 탔을 따름이다.’ 라고 새겨라.”라는 말 속에는 자신이 「감군은」을 지었기 때문에 그 노래만 항시 불렀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지는 않다.
지은이를 정도전(鄭道傳) 또는 하륜(河崙)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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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모두 4절이고 각 절은 5행이다. 각 절에 공통적으로 붙은 후렴은 다음의 3행이다. “향복무강(享福無疆)ᄒᆞ샤 만셰(萬歲)ᄅᆞᆯ 누리쇼셔/ 향복무강(享福無疆)ᄒᆞ샤 만셰(萬歲)ᄅᆞᆯ 누리쇼셔/ 일간명월(一竿明月)이 역군은(亦君恩)이샷다.”
후렴을 제외한 원 가사는 4구체로 볼 수도 있고, 또 큰 2구로 볼 수도 있다. 내용은 1·2절은 왕의 덕택이 바다와 같이 깊고 태산과 같이 높다는 것, 3절은 왕의 은택을 다 갚을 수가 없다는 것, 4절은 일편단심으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것이며, 후렴은 만세 동안이나 복을 누리라는 축원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악보는 『대악후보(大樂後譜)』(권5·6)·『금합자보(琴合字譜)』·『양금신보(梁琴新譜)』·『백운암금보(白雲庵琴譜)』이다.
「감군은」이 실려 있는 고악보(古樂譜) 중에서 『금합자보』와 『양금신보』는 합자보(合字譜)로 되어 있어 현보(絃譜)에 속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대악후보』(권6)·『양금신보』·『금합자보』에 실려 있는 「감군은」에는 ‘개청(皆靑)’이 나올 뿐만 아니라 요성(搖聲)이 쓰인 점으로 보아 현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악후보』 권5의 「감군은」은 요성이 전혀 없고 권6의 「감군은」에 비하여 종지형이 고형(古形)이고 장구장단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권6의 「감군은」은 간음(間音)이 첨가되어 있고 요성이 출현하며 변형된 종지형을 가지고 있고 장구장단이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점에서 『대악후보』 권5의 「감군은」이 같은 책 권6의 「감군은」보다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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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01
무덤 앞에 세우는 작고 둥근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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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1996년)
김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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