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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들상여(─喪輿)

    민속·인류문화재 | 유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마을에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는 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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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남은들마을에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는 상여.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중요 민속자료 제31호. 이 상여를 보존해 오고 있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남은들상여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상여는 조선 고종의 할아버지이며, 흥선대원군이하응(李昰應)의 아버지인 남연군(南延君)이구(李球)의 묘소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가동으로 옮길 때 쓰여졌던 것이라고 한다.
    남연군은 1822년(순조 22)에 죽었는데, 초장지(初葬地)는 경기도 광주시 분원리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언제 어떻게 초장을 하고 이장하였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이 마을에 전해 오는 말로는 현재 남연군의 묘소가 있던 터는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터가 천하의 명당이라는 지관의 풍수설에 의하여 흥선대원군이 몰래 불을 놓아 태우고 이장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장을 하고 난 그 이듬해 둘째아들인 이재황(李載晃)을 낳았으며, 이 묘의 지덕(地德)으로 나중에 고종으로 등극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로 미루어 보아 최소한 고종의 탄생년인 1852년 이전에 이장하였으리라고 보이며, 이 상여 또한 그 이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자료의 하나로, 고종은 즉위 이듬해인 1865년 남연군묘소에서 동쪽으로 2㎞ 정도 떨어져 다시 세워진 가야사를 보덕사(報德寺)라고 명명했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남연군의 묘비에는 1865년으로 건립연대가 음각되어 있어, 고종의 즉위와 남연군에 대한 인식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남은들상여와 남연군에 얽힌 유래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상여의 구조는 기본틀인 장강채의 앞뒤 양끝 아래쪽으로 쇠고리를 달아 횡강채를 끼우도록 되어 있고, 중간에 소방상(小方狀)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장강에 세운 기둥 위에 배방목(排方木)을 끼우고, 그 위에 판첨(板簷)을 올린다. 이 판첨은 상첨과 하첨으로 나뉘어 이어져 있는데, 유소를 단 ‘봉못’을 좌우에 4개, 앞뒤에 2개씩 끼워 배방목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판첨 네 귀에는 유소를 단 봉수(鳳首)를 꽂았다. 판첨 아래로는 네 면에 검은 천으로 된 벽적(辟積)을 둘러 소방상을 감싸고, 바로 판첨 아래에 붉은 비단띠에 노란 비단폭으로 만든 진용(振容)을 내려 드리웠다.
    판첨 위에는 지붕과 같이 둥글게 만들고 앞뒤판에 용각을 새긴 만충연(彎衝緣)을 배방목에 달고, 겉에는 검은 천으로 씌운 별갑(鼈甲)을 설치한다. 그리고 그 위에 ‘용마루와 꼭두각시’라고 부르는 정자(頂子)를 중앙에 꽂은 용머리와 몸채를 새긴 연용(緣桶)을 올린다. 또한 소방상의 앞뒤에 네 개의 앙장채를 펴서 앙장(仰張)을 쳤으며, 네 개의 앙장채는 끈으로 장강채에 묶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하였다.
    장강채의 길이는 596㎝, 판첨의 길이는 196㎝, 너비는 76㎝, 높이는 16.5㎝이며, 별갑의 만충연의 길이는 69㎝, 너비는 52.5㎝, 높이는 35. 3㎝이고, 연용의 길이는 85㎝, 높이는 26.5㎝이며, 꼭두각시의 높이는 25㎝이며, 앙장의 크기는 284×185㎝이다.
    전체 구조는 장강·소방상·별갑·판첨·앙장의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어 왕가(王家)의 대여(大轝)와 비슷한 격식으로 되어 있으나, 소방상 밖의 주위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이 다르다고 하겠다.
    이러한 구조나 또는 그 부속품들의 조각수법과 4㎝ 두께의 목재를 사용한 점, 그리고 그 겉에 입힌 단청의 질이나 수법이 매우 뛰어난 점 등으로 보아, 왕가에 버금갈만한 가문에서 제작한 것이라 짐작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남은들상여」(박진주,『민속자료조사보고서』 31,문화재관리국,1971)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장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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