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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정착촌(高麗人定着村)

촌락개념용어

 1990년대에 형성된 러시아 극동 지역의 새로운 고려인 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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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고려인정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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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
신이주고려인정착촌
분야
촌락
유형
개념용어
시대
현대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90년대에 형성된 러시아 극동 지역의 새로운 고려인 거주지.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소련이 해체되면서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이 연해주 일대로 이주하여 정착한 마을로, 고려인이 새로 정착한 특정 지역을 뜻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될 즈음에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가운데 일부는 극동 지역으로 이주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달라진 언어 환경의 변화와 체제 전환 속의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계속된 민족 차별을 겪고 있었기에, 이미 유럽과 가까운 러시아의 여러 지역은 물론, 남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지로 이주하기도 하였는데, 점차 극동 지역에도 관심을 가졌다.
극동 지역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고려인들에게 언어 문제의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지역이면서, 동시에 부모가 태어나 자란 곳이자 강제 이주로 인한 고향의 향수를 풀어줄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였다. 자연히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은 개인적으로 연해주로 이주하여 새로운 터전을 닦았고, 그 뒤에도 일부 고려인이 개인 사업을 통해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이주가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 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곧 정부의 지원이 없이 진행된 고려인의 새로운 이주는 큰 난관을 맞았다. 이주한 고려인들의 일부는 여전히 시장 상인이나 농업 활동 등으로 어렵게 살았다. 이주 환경은 생각보다 나빠서, 직장, 주택, 자녀 교육 등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특히 주택 문제는 가장 큰 문제였다.
1997년에 연해주 당국은 크레모보, 포포프카, 라즈돌로예, 플라토노프카 등 8개 지역에서 이전에 러시아군이 사용하였던 군용 막사를 새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숙소로 무상 임대하였다. 또한 1998년 1월에는 연해주 주지사의 명령에 의하여 연해주 고려인이 설립하였던 ‘연해주 고려인 재생기금’으로 군용 막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일부 고려인은 지역 주민의 아파트를 빌려 생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기와 수도, 가스 등의 기반 시설을 보수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새로운 이주자의 러시아 국적 취득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영역닫기영역열기현황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들이 주택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한국의 여러 기업과 NGO가 인도적인 차원에서 정착촌을 건설하였다. 곧 대한주택건설협회가 1999년에 우수리스크(Ussuriysk) 인근 미하일노프카 지역에 한국형 단독주택을 건설하였는데, 이 단독주택 단지는 ‘우정마을’로 불렸다.주택 건설은 현지에 살고 있는 다른 민족의 저항을 받으면서 진행되었지만, 거듭된 난관에도 불구하고 35가구의 고려인 세대가 정착하면서 다른 민족도 포용하는 정책으로 실행되었다. 때문에우정마을 주변에는 고향마을의 18가구를 비롯하여 순얏센마을 등이 새로운 고려인 정착지로 형성되었고, 크레모보에서는 42가구가 이전의 군용 아파트를 개조하여 계속 생활하고 있기도 하다. 그밖에 플라토노프카에 9세대 22명, 포포프카에 8세대 20명, 라즈돌노예에 14세대 25명, 노보네즈노에 10세대 등이 새로 이주한 고려인으로 살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연해주 일대로 새로 이주한 고려인은 농지를 빌려 수박, 양파, 콩 등을 재배하며 살았지만, 생산성은 매우 열악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자연히 주택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국의 여러 단체가 지원하는 재정에 의존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고려인 사회에 알려지면서, 지금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하는 고려인은 거의 없는 상태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4년)
황영삼(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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