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문학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과 다층적 세계관 및 이념들이 총체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기존 가사의 유형을 내용별로 분류한 것을 보면, 적게는 5종에서부터 많게는 32종류(139개 항목으로 나눈 경우마저 있다)에 이르기까지 유형 분류의 진폭이 아주 크다. 가사는 한 작품 안에서도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는 작품이 많아, 단순하게 구분하면 가사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세분하면 유형의 가닥이 잡히지 않아 복잡성만 더해진다.
그러므로 학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유형의 범주들을 토대로 교차 분류를 피하는 방향에서 몇 가지 유형을 묶어 그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한데, 현재로선 일정한 범주의 교차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가사의 주요 작가층이 양반 사대부계층이고, 작품의 양과 질에서, 또 작품세계에서도 양반 사대부 세계관의 투영이 지배적이라는 판단 아래 사대부가사(士大夫歌辭)를 중심으로 기술(記述)하고, 규방가사(閨房歌辭)와 서민가사(庶民歌辭)를 부가적 항목으로 하여 각각의 내용별 유형을 살피기로 한다.
이 밖에 특정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주제적 기준에 따른 것이기는 하나, 종교가사와 개화가사를 또 다른 유형으로 하여 간략히 기술해 보기로 한다.
(1) 사대부가사
① 강호생활(江湖生活):가사 장르가 문학적 세련성을 획득하며 구체적인 유형으로 자리잡을 때 형성된 유형으로, 자연과 합일을 표방하면서 강호지락(江湖之樂)을 읊은 작품들이 있다. 강호한정(江湖閑情)과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주된 주제이다.
이런 강호가사로는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 賞春曲」, 송순(宋純)의 「면앙정가 俛仰亭歌」, 정철(鄭澈)의 「성산별곡 星山別曲」, 차천로(車天輅)의 「강촌별곡 江村別曲」, 이양오(李養五)의 「강촌만조가 江村晩釣歌」, 박인로(朴仁老)의 「사제곡 莎堤曲」·「노계가 蘆溪歌」, 허강(許橿)의 「서호별곡 西湖別曲」, 정훈(鄭勳)의 「수남방옹가 水南放翁歌」, 작자 미상의 「낙민가 樂民歌」·「창랑곡 滄浪曲」·「안빈낙도가 安貧樂道歌」·「은사가 隱士歌」 등이 있다.
② 연군(戀君)과 유배(流配):사대부란 관료로서의 ‘대부(大夫)’와 독서인으로서의 ‘사(士)’가 복합된 명칭으로, 정치적인 진퇴(進退)를 숙명적으로 반복한 계층이다. 이러한 정치현실을 배경으로 사대부의 갈등을 읊은 가사에는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연군가사(戀君歌辭)와 정치적 패배로 인해 유배를 당해 유배지에서 겪는 고난의 생활상을 기술하면서 우국지정(憂國之情)을 토로한 유배가사(流配歌辭)가 있다.
전자에는 정철의 「사미인곡 思美人曲」·「속미인곡 續美人曲」, 조우인(曹友仁)의 「자도사 自悼詞」, 김춘택(金春澤)의 「별사미인곡 別思美人曲」, 이진유(李眞儒)의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이긍익(李肯翊)의 「죽창곡 竹窓曲」 등이 있고, 후자에는 조위(曹偉)의 「만분가 萬憤歌」, 송주석(宋疇錫)의 「북관곡 北關曲」, 이방익(李邦翊)의 「홍리가 鴻罹歌」, 안조환(安肇煥)의 「만언사 萬言詞」, 김진형(金鎭衡)의 「북천가 北遷歌」 등이 있다.
③ 유교 이념과 교훈:유교적 실천 윤리를 규범적으로 제시하거나 경세적(警世的) 교훈을 주제로 한 작품들은 특히 봉건 사회질서가 흔들리던 조선 중·후기에 지배질서의 유지나 이념 강화를 목적으로 많이 지어졌다.
이 유형에는 이름 높은 유학자가 지은 것이라면서 진술의 권위를 강조하는 「권선지로가 勸善指路歌」(조식), 「도덕가 道德歌」·「금보가 琴譜歌」·「상저가 相杵歌」(이황), 「자경별곡 自警別曲」·「낙지가 樂志歌」(이이) 등과 허전(許㙉)의 「고공가 雇工歌」 및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 雇工答主人歌」, 정훈의 「성주중흥가 聖主中興歌」, 이기경(李基慶)의 「심진곡 尋眞曲」, 정인찬(鄭寅燦)의 「삼강오륜자경가 三綱五倫自警歌」, 유영무(柳榮茂)의 「오륜가 五倫歌」, 작자 미상의 「오륜가 五倫歌」, 김경흠(金景欽)의 「삼재도가 三才道歌」 등이 있다.
넓게는 조선 후기에 여러 편의 경세류(警世類) 가사를 편집해 묶은 「초당문답가 草堂問答歌」나 규방가사의 한 유형인 「계녀가 誡女歌」류 등도 이 유형에 속한다.
④ 기행(紀行):일상적 주거 환경을 벗어나 명승지나 사행지(使行地)를 기행하고 여정(旅程)을 중심으로 견문과 감회를 읊은 가사들로서, 이 유형은 국내 기행가사와 국외 기행가사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주로 관료들이 부임지(赴任地)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거나 임지(任地) 주변의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경관을 읊은 것이고, 후자는 중국이나 일본에 사행을 다녀온 것으로 견문의 기록성이 높다.
국내 기행가사로는 백광홍(白光弘)의 「관서별곡 關西別曲」, 정철의 「관동별곡 關東別曲」, 이현(李俔)의 「백상루별곡 百祥樓別曲」, 조우인의 「관동속별곡 關東續別曲」·「출새곡 出塞曲」, 박순우(朴淳愚)의 「금강별곡 金剛別曲」, 위백규(魏伯珪)의 「금당별곡 金塘別曲」, 작자 미상의 「금강산유람록 金剛山遊覽錄」 등이 있다.
국외 기행가사로는 박권(朴權)의 「서정별곡 西征別曲」,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 日東壯遊歌」, 유인목(柳寅睦)의 「북행가 北行歌」, 홍순학(洪淳學)의 「연행가 燕行歌」, 작자 미상의 「연행별곡 燕行別曲」 등이 있다. 이방익의 「표해가 漂海歌」는 예기치 않은 표류로 인한 해외 경험을 읊은 것이다.
⑤ 전란의 현실과 비분강개:나라 안팎의 전란의 피해와 처참한 정상, 거기에서 오는 비애와 의분(義奮)을 토로한 작품들도 적지 않다. 전란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는 양사준(楊士俊)의 「남정가 南征歌」, 박인로의 「태평사 太平詞」·「선상탄 船上嘆」, 최현(崔晛)의 「용사음 龍蛇吟」 등이 있고, 전란 후 곤궁한 현실을 드러낸 작품으로 박인로의 「누항사 陋巷詞」, 정훈의 「우활가 迂闊歌」·「탄궁가 嘆窮歌」등이 있다. 애국계몽기의 의병가사도 이 유형에 포함될 수 있다.
⑥ 영사(詠史)·풍속(風俗)·세덕(世德):우리 나라의 역사나 가문(家門)의 전통을 노래한 것, 중국 역사나 고사(故事)를 읊은 것, 또 지리(地理)·풍물(風物)·풍속(風俗)·인사(人事) 등 신변에 관심을 표현한 것들을 말한다.
이들 중에는 신득청(申得淸)의 「역대전리가 歷代轉理歌」, 작자 미상의 「해동만고가 海東萬古歌」, 박리화(朴履和)의 「만고가 萬古歌」·「낭호신사 朗湖新詞」, 여러 종류의 「역대가 歷代歌」·「한양가 漢陽歌」·「농부가」 일부,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팔도읍지가 八道邑誌歌」·「팔역가 八域歌」·「광산김씨세덕가 光山金氏世德歌」·「전의이씨세덕가 全義李氏世德歌」, 김충선(金忠善)의 「모하당술회가 慕夏堂述懷歌」, 정습명(鄭襲明)의 「정처사술회가 鄭處士述懷歌」 등이 있다.
(2) 규방가사
규방가사는 부녀자들에게 향유된 가사로 ‘내방가사(內房歌辭)’라고도 한다. 규방가사의 내용별 유형 구분 역시 논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크게 ‘교훈가사’와 ‘생활 체험가사’로 나눌 수 있고, 전자는 다시 ‘계녀가류’와 ‘도덕가류’로, 후자는 ‘탄식류’와 ‘송축류’, 그리고 ‘풍류류’로 나뉜다.
‘교훈가사’의 주류는 ‘계녀가류’로 시집가는 딸에게 시집살이에 필요한 생활 규범을 가르칠 목적에서 『소학 小學』등의 유교적 규범을 전달하는 것이며, 그 내용이 13개 항목으로 전형화해서 구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계녀가’라는 제목의 많은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규범서에 바탕을 두지만 화자의 구체적 체험을 서술해 훈계하는 유형이 있는데, 「김씨계녀사」·「복선화음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도덕가류’는 특정인에게 주는 교훈이 아니라 일반 부녀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서술한 것으로 부덕(婦德)을 강조하는 「도덕가」·「오륜가」·「나부가 懶婦歌」 등이 있다. 그러나 교훈가사의 ‘계녀가류’와 ‘도덕가류’는 한 권의 책에 같이 필사되거나 여러 장의 ‘두루말이’에서 같이 발견되므로 내용을 분석하여 세분할 때 구분되는 유형이지 엄밀한 유형구분은 힘들다.
‘생활체험가사’는 「화전가」류 가사가 많으며, 시집살이의 괴로움과 신세한탄이 주류를 이룬다. 그 가운데 ‘탄식류’는 시집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인생의 무상감을 읊은 것으로 「사친가」·「사향가 思鄕歌」·「여자자탄가」 등이 있고, 남편의 사별, 노처녀의 한을 노래한 것으로 「한별곡 恨別曲」·「원별가 怨別曲」·「청상가 靑孀歌」·「노처녀가」·「춘규자탄별곡」 등이 있다.
‘송축류’는 자녀의 장래를 축복해 주는 「귀녀가」·「재롱가」·「농장가」 등이나, 부모의 회갑이나 회혼을 맞아 장수를 송축하는 「수연가 壽宴歌」·「헌수가 獻壽歌」·「회혼참경가 回婚參景歌」 등이 있다. ‘풍류류’는 「화전가 花煎歌」가 대표이며, 여행의 즐거움을 노래한 「관동팔경유람기」·「경주관람기」 등이 포함된다.
(3) 서민가사
임진·병자 양난 이후 서민의식의 성장은 문학사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두루 확인되는데, 가사작품에서도 그러한 지향을 보이는 작품들이 일부 보인다. 서민가사는 서민에 의해 지어졌거나 서민의식이 투영된 가사를 말하는데, 작가층의 개념이 모호해서 유형 성립에 문제점을 안고 있다.
종래에 서민가사의 주류는 ‘현실적 모순의 폭로와 비판’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로 알려졌는데, 「갑민가 甲民歌」·「기음노래」·「거창가 居昌歌」·「정읍군민란시여항청요 井邑郡民亂時閭巷聽謠」·「민원가 民怨歌」·「합강정가 合江亭歌」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이 봉건 지배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곧바로 이들을 ‘서민가사’라 할 수는 없다.
이 유형에 속한 작품의 대다수는 작자를 알 수 없는 것들로서 유교의 정신세계를 바탕에 깔고 있는 작품이 많기 때문에 ‘현실비판가사’라는 유형으로 따로 묶어 다루며 그 작자층도 서민층이 아니라 향촌의 몰락사족층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대개 조선 후기 신분제가 심하게 동요되던 시기에 나온 작품들로 보이는데, 이 시기는 양반계급의 숫자가 증가를 보인 반면, 실질적인 권리는 상대적으로 약해져 양반층 내부에서도 체제 비판이나 현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현실 사안에 대해 제한적 비판을 보이는 작품들을 서민가사로 보기보다는 기존 관념에 대한 도전과 인간 본능의 표출을 주제의식으로 하여 세계관에 변화를 보이는 작품들에서 서민들 특히 시정인의 개방된 세계관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유형에는 「청춘과부곡」·「규수상사곡」·「상사회답곡」·「양신회답가」·「단장사」·「송녀승가」·「재송녀승가」·「거사가」 등이 있다.
(4) 종교가사
종교의 교리를 세상에 널리 펴는 것을 주제로 한 가사로 경전 교리를 가사체로 서술한 것, 신앙정신에 입각하여 창작한 것, 전도를 목적으로 지은 것 등 모두 포함된다. 종교가사에는 불교가사, 천주교가사, 동학가사, 유교가사 등이 있다.
불교가사는 가사 발생문제의 쟁점이 되어온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서왕가 西往歌」·「승원가 僧元歌」 등에 이어 휴정(休靜)의 「회심곡」과 회심곡의 이본들, 침굉(枕肱)의 「귀산곡 歸山曲」·「태평곡」, 지영(智塋)의 「전설인과곡 奠設因果曲」·「수선곡 修善曲」 등이 있다.
천주교가사는 정약전(丁若銓) 등이 지은 「십계명가 十誡命歌」, 이벽(李檗)이 지은 「천주공경가」, 도마 최양업(崔良業)의 「사향가」·「삼세대의」 외 20편, 김기호(金起浩)의 「성당가 聖堂歌」 등이 있다.
동학가사는 천도교가사라고도 하는데, 후천 개벽의 도래를 주창하면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의 『용담유사』 9편은 가사가 곧 동학의 경전이 된 작품이며, 김주희(金周熙)가 설립한 상주 동학본부에서 수집 정리하여 간행한 동학가사 100여 편이 있다. 동학가사는 민중의 힘을 결집시킨 구국과 개혁의 사회적 이념이 자생적 근대 지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유교가사는 이태일의 「오도가 吾道歌」가 대표작이다. 종교가사는 세계관의 전환을 모색하면서 유교 이념과 마찰을 빚기도 했는데, 근대로 넘어 오는 이행기(移行期)에 이들이 가사를 매체로 이념논쟁을 벌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5) 개화가사
갑오경장(1894) 이후, 한일병합(1910)에 이르는 소위 ‘개화기’를 배경으로 개화문제를 중심화제로 삼은 가사들을 말한다. 이 유형은 개화문제를 놓고 찬·반의 입장이 분명하게 갈리면서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서구와 일본을 문명 개화의 모범으로 삼고 위로부터의 개혁을 내걸면서 계몽적 개화사상을 주장한 것으로는 「애국가」·「동심가」·「성몽가」 등이 있고, 반제구국(反帝救國)을 주장하면서 밑으로부터의 개혁을 의식하고, 신문화 수용을 비판한 것으로는 「문일지십 聞一知十」·「일망타진 一網打盡」「육축쟁공 六畜爭功」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