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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歌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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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시가의 한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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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한국 시가의 한 양식.
영역닫기영역열기개 요
고려 말에 발생하고 조선 초기 사대부계층에 의해 확고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잡아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지속적으로 전해 내려온 문학의 한 갈래이다. 4음 4보격을 기준 율격으로 할 뿐, 행(行)에 제한을 두지 않는 연속체 율문(律文)형식을 갖고 있다. 주요 작가층은 사대부계층이며, 장르 자체가 지닌 폭넓은 개방성 덕분에 양반가(兩班家)의 부녀자, 승려, 중·서민(中·庶民) 등 기술(記述) 능력을 갖춘 모든 계층이 참여했던 관습적 문학양식이다.
내용 또한 까다로운 제한요건이 없어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명칭은 ‘가사(歌詞)·가사(歌辭)·가ᄉᆞ’ 등이 관습적으로 통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문학장르 명칭으로 ‘가사(歌辭)’라고 일반적으로 부른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장르적 성격
가사의 장르적 성격에 관한 논의는 가사 자체의 성격 파악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며, 전체 국문학의 질서체계라는 거시적 구도 아래 해명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움이 따른다. 그 동안 축적된 성과를 검토하면 크게 두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질서와 규범의 체계로서의 장르론이며, 다른 하나는 개별 양식들의 속성 파악에 중점을 두는 다원적 질서로서의 양식론이다. 도남(陶南) 조윤제(趙潤濟)는 처음에 가사를 ‘운율적 생활의 일부’라는 ‘시가(詩歌)’ 개념으로 다루었으나 후에 그 전의 태도를 자기 비판하면서 ‘시가는 운문이지만 운문은 시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가사는 형식상 시가이지만 내용상 문필’이기 때문에 시가와 문필 중 어디에도 귀속될 수 없다며 ‘시가, 가사, 문필’이라는 3분 체계를 세운다.
그 뒤 다시 ‘문필’이라는 개념의 모호성을 탈피하여 ‘시가, 가사, 소설, 희곡’이라는 4대 부문을 제시하는데, 이는 서구의 고전 문학의 3분체계인 서정, 서사, 희곡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국문학의 특수성도 함께 고려한 것이다. 연구 초기에 조윤제가 국문학의 체계를 세우는 과정에서 2분법, 3분법, 4분법으로 수정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가사’ 장르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다른 한편으로 가사의 장르론은 곧바로 전체 국문학 체계와 직결된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이어서 조동일(趙東一)은 이론으로 체계화된 획기적인 장르 이론을 세운다. 그는 ‘장르론의 원리는 장르 상호간의 관계론에 그치지 않고 각 장르 내부의 논리로 심화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분류론과 범주론 차원에 머물고 있던 장르적 인식을 극복하는 포괄된 장르 이론을 정립한다.
그리하여 ‘가사’는 서구의 전통적 장르 구분법인 3분법으로 정리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특수한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하면서 가사의 장르문제를 공시적·대비적·통시적 측면에서 다각적으로 검토한 후, ‘가사’는 ‘있었던 일을 확장적 문체로, 일회적으로, 평면적으로 서술해 알려 주어서 주장한다.’는 ‘교술’ 장르류에 속한다고 했다. 여기서 ‘교(敎)’란 알려 주어서 주장한다는 뜻이요, ‘술(術)’은 어떤 사실이나 경험을 서술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나아가 그는 교술은 ‘비전환 표현’이며, 자아와 세계의 대립 양상에 따른 거시적 4분체계에서는 그것이 ‘작품외적 세계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조동일의 이론은 ‘가사’ 장르는 물론 여러 방면에 걸친 문학 이해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조윤제와 조동일의 장르론이 규범성에 중점을 두어 질서로서의 문학의 체계를 세우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이러한 방법론 자체가 지니는 ‘지나친 규범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문학의 역동성을 중시하는 ‘다원적 양식론’이 논의되기에 이른다.
가사문학 논의에서 내적 형식으로서 문학의 본질을 가리킨 ‘양식’ 개념의 도입은 장덕순(張德順)에 의해 시작된다. 그는 형태라는 용어와 대비하여‘양식’이란 용어를‘인간 정신이 문화적 생활을 형성해 가는 방식’이란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이러한 양식개념에 따라 문학을‘서정적 양식, 서사적 양식, 극적 양식’으로 구분하고,‘가사’는 주관적이고 서정적인 가사와 객관적이고 서사적인 가사로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주종연(朱鍾演) 역시 가사를 유개념으로 서정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으로 2분하고, 종개념에서 수필로 규정했다가 뒤에 이를 다시 ‘서정적인 것, 서사적인 것, 교시적인 것’으로 3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논의의 한계는 ‘양식론’의 속성을 주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제 운용함에 유개념과 하위 개념 사이를 분별 적용하지 못함으로써 하나의 역사적 장르인 가사를 2분 또는 3분해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데 있다.
가사에 양식론적 사고를 원용하여‘문학적 진술방식’을 양식개념으로 보아 이것을 기술적(記述的) 차원에서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실례는 김병국(金炳國)에 의해 시도되기도 하였다. 가사를 역사적인 관습 장르로 보아 가사의 ‘진술양식’의 복합성에 주목하여 양식론을 구체적으로 운용하는 실제는 김학성(金學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는 공시적 관점에서 관습적 장르의 가사와 통시적 관점에서 역사적 장르의 가사라는 두 측면을 중시하고, 가사는 서정적 지향(서정성), 서사적 지향(서사성), 교술적 지향(교술성)이라는 문학적 ‘정신’을 동시에 보이는 장르적 속성의 ‘혼합성’ 내지는 ‘복합성’을 갖고 있으며, 4음 4보격이라는 율격장치의 손쉬움과 낯익음으로 계층을 초월하여 모든 계층에 개방되어 있는‘개방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역사적 장르로서의 가사는 전·후기 가사의 동태적 변화에 주목하여 전기 가사는 서정·서사·교술성의 장르적 성격 가운데 어느 하나를 중심적 정신으로 삼고, 다른 둘을 보조 장치로 포용하는 장르의 지향을 보이며, 이러한 장르의 복합성은 임·병 양란 이후 사회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해지면서 각 지향간의 불균형으로 인해 서정성·서사성·교술성이 각각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논의를 폈다.
뒤에 수정하여 가사를 포괄할 수 있는 원리를‘주제적 양식’이라는 진술 방식에 있다고 보면서,‘서정적·서사적·극적 양식’들은 그 주제의 양식이 실현되는 양태들로 파악하기도 했다. 이‘주제적 양식’이란 용어는 조동일의 ‘교술’개념이 주는 부담감을 덜어 준다는 측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김흥규(金興圭)는 ‘가사작품들의 다양한 성향에 주목하여 그것을 여러 종류의 경험, 사고 및 표현 욕구에 대하여 폭넓게 열려 있는 혼합 갈래의 일종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논의는 가사가 ‘서정, 서사, 교술, 희곡’의 여러 성격이 복합·혼효되어 있다는 주장이라는 측면에서 양식론의 사고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제5의 장르류인 ‘중간·혼합 갈래들’의 장르 설정의 기준이 다른 네 가지 장르류와 동질성을 갖지 못한 까닭에 논리적 설득력이 약하다.
더불어 실제로 구체적 문학작품의 대개가 어느 정도는 혼합성과 복합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혼합성의 정도가 주관적인 기준으로 판별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한편 최근에 성무경(成武慶)은 기존 장르론을 재검토하면서 새로운 장르론의 구도를 제시했는데, 가사의 존재양식은 ‘노래하기라는 환기방식이 서술의 입체화를 방해하여 서술의 평면적 확장’을 이루는 ‘전술(傳述)양식’이라고 하고, 그‘전술양식’은 서술언어의 통사적 의미를 구조적으로 연계하는 특성을 보이며, 또‘나’라는 ‘인격적 서술 주체의 목소리’로 진술되는 까닭에 서술의 신빙성을 확보하는 문학양식이라고 했다.
일반 서술자 목소리의 신빙성은 소설적 세계관이 성립되면서 신빙성이 의심받게 되고, 신빙성 있는 서술자 ‘나’로 진술되는 문학적 진술방식이 필요해졌는데, 이것이 가사문학을 발생시킨 근본적 동인이라 보았다. 이‘나’에 의한 서술은 근대 소설이‘1인칭 서사’를 실험하면서 소설의 서술방식으로 자리잡자 그 신빙성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어, 근대 1인칭소설의 등장과 함께 가사 장르의 양식적 존재가치가 소멸된 것으로 설명했다.
이 논의는 기존의 가사 장르 논의가 안고 있던 몇 가지 모순을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밖에도 가사의 담론 특성을 통한 장르 논의나 향유방식을 포괄하는 역사적 장르로서의 가사에 대한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는 논의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편 전체 국문학의 질서 체계와 연관된 논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가사가 지닌 ‘서정’의 문제는 가사문학 연구 초기부터 줄곧 논의되어 왔는데,‘가사는 시가인 이상 엄연한 시(詩)’라고 하거나 ‘가사는 비연시(非聯詩)로서의 정형시’라고 할 때의‘시가’또는‘시’는 가사가‘서정 장르’에 속한다는 표현이거나 적어도 ‘서정성’이 가사의 중심적 표현 원리라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는 의견이다.
또한 가사를 산문적인‘수필’이라고 보자는 견해와 가사의 독자성을 인정하여‘가사는 가사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이러한 의견은 가사 내용의 다양성 또는 독자적 특성을 살리려는 의도이기는 하나 체계적인 장르론에 입각한 것이 아니므로 재고의 여지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형 및 내용
가사문학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과 다층적 세계관 및 이념들이 총체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기존 가사의 유형을 내용별로 분류한 것을 보면, 적게는 5종에서부터 많게는 32종류(139개 항목으로 나눈 경우마저 있다)에 이르기까지 유형 분류의 진폭이 아주 크다. 가사는 한 작품 안에서도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는 작품이 많아, 단순하게 구분하면 가사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세분하면 유형의 가닥이 잡히지 않아 복잡성만 더해진다.
그러므로 학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유형의 범주들을 토대로 교차 분류를 피하는 방향에서 몇 가지 유형을 묶어 그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한데, 현재로선 일정한 범주의 교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사의 주요 작가층이 양반 사대부계층이고, 작품의 양과 질에서, 또 작품세계에서도 양반 사대부 세계관의 투영이 지배적이라는 판단 아래 사대부가사(士大夫歌辭)를 중심으로 기술(記述)하고, 규방가사(閨房歌辭)와 서민가사(庶民歌辭)를 부가적 항목으로 하여 각각의 내용별 유형을 살피기로 한다.
이 밖에 특정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주제적 기준에 따른 것이기는 하나, 종교가사와 개화가사를 또 다른 유형으로 하여 간략히 기술해 보기로 한다.
(1) 사대부가사
① 강호생활(江湖生活):가사 장르가 문학적 세련성을 획득하며 구체적인 유형으로 자리잡을 때 형성된 유형으로, 자연과 합일을 표방하면서 강호지락(江湖之樂)을 읊은 작품들이 있다. 강호한정(江湖閑情)과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주된 주제이다.
이런 강호가사로는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 賞春曲」, 송순(宋純)의 「면앙정가 俛仰亭歌」, 정철(鄭澈)의 「성산별곡 星山別曲」, 차천로(車天輅)의 「강촌별곡 江村別曲」, 이양오(李養五)의 「강촌만조가 江村晩釣歌」, 박인로(朴仁老)의 「사제곡 莎堤曲」·「노계가 蘆溪歌」, 허강(許橿)의 「서호별곡 西湖別曲」, 정훈(鄭勳)의 「수남방옹가 水南放翁歌」, 작자 미상의 「낙민가 樂民歌」·「창랑곡 滄浪曲」·「안빈낙도가 安貧樂道歌」·「은사가 隱士歌」 등이 있다.
② 연군(戀君)과 유배(流配):사대부란 관료로서의 ‘대부(大夫)’와 독서인으로서의 ‘사(士)’가 복합된 명칭으로, 정치적인 진퇴(進退)를 숙명적으로 반복한 계층이다. 이러한 정치현실을 배경으로 사대부의 갈등을 읊은 가사에는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연군가사(戀君歌辭)와 정치적 패배로 인해 유배를 당해 유배지에서 겪는 고난의 생활상을 기술하면서 우국지정(憂國之情)을 토로한 유배가사(流配歌辭)가 있다.
전자에는 정철의 「사미인곡 思美人曲」·「속미인곡 續美人曲」, 조우인(曹友仁)의 「자도사 自悼詞」,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別思美人曲」,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이긍익(李肯翊)의 「죽창곡 竹窓曲」 등이 있고, 후자에는 조위(曹偉)의 「만분가 萬憤歌」, 송주석(宋疇錫)의 「북관곡 北關曲」, 이방익(李邦翊)의 「홍리가 鴻罹歌」, 안조환(安肇煥)의 「만언사 萬言詞」,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 北遷歌」 등이 있다.
③ 유교 이념과 교훈:유교적 실천 윤리를 규범적으로 제시하거나 경세적(警世的) 교훈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특히 봉건 사회질서가 흔들리던 조선 중·후기에 지배질서의 유지나 이념 강화를 목적으로 많이 지어졌다.
이 유형에는 이름 높은 유학자가 지은 것이라면서 진술의 권위를 강조하는 「권선지로가 勸善指路歌」(조식), 「도덕가 道德歌」·「금보가 琴譜歌」·「상저가 相杵歌」(이황), 「자경별곡 自警別曲」·「낙지가 樂志歌」(이이) 등과 허전(許㙉)의 「고공가 雇工歌」 및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 雇工答主人歌」, 정훈의 「성주중흥가 聖主中興歌」, 이기경(李基慶)의 「심진곡 尋眞曲」, 정인찬(鄭寅燦)의 「삼강오륜자경가 三綱五倫自警歌」, 유영무(柳榮茂)의 「오륜가 五倫歌」, 작자 미상의 「오륜가 五倫歌」, 김경흠(金景欽)의 「삼재도가 三才道歌」 등이 있다.
넓게는 조선 후기에 여러 편의 경세류(警世類) 가사를 편집해 묶은 「초당문답가 草堂問答歌」나 규방가사의 한 유형인 「계녀가 誡女歌」류 등도 이 유형에 속한다.
④ 기행(紀行):일상적 주거 환경을 벗어나 명승지나 사행지(使行地)를 기행하고 여정(旅程)을 중심으로 견문과 감회를 읊은 가사들로서, 이 유형은 국내 기행가사와 국외 기행가사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주로 관료들이 부임지(赴任地)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거나 임지(任地) 주변의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경관을 읊은 것이고, 후자는 중국이나 일본에 사행을 다녀온 것으로 견문의 기록성이 높다.
국내 기행가사로는 백광홍(白光弘)의 「관서별곡 關西別曲」, 정철의 「관동별곡 關東別曲」, 이현(李俔)의 「백상루별곡 百祥樓別曲」, 조우인의 「관동속별곡 關東續別曲」·「출새곡 出塞曲」, 박순우(朴淳愚)의 「금강별곡 金剛別曲」, 위백규(魏伯珪)의 「금당별곡 金塘別曲」, 작자 미상의 「금강산유람록 金剛山遊覽錄」 등이 있다.
국외 기행가사로는 박권(朴權)의 「서정별곡 西征別曲」,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 日東壯遊歌」, 유인목(柳寅睦)의 「북행가 北行歌」,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 燕行歌」, 작자 미상의 「연행별곡 燕行別曲」 등이 있다. 이방익의 「표해가 漂海歌」는 예기치 않은 표류로 인한 해외 경험을 읊은 것이다.
⑤ 전란의 현실과 비분강개:나라 안팎의 전란의 피해와 처참한 정상, 거기에서 오는 비애와 의분(義奮)을 토로한 작품들도 적지 않다. 전란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양사준(楊士俊)의 「남정가 南征歌」, 박인로의 「태평사 太平詞」·「선상탄 船上嘆」, 최현(崔晛)의 「용사음 龍蛇吟」 등이 있고, 전란 후 곤궁한 현실을 드러낸 작품으로 박인로의 「누항사 陋巷詞」, 정훈의 「우활가 迂闊歌」·「탄궁가 嘆窮歌」등이 있다. 애국계몽기의 의병가사도 이 유형에 포함될 수 있다.
⑥ 영사(詠史)·풍속(風俗)·세덕(世德):우리 나라의 역사나 가문(家門)의 전통을 노래한 것, 중국 역사나 고사(故事)를 읊은 것, 또 지리(地理)·풍물(風物)·풍속(風俗)·인사(人事) 등 신변에 관심을 표현한 것들을 말한다.
이들 중에는 신득청(申得淸)의 「역대전리가 歷代轉理歌」, 작자 미상의 「해동만고가 海東萬古歌」, 박리화(朴履和)의 「만고가 萬古歌」·「낭호신사 朗湖新詞」, 여러 종류의 「역대가 歷代歌」·「한양가 漢陽歌」·「농부가」 일부,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팔도읍지가 八道邑誌歌」·「팔역가 八域歌」·「광산김씨세덕가 光山金氏世德歌」·「전의이씨세덕가 全義李氏世德歌」, 김충선(金忠善)의 「모하당술회가 慕夏堂述懷歌」, 정습명(鄭襲明)의 「정처사술회가 鄭處士述懷歌」 등이 있다.
(2) 규방가사
규방가사는 부녀자들에게 향유된 가사로 ‘내방가사(內房歌辭)’라고도 한다. 규방가사의 내용별 유형 구분 역시 논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크게 ‘교훈가사’와 ‘생활 체험가사’로 나눌 수 있고, 전자는 다시 ‘계녀가류’와 ‘도덕가류’로, 후자는 ‘탄식류’와 ‘송축류’, 그리고 ‘풍류류’로 나뉜다.
‘교훈가사’의 주류는 ‘계녀가류’로 시집가는 딸에게 시집살이에 필요한 생활 규범을 가르칠 목적에서 『소학 小學』등의 유교적 규범을 전달하는 것이며, 그 내용이 13개 항목으로 전형화해서 구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계녀가’라는 제목의 많은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규범서에 바탕을 두지만 화자의 구체적 체험을 서술해 훈계하는 유형이 있는데, 「김씨계녀사」·「복선화음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도덕가류’는 특정인에게 주는 교훈이 아니라 일반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서술한 것으로 부덕(婦德)을 강조하는 「도덕가」·「오륜가」·「나부가 懶婦歌」 등이 있다. 그러나 교훈가사의 ‘계녀가류’와 ‘도덕가류’는 한 권의 책에 같이 필사되거나 여러 장의 ‘두루말이’에서 같이 발견되므로 내용을 분석하여 세분할 때 구분되는 유형이지 엄밀한 유형구분은 힘들다.
‘생활체험가사’는 「화전가」류 가사가 많으며, 시집살이의 괴로움과 신세한탄이 주류를 이룬다. 그 가운데 ‘탄식류’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인생의 무상감을 읊은 것으로 「사친가」·「사향가 思鄕歌」·「여자자탄가」 등이 있고, 남편의 사별, 노처녀의 한을 노래한 것으로 「한별곡 恨別曲」·「원별가 怨別曲」·「청상가 靑孀歌」·「노처녀가」·「춘규자탄별곡」 등이 있다.
‘송축류’는 자녀의 장래를 축복해 주는 「귀녀가」·「재롱가」·「농장가」 등이나, 부모의 회갑이나 회혼을 맞아 장수를 송축하는 「수연가 壽宴歌」·「헌수가 獻壽歌」·「회혼참경가 回婚參景歌」 등이 있다. ‘풍류류’는 「화전가 花煎歌」가 대표이며, 여행의 즐거움을 노래한 「관동팔경유람기」·「경주관람기」 등이 포함된다.
(3) 서민가사
임진·병자 양난 이후 서민의식의 성장은 문학사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두루 확인되는데, 가사작품에서도 그러한 지향을 보이는 작품들이 일부 보인다. 서민가사는 서민에 의해 지어졌거나 서민의식이 투영된 가사를 말하는데, 작가층의 개념이 모호해서 유형 성립에 문제점을 안고 있다.
종래에 서민가사의 주류는 ‘현실적 모순의 폭로와 비판’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로 알려졌는데, 「갑민가 甲民歌」·「기음노래」·「거창가 居昌歌」·「정읍군민란시여항청요 井邑郡民亂時閭巷聽謠」·「민원가 民怨歌」·「합강정가 合江亭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이 봉건 지배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곧바로 이들을 ‘서민가사’라 할 수는 없다.
이 유형에 속한 작품의 대다수는 작자를 알 수 없는 것들로서 유교의 정신세계를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이 많기 때문에 ‘현실비판가사’라는 유형으로 따로 묶어 다루며 그 작자층도 서민층이 아니라 향촌의 몰락사족층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대개 조선 후기 신분제가 심하게 동요되던 시기에 나온 작품들로 보이는데, 이 시기는 양반계급의 숫자가 증가를 보인 반면, 실질적인 권리는 상대적으로 약해져 양반층 내부에서도 체제 비판이나 현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현실 사안에 대해 제한적 비판을 보이는 작품들을 서민가사로 보기보다는 기존 관념에 대한 도전과 인간 본능의 표출을 주제의식으로 하여 세계관에 변화를 보이는 작품들에서 서민들 특히 시정인의 개방된 세계관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유형에는 「청춘과부곡」·「규수상사곡」·「상사회답곡」·「양신회답가」·「단장사」·「송녀승가」·「재송녀승가」·「거사가」 등이 있다.
(4) 종교가사
종교의 교리를 세상에 널리 펴는 것을 주제로 한 가사로 경전 교리를 가사체로 서술한 것, 신앙정신에 입각하여 창작한 것, 전도를 목적으로 지은 것 등 모두 포함된다. 종교가사에는 불교가사, 천주교가사, 동학가사, 유교가사 등이 있다.
불교가사는 가사 발생문제의 쟁점이 되어온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서왕가 西往歌」·「승원가 僧元歌」 등에 이어 휴정(休靜)의 「회심곡」과 회심곡의 이본들, 침굉(枕肱)의 「귀산곡 歸山曲」·「태평곡」, 지영(智塋)의 「전설인과곡 奠設因果曲」·「수선곡 修善曲」 등이 있다.
천주교가사는 정약전(丁若銓) 등이 지은 「십계명가 十誡命歌」, 이벽(李檗)이 지은 「천주공경가」, 도마 최양업(崔良業)의 「사향가」·「삼세대의」 외 20편, 김기호(金起浩)의 「성당가 聖堂歌」 등이 있다.
동학가사는 천도교가사라고도 하는데, 후천 개벽의 도래를 주창하면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의 『용담유사』 9편은 가사가 곧 동학의 경전이 된 작품이며, 김주희(金周熙)가 설립한 상주 동학본부에서 수집 정리하여 간행한 동학가사 100여 편이 있다. 동학가사는 민중의 힘을 결집시킨 구국과 개혁의 사회적 이념이 자생적 근대 지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유교가사는 이태일의 「오도가 吾道歌」가 대표작이다. 종교가사는 세계관의 전환을 모색하면서 유교 이념과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근대로 넘어 오는 이행기(移行期)에 이들이 가사를 매체로 이념논쟁을 벌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5) 개화가사
갑오경장(1894) 이후, 한일병합(1910)에 이르는 소위 ‘개화기’를 배경으로 개화문제를 중심화제로 삼은 가사들을 말한다. 이 유형은 개화문제를 놓고 찬·반의 입장이 분명하게 갈리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서구와 일본을 문명 개화의 모범으로 삼고 위로부터의 개혁을 내걸면서 계몽적 개화사상을 주장한 것으로는 「애국가」·「동심가」·「성몽가」 등이 있고, 반제구국(反帝救國)을 주장하면서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의식하고, 신문화 수용을 비판한 것으로는 「문일지십 聞一知十」·「일망타진 一網打盡」「육축쟁공 六畜爭功」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적 전개
가사의 역사적 전개과정은 내용·형식·작가의식 등의 변모에 따라 대략 5기로 구분하여 살필 수 있다.
(1) 제1기
고려 말엽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로서, 가사가 발생하여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는 시기이다. 가사의 기원과 발생 시기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나 이두문(吏讀文)으로 표기된 나옹화상의 「승원가 僧元歌」와 신득청(申得淸)의 「역대전리가 歷代轉理歌」가 발굴되었고, 「서왕가」 등 나옹화상의 작품이 여럿 되는 것으로 보아, 가사의 발생시기는 고려 말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가사의 기원문제는 경기체가에서의 발생설, 시조에서의 발생설, 악장체에서의 발생설, 한시현토체에서의 발생설, 교술민요에서의 발생설, 불교계 가요에서의 발생설 등 여러 의견이 있지만, 4음보 민요의 율격적 낯익음과 대구(對句)형식인 사부(辭賦)의 영향, 그리고 불교의식에 쓰이던 화청(和淸) 등에서부터 가사의 관습적이고 개방적인 형식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제1기 가사문학의 전개양상은 승려계층에 의해 발생된 가사가 몇몇 사대부 관료에 의해 수용되고, 차츰 그들의 기호에 맞는 형식으로 자리잡아 조선 초기에 정극인의 「상춘곡」과 같이 세련된 작품으로 나타났다고 정리할 수 있다.
(2) 제2기
성종시대 이후 임란(壬亂) 전까지, 가사가 본격적인 문학양식으로 성장한 시기로 사대부 가사의 절정기라 할 만하다.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퇴계(退溪)·율곡(栗谷)과 같은 대학자들이 성리학 이론을 완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교의 세계관에 의해 사회가 안정되던 시기였던 만큼, 사대부의 이념을 바탕으로 강호자연을 관조하고 유유자적하게 자연미(自然美)를 완상(玩賞)한 작품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한편으로 정치적 패배에 따른 울분을 토로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가사들도 나오는데, 뛰어난 형상성을 지닌 작품이 많다. 사대부 삶의 즐거움을 노래한 이서(李緖)의 「낙지가」, 송순의 「면앙정가」, 허강의 「서호별곡」, 정철의 「성산별곡」 등과 임지(任地)를 여행하면서 얻은 감흥과 관료 생활의 즐거움을 읊은 백광홍의 「관서별곡」, 정철의 「관동별곡」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정계에서 밀려난 후 사랑하는 님에 의탁하여 연군(戀君)을 드러낸 정철의 「사미인곡」·「속미인곡」과 적객(謫客)의 쓰라린 회포와 충의심(忠義心)을 토로한 조위의 「만분가」 등은 연군 및 유배 가사의 전형이 되었다.
이 시기 가사의 형식적 특징이 가사의 형식의 전형으로 인정되는데, 그것은 율동 실현이라는 범위 내에서 4음 4보격의 안정된 율격을 비교적 온전히 지키고 있으며, 결구(結句)를 시조의 종장 형식으로 마감하는 형식의 완결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가사의 형식의 특징은 가창(歌唱)과 음영(吟詠) 및 완독(玩讀)이라는 향유 방식을 동시에 갖는 사대부가사의 관습적 장르 수행에서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제3기
임진왜란 이후부터 숙종 전까지, 사대부가사가 변모를 보이기 시작한 시기로 작가의 시선이 자연에 대한 관심에서 현실의 문제로 이동하는 특징을 보인다. 박인로의 「누항사」와 정훈의 「우활가」·「탄궁가」는 안빈낙도를 표방하지만 생활고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박인로의 「태평사」·「선상탄」, 채득기(蔡得沂)의 「봉산곡 鳳山曲」, 최현의 「용사음」 등에서는 임진·병자 양란을 배경으로 왜(倭)나 청(淸)에 대한 적개심을 표현하면서 전쟁의 비참함이나 전쟁으로 인한 사회의 피폐상을 읊었고, 파당과 분쟁을 일삼으며 수탈을 자행하는 위정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전쟁포로로 일본에 끌려 갔던 백수회(白受繪)는 「도대마도가 到對馬島歌」·「재일본장가 在日本長歌」 등에서 울분을 토로했고, 허전의 「고공가」와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에서는 임란 이후 위정자의 부패상과 무력감을 우의적 수법으로 꼬집기도 했다.
불교 가사도 고려 말 나옹화상의 작품을 잇는 휴정의 「회심곡」, 침굉선사의 「귀산곡」 등이 나왔다. 물론 이 시기에도 전기의 강호가사·연군가사·유배가사·기행가사의 계통을 잇는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창작된다.
강호가사로 고응척(高應陟)의 「도산가 陶山歌」, 박인로의 「사제곡」, 윤이후(尹爾厚)의 「일민가 逸民歌」, 조우인의 「매호별곡 梅湖別曲」이, 연군가사로 조우인의 「자도사 自悼詞」가, 유배가사로 송주석의 「북관곡」 등이 이어졌다. 기행가사는 조우인의 「출새곡」·「관동속별곡」, 이현의 「백상루별곡」, 박권의 「서정별곡」 등이 창작되었다.
이 시기의 가사 형식은 4음 4보격 율격을 이탈하면서 2음보를 기본 율격으로 하는 6음보 실현의 빈도가 다소 높아지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가사 향유 방식의 변모와 관계가 있어 보이는데, 내용의 전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창보다는 음영이나 완독의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4) 제4기
숙종 때 이후 동학 창도 이전까지, 가사의 담당층과 향유층이 크게 확대되어 가사의 성격이 크게 변모하는 시기이다. 사대부가사의 영향을 받아 규방에서도 가사 창작과 유통이 활발해졌고, 시정(市井)문화가 확산되면서 계층을 넘어서 향유될 수 있는 서민 취향의 가사가 생성된다.
규방가사는 안동 권씨의 1746년작 「반조화전가 反嘲花煎歌」나 전의 이씨의 1748년작 「절명사 絶命詞」, 연안 이씨의 1794년작 「쌍벽가 雙璧歌」와 1800년에 지어진 「부여노정기」 등으로 미루어 늦어도 18세기 중반에는 규방가사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전통적 질서가 흔들리던 상황이어서 유교 이념 강화를 주장하는 가사가 많이 지어졌는데, 이기경의 「심진곡」, 권섭(權燮)의 「도통가」 등으로 전기 교훈가사를 잇고 있다.
새로 들어온 천주교 측에서 교리와 포교를 내용으로 하는 천주가사를 내놓았다. 정약전의 「십계명가」, 이벽의 「천주공경가」, 이가환(李家煥)의 「경세가」, 최도마 신부의 「지옥가」 등으로, 이들은 18세기 말엽부터 교리의 전달과 포교에 사용되었다. 사대부가사도 지속적으로 창작되어, 남도진(南道振)의 「낙은별곡 樂隱別曲」, 박리화의 「낭호신사」, 조성신(趙星臣)의 「개암가 皆岩歌」 등이 강호가사의 맥을 이었고,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이용(李溶)의 「북정가」, 정재문의 「화양별곡」 등도 전기 기행가사를 잇고 있다.
연군가사로는 김춘택의 「별사미인곡」, 이진유의 「속사미인곡」 등이, 유배가사로는 안조환의 「만언사」, 김진형의 「북천가」 등이 창작되었다. 이 시기 가사 변모의 특징은 작품의 장편화 현상과 4·4조의 음수적 규칙을 고수하는 율격적 경직성을 들 수 있다.
장편가사의 등장은 가사의 향유 방식 가운데 율독의 비중이 높아져 가사가 독서물로 전환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율격 경직의 원인은 주 담당층인 양반 사대부계층의 이념의 경직성에서부터 말미암은 현상이 아닌가 한다.
한편 시정 음악문화의 성행으로 가창 위주의 가사가 나타난 것도 이 시기 가사 변모의 한 특징인데, 오늘날 ‘12가사(歌詞)’라는 형태로 남아 있는 이 가창가사는 시정 음악문화권을 통해 ‘형성’된 작품들로서 가사의 외연을 넓히면서 잡가 장르 형성에 주요 동인이 되기도 했다. 사실 통속적 애정을 주요 주제로 삼는 서민 취향의 작품들이란 대부분 이러한 시정 음악문화권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5) 제5기
동학의 창도와 개화기를 거쳐 1920년대까지로, 개화기의 격동하는 시대정신을 담아낸 작품들이 주로 창작되는 시기이다. 규방가사의 창작 및 유통이 활발해지고 의병가사와 개화가사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 시기는 가사의 쇠퇴기이기도 했다. 1860년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의 『용담유사』가 창작되어 만민 평등사상과 외세에 대한 저항의식을 고취했으며, 홍순학은 「연행가」에서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어 뜨거운 항일 구국의식(救國意識)을 담아낸 유홍석(柳弘錫)의 「고병정가사 告兵丁歌辭」, 신태식(申泰植)의 「창의가 倡義歌」가 지어졌다. 이러한 의병가사에서는 역사에 대응하는 사대부정신을 읽을 수 있다. 『독립신문』에 실린 개화가사는 개화기 지식인의 입장에서 자주독립과 개화사상을 고취했고,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가사들은 무비판적인 신문화 수용을 반대하였다.
이들 개화가사는 「우국가」·「애국가」란 제목이 유독 많으며, 대부분 애국·계몽의 성격을 지닌다. 또 출판 매체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밖에 유영무의 「오륜가」, 김경흠의 「삼재도가」 등 사대부가사들이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개화기의 근대교육과 1910·1920년대 신문학의 확산,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로 말미암은 표현의 억압 등은 가사의 창작을 급속하게 위축시켰으며, 비교적 제약을 덜 받은 규방문화권에서 규방가사의 유통을 끝으로 가사는 쇠퇴하고 말았다. 「李能雨」
영역닫기영역열기개화가사
개화기에 제작, 발표된 한국 시가의 한 양식을 개화가사라 한다. 그 내용은 개항과 함께 한국사회의 한 과제가 된 문명개화와 진보·발전·부국강병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형태면에서 보면 고전 시가의 한 양식인 가사의 전통을 그대로 잇고 있다. 즉,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4·4조 또는 3·4조의 자수율에 의거한다. 그리고 그 분량이 상당하여 긴 연형체(連形體) 시가이다.
시기적으로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창가나 신체시보다 앞서 제작, 발표되었다. 따라서 개화가사는 한국 시가 사상 최초로 형성된 근대적 양식이다. 다만,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그 선구성 때문에 과도기적인 면도 강하게 지닌다.
개화가사의 어투는 대개 직설적이다. 이는 근대시가 정서적인 언어를 써야 한다는 공리에 어긋난다. 개화가사의 또 다른 과도기 성향은 작자의 비전문성으로도 나타난다. 구체적인 예로 『독립신문』에 실린 개화가사를 보면 「ᄋᆡ국가」(인쳔제물포, 김경ᄐᆡ), 「동심가」(양쥬, 리쥬ᇰ원)·「쵸당가」(김교익)·「독립문가」(안셩, 김석하) 등이다.
이들 보기를 통하여 드러나는 바와 같이 개화가사의 작자는 모두가 전문적으로 글을 쓰거나 시가를 제작한 문필인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다수의 개화가사에는 작자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작품이 발표된 지면도 문예란이 아니라 사회면 기사와 같은 잡보란이었다. 근대 시라면 그 작자가 반드시 자신의 이름을 밝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그 제작도 필수적으로 양식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일부 개화가사에서는 그런 자취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면으로 보면 개화가사의 과도기 성향이 다시 한번 입증된다. 비전문적이고 개방된 양식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개화가사는 여러 사람에 의하여 아주 많은 숫자의 작품이 생산되었다. 구체적으로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것만 보아도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은 2백여 편에 달한다. 이것은 같은 개화기의 시가양식으로 창가나 신체시의 숫자가 대개 20∼30수에 그치는 것과 좋은 대조가 된다.
한편, 개화가사 가운데서 활자화된 것은 대개 발표매체가 일간지였다. 따라서 개화가사 가운데 많은 작품은 시사성을 띤다. 이 유형에 속하는 많은 작품에는 국내외 정세나 당시의 사회 사정이 반영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개교기념·운동회·농사·회의내용 등을 다룬 것도 있다. 결국 개화가사는 당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소박한 입장에서 다루고 읊조리는 입장을 취한 셈이다.
한편, 일부 개화가사 가운데는 상당히 강하게 현실비판과 고발의 입장을 취한 것이 있다.
이완용씨 드르시오 총리대신 뎌 지위가
일인지하 만인지상 그 책임이 엇더ᄒᆞᆫ가
수신제가 못한 사람 치국인들 잘ᄒᆞᆯ손가
전일사는 여하턴지 금일부터 회개ᄒᆞ여
가정기풍 바로잡고 백도정무(百度政務) 유신ᄒᆞ야
중흥공신 되여보소
송병준씨 드르시오 내무대신 뎌 지위가
중외정무 총찰ᄒᆞ고 관리현우(賢愚) 전형이라
그 책임이 지중인데, 공의 정책 말ᄒᆞᆯ진데
매국적을 면ᄒᆞᆯ손가
「권고현내각(勸告現內閣)」
개화가사는 그 과도기 성향 때문에 몇 가지 한계를 갖는다. 우선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들은 전문 작가가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격조가 확보되지 못하였다. 또한 개화가사는 근대시의 한 갈래로서 가사형식을 기계적으로 이용하여 거친 말들로 당시의 우리 주변에 빚어진 사회상을 반영했을 뿐이다. 근대시에 필요한 언어의 신선미라든가 긴축성 같은 것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개화가사는 근대시의 모습을 띠기 위해 말씨나 형태·구조 역시 고전시가의 경우와는 달라야 하였다. 특히, 4·4조의 자수율이 나름대로 지양 극복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 유형의 작품들은 이에 대하여 기능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편이다. 그리하여 1890년대 중반기경 개화기 시가의 또다른 양식인 창가가 나타나자 개화가사는 역사적 구실을 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유형의 작품들에게도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문학사적 의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하나가 한국 근대시 초창기에 나타난 양식이라는 점이다. 어설픈 대로 이 양식을 통하여 한국 근대시는 첫 걸음마를 시작하였다. 다음 이 양식을 통하여 우리 주변의 시가 제작 의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 전까지 우리 주변에서 시라면 한시를 뜻하였다. 더러 시조나 가사를 짓는 예가 물론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대부나 양반계층이 여기(餘技)로 손을 대었다. 또한 많은 경우에 그것들은 부녀자들의 손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개화가사의 작가는 그와 다르다. 이 양식은 당시 우리 주변에서 상당한 신분을 가진 관리나 문필인·사회활동가들도 썼다.
그러니까 개화가사에 이르러 우리 주변에서는 비로소 국문을 표현매체로 한 작품도 본격적인 문필활동으로 인식되기에 이른 셈이다. 그 밖에 이 유형에 속하는 작품이 나타나기 전 우리 시가에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이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였다. 그러한 극복 역시 개화가사를 통하여 가능했던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구사와 과제
가사문학의 연구사는 크게 두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자료 정리이다. 1936년에 처음으로 나타난 신명균 편(申明均編) 가사집인 『가사집 歌詞集』을 필두로, 1960∼1970년대에 김성배(金聖培)·박노춘(朴魯春)·이상보(李相寶)·정익섭(丁益燮) 공편(共編)의 『주해가사문학전집 註解歌辭文學全集』, 이상보의 『이조가사정선 李朝歌辭精選』, 권영철(權寧徹)의 『규방가사 閨房歌辭』 등이 나왔다.
그 뒤 1980년∼1990년대에 이상보의 『한국불교가사전집』(1980)·『17세기 가사전집』(1987)·『18세기 가사전집』(1991), 김동욱(金東旭)·임기중 공편의 『아악부가집』(1982), 임기중(林基中)의 『역대가사문학전집』 전 40권(1987·1988·1992·1998), 정재호(鄭在鎬)·김흥규(金興圭)·전경욱(田耕旭) 주해의 『악부』(1992), 최강현(崔康賢) 역주의 『한국고전문학전집 가사Ⅰ』(1993)·『기행가사 자료선집』(1996) 등이 간행되었다.
이들 가사집의 출간은 자료 정리에 매우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문학양식 연구의 본령은 구조, 형태 분석과 그를 통한 문예작품의 평가에 있다. 가사 연구의 다른 방향은 학문적인 연구사쪽이다 가사문학의 문학적 연구는 그 초점이 사적 연구와 장르론적 연구에 치우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작품을 문예학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은 지금까지의 연구가 본격적인 전 단계의 것임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가사 장르의 체계적 검토와, 개개 작품들의 문예학적 연구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 할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개정 (2001년)
이능우|김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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