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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보역새놀이(東海洑役事─)

민속·인류놀이

 봄철에 동해시 삼화동 지역에서 농경문화와 관련된 보(洑)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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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동해보역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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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
동해보역사놀이
분야
민속·인류
유형
놀이
성격
민속놀이
놀이시기
관련단체명
동해문화원
전승지
동해시 삼화동
시대
현대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봄철에 동해시 삼화동 지역에서 농경문화와 관련된 보(洑)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민속놀이.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동해지역 중 삼흥지역의 평야지대에서 논물대기와 관련하여 보(洑)의 축조, 보수 등의 공사(工事)를 둘러싸고 경쟁 붙이는 놀이이다. ‘역새’는 역사(役事), 또는 사역(事役)을 뜻하는 말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척주절의록(陟州節義錄)』과 『진주지(眞州誌)』에 의하면, 1584년 선조 17년 박지생(朴芝生)이 삼화동 홍월평에 관계수로를 개설하고 농토를 확장했기에, 당시 부사를 지낸 신경희(申景禧, 1600-1602 재임)가 그의 부역을 면제해주었다고 전한다. 그 뒤 김예순(金禮順)과 최진후(崔鎭厚, 1603-1670) 역시 박지생의 뒤를 이어 보를 쌓고 농토 개간에 힘쓴 것으로 전해진다. 또 다른 견해로는 1646년(인조 24)에 시작되었다는 견해와 1661년(현종 2)에 삼척부사 허목(許穆, 1595~1682)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강원도 삼흥과 삼화(三和)지역 사이의 ‘홍월평(紅月坪)’이란 평야지대에서 논물대기 문제로 마을간 분쟁이 있었다고 한다. 죽림동 사람들은 도랑에 물을 막고 논물을 대고 노래를 부르면서 모심기를 하였으나, 아랫마을 홍월평 농민들은 모심기를 할 수 없게 되자 “물을 같이 써야지 이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다가 어느 청년이 윗마을에서 막은 물고를 허물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두 마을이 석전(石戰)을 벌이며 격렬하게 싸우자, 삼척 부사 허목이 보(洑)를 보수하면 수량이 많아질 것이니, 보를 쌓아 물을 나누어 쓰도록 설득하여 ‘홍월보’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 보를 축조하면서 벌인 노동과 잔치를 놀이로 승화시킨 것이 오늘날의 ‘보역새놀이’의 유래로 알려져 있다.
이 놀이는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다가 최근 들어 복원된 놀이이며, 1985년 제3회, 1994년 제12회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놀이방법
놀이방법은 4개의 과장에 따라 진행된다. 제1과장은 두 마을 주민들의 입장과 모내기의 곤란한 상황을 그려낸다. 먼저,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농민 두 팀으로 나누어서 농기를 앞세우고 입장한다. 그리고는 아랫마을 사람들이 물이 없어 모내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을 토로한다. 이장이 마을 회의를 소집해서 윗마을에서 물고를 막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마을주민들은 삽, 괭이, 곡괭이 등의 농기구를 들거나, 팔을 걷어 부치고 윗마을로 쳐들어간다.
제2과장은 윗마을의 모심기 광경을 그려낸다. 윗마을에서는 물이 풍족하기 때문에 콧노래를 부르거나 노동요를 부르면서 모내기를 한다. 선창자가 “심어보세 심어보세 요모조모 심어보세”라고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오종종종 심어보세”라고 후렴을 받는다.
제3과장은 두 마을의 갈등을 그려낸다. 윗마을로 쳐들어간 아랫마을 주민들은 “논물을 같이 써야지 이렇게 물을 가두어두고 혼자 쓸 수 있느냐”라고 시비를 건다. 윗마을 주민들은 이에 대응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대항을 한다. 그러면 아랫마을 청년들이 물고를 허물어버리는데, 윗마을 청년들이 이를 보고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마침내 돌싸움으로 진행된다. 출연자의 1/3은 돌에 맞아 쓰러지기도 하고, 농악패는 빠른 장단을 연주해서 흥분을 고조시킨다.
제4과장은 화합의 마당이다. 싸움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삼척 부사가 4~5명의 포졸과 함께 위엄 있게 등장해서 “보를 축조하면 수량이 많아지고 그 때 물을 나누어 쓰라”고 설득하고는 두 편으로 나누어 보를 쌓도록 지시하여 서로 경쟁을 붙인다. 진편은 술 한말과 음식을 내도록 하고 보막이가 시작되는데, 두 마을 주민들은 목두질, 둔대질, 가래질을 하면서 보를 쌓고, 특히 남자는 지게를 지거나 여자는 머리에 이고 경쟁적으로 돌과 흙을 옮긴다. 또한 피로감을 녹이고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농요를 부르기도 한다. 이 때, “뒷동산의 살구꽃은 가지가지 봄빛이요”라고 선창하면, “에∼화∼역∼사∼”하고 후렴을 받는다. 마침내 승부가 가려지면 이긴 마을이 술과 음식을 대접받으며 신명나는 놀이판을 벌이고 나서 퇴장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놀이의 출연자는 기수 4명, 풍물패 8명, 마을이장 2명, 민요 선소리꾼 2명, 고을 원님 1명, 포졸 3명, 마을사람 60명, 역사꾼 다수로 구성한다. 또한 소품으로는 깃발 4개, 풍물악기 8개, 삽 20자루, 괭이 20자루, 곡괭이 10자루, 가마 1세트, 인조모 1식, 석전돌 300개, 보 20m, 녹색천 20m, 술과 음식 1식, 기타 소품 등이 쓰인다. 의상은 민복 4벌, 풍물패 복색 8벌, 마을이장 민복 2벌, 민요꾼 2벌, 고을 원부사 1벌, 포졸복 3벌, 마을 사람 60벌 등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활민속적 관련사항
농경문화에서 물은 농사의 성패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강원도지역 농민들은 계(契)를 조직하거나 돈을 모아 보의 축조나 수리, 또는 수로(水路) 보수비용으로 사용해왔다. 또한 봇물을 가둔 보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를 보제(洑祭), 또는 봇제사라고 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4년)
목진호(한양대학교 무용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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