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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등놀이(觀燈─)

    민속·인류놀이

     사월 초파일에 석가의 탄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등에 불을 밝혀 달아매는 불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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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파일
    분야
    민속·인류
    유형
    놀이
    성격
    불교행사
    놀이시기
    사월초파일
    시대
    고대-남북국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사월 초파일에 석가의 탄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등에 불을 밝혀 달아매는 불교행사.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통일신라시대부터 행하였으나, 성행된 것은 고려조에 들어와서이다. 10세기에 고려 태조가 등놀이를 포함한 팔관회와 연등회를 국가적으로 장려하자, 이 행사는 고려조의 전체 시기를 통하여 온 나라의 축제가 되었다. 이 행사를 10월 초겨울에는 서경(西京)에서 하고 11월 15일에는 개성에서 거행하였다.
    그 뒤로 천령(天靈)·오악(五岳)·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 등의 토속신을 제사하는 의식도 첨가되었다. 팔관회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척불숭유정책의 영향으로 쇠퇴하였으나 연등놀이만은 민간행사로 이어지게 되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최우(崔瑀)가 집권한 이후 4월 8일인 석탄일에 행하였다 한다.
    고려 때에는 초파일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종이를 오려 기를 만들고, 물고기 껍질로 북을 지어서 마을 안을 돌아다니면서 등불을 켤 재료를 얻는데 이를 ‘호기(呼旗)’라 하였다.
    조선조 세종 때는 사찰 이외의 가정에서는 연등을 달지 못하도록 금한 일이 있으나, 서울에서는 거리와 시장이 서로 경쟁해서 10여길이나 되는 장대를 세우고 그 위에 등을 달았다. 장안에서는 현등(懸燈)하는 집이 많아 거리가 밝아져 사람들이 밤새도록 거리를 돌아다녔다고 『동국세시기』에 기록되어 있다.
    초파일의 현등은 민가와 사찰의 내용이 조금 다르다. 각 가정에서는 등간(燈竿)이라 하여 마당에 긴 장대를 세워 등대를 만들고 꼭대기에 꿩의 꼬리털을 꽂아 장식하고 오색비단의 깃발을 늘어뜨린다. 꿩의 꼬리는 길상(吉祥)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 민족은 농기(農旗)의 꼭대기에도 흔히 이것을 꽂았다.
    등대에다 줄을 매고 식구수대로 등을 달았으며, 이것을 세우지 못하는 집에서는 기둥이나 추녀 밑에 등을 달기도 하였다. 등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만든 재료와 형태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모양에 따라서 마늘등·연꽃등·수박등·일월등(日月燈)·북등·누각등·종등(鐘燈)·배등[船燈]·가마등·머루등·난간등·항아리등·방울등·병등(甁燈)·알등·화분등·공등·바구니등·거북등·자라등·봉등·용등·학등·잉어등이 있다.
    이 밖에도 남산등·만세등·수복등·태평등·사각등·육각등·팔각등 따위의 이름이 전한다. 등은 나무나 대나무를 깎아 살을 만들고 여기에 종이를 바른 것이 많으나 때로는 천을 바르기도 한다. 등지(燈紙)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채색을 해서 호화롭게 하며, 꼬리를 달아 바람에 나부끼게 해서 모양을 내는 일도 있다.
    특히, 주마등(走馬燈) 같은 것은 종이를 오려서 만든 여러 짐승이 등 안에서 돌아가게 되어 있어, 밖에서 볼 때 그 그림자가 마치 짐승을 사냥하는 것처럼 보여 아이들에게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사찰에서는 신도들이 수천개의 현등을 만들어 달아 장관을 이룬다. 초파일날에 신도들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며 제각기 등을 다는데, 가족수대로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적고 불을 밝힌다.
    초파일 밤에는 불꽃놀이를 하기도 한다. 참나무 껍질을 태운 가루나 뽕나무 숯가루에 소금과 사기그릇 가루를 섞어서 종이로 싼 다음, 여러 마디로 묶어 마디마다 서서히 타들어가도록 만든다. 이것들을 끈으로 장대 위에 매달거나 줄을 높이 매단 뒤 밤중에 태우면 불꽃놀이의 효과가 더욱 살아난다.
    초파일 밤의 현등이나 불꽃놀이는 볼만한 구경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거리에 나가 관등놀이를 즐겼고 인근사찰에 가서 관등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부녀자들의 상사(上寺)를 사회적으로 이단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초파일만은 절에 가는 것을 허용하고 야금(夜禁)을 해제해서 관등의 흥청거리는 분위기를 복돋워주었다.
    관등행사가 세시풍속으로 정착하여 생활화함에 따라 「관등가」나 「등타령」 같은 노래도 생겨났다. 이들은 여러가지 등의 명칭을 나열하면서 그 특징을 흥미롭게 노래로 엮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월초파일이 되면 절 경내는 빽빽한 관등의 대열로 가득차 휘황찬란한 모습을 연출하고, 옛날의 성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불교신도들의 연등행렬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임동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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