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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계(工匠契)

    촌락개념용어

     조선후기 장인들이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능률을 올릴 뿐만 아니라 배타적인 독점권을 유지하고 상부상조하기 위해 조직한 일종의 동업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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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공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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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촌락
    유형
    개념용어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장인들이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서 능률을 올릴 뿐만 아니라 배타적인 독점권을 유지하고 상부상조하기 위해 조직한 일종의 동업조합.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조선 후기 이래 관청수공업이 붕괴하고 민간수공업이 발전함에 따라, 관공장(官工匠)들은 사장(私匠)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이들은 독자적으로 상품생산을 하거나, 혹은 타인에게 고용된 임금노동자가 되기도 하였다.
    또 다수의 공장들을 고용한 수공업자로 성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장들은 단독으로 생산활동을 하였던 것은 아니고, 대부분 계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계는 일반적으로 공장계라는 개념 하에 포괄될 수 있었으나, 공장계가 실제 명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고 생산물품의 종류에 따라 다른 명칭들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시전(市廛)이나 공물계의 상인에게 공장들이 고용되어 있을 경우 공장들만의 독립적인 조직이 공장계로 불릴 수 있었다.
    상인에 의한 생산지배의 경우, 그 지배형태는 원료와 연장의 공급, 그리고 생산물의 수취에 국한되었으므로 생산조직은 전혀 공장들만의 것이었다.
    또한, 공장들만으로 조직된 공장계 자체가 생산만이 아니라 판매까지 총괄하는 경우도 많았다. 도자장(刀子匠)이나 총장(驄匠)과 같은 공장들은 수공업자로 성장하여 시전상인과 경쟁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공장계의 성장은 시전이나 공인과 같은 특권상인에게 큰 타격을 가하였다. 즉, 공장들은 본래 생산만 하고 제품은 시전에서 팔기로 의무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를 이행하지 않고 직접 판매도 하여 도고화(都庫化)하였다. 이런 공장계는 공물계나 시전과 동일하게 관청과 관계를 맺었고, 일정한 국역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독점권과 매점권을 보장받았을 것이다.
    공장계를 비롯한 특권상업의 이러한 성격은 기본적으로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지 못한 단계에서 가장 큰 구매자이며 감독자인 관청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게 되면 계의 성격은 물론이고 계의 존재형태도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후반 이후 상품화폐경제가 어느 정도 발달했지만, 각종 계의 독점성과 매점성은 강인하게 지속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특히 1894년의 갑오경장으로 그 특권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또한 공장계 중 일종의 무한회사 형태로 발전하여 회사라는 간판으로 정부의 허가를 얻은 것도 있었다.
    계는 생산조직이나 판매조직에 국한되지 않고 상부상조라는 아주 중요한 기능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계는 이러한 측면에서 기원되었으리라고 추측된다.
    계원들은 상호간에 굳게 결속하며 같은 직종의 비계원 공장들의 이익침해는 물론이고 관리의 횡포에 대항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특권 상업단체의 계가 사라진 뒤에도 상부상조적인 계는 꾸준히 존속하여 노동조합과 유사한 기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공장계는 단편적이고 한정적인 자료에서나마 육주비전(六注比廛)이나 시전과 동일한 내부조직과 운영방식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계원들이 선출한 대표는 상당한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였고, 정부도 그것을 인정하였다.
    그의 직무는 관청과의 연락과 납세, 계원의 명부와 전출입관리, 작업감독, 공동기금의 대출과 회수, 재신(財神) 관우(關羽)의 묘였던 남묘(南廟)와 도가(都家)의 치성 등이었다.
    주전계(鑄錢契)의 예를 보면 계원은 전체 집회 때 반드시 참석해야 하였고, 불참하였을 경우 엄벌을 받았다. 회의 때 회비를 거두었다. 또한 공장 각자는 임금에서 세금을 납입하여야 하였다. 신참인은 지면례(知面禮)로 상당한 금전이나 물건을 기부하여야 했으므로 계원이 되기도 어려웠다.
    계는 계원 자신의 작업과 의무를 일정한 조건으로 동생이나 아들에게 전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혈연적 폐쇄성도 가지고 있었고, 도제(徒第)양성 방법도 알 수 있다. 작업중에는 회음(會飮)과 유흥은 금지되었다. 그리고 벌로서 심한 경우 관청에 알리고 엄히게 다스리거나 밖으로 내치기도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한국근대경제사연구  (유원동, 일지사, 1979)

    • 국역한국지  (러시아 대장성,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 「도가상업체제의 형성과 해체」(강만길,『대동문화연구』 9,성균관대학교,1972)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장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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