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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체(加髢)

의생활물품

 여자의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려고 덧넣는 딴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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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필 풍속도 화첩/단오풍정
분야
의생활
유형
물품
성격
복식, 장신구, 가발
용도
생활
시대
고대-남북국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여자의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려고 덧넣는 딴 머리.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흔히 ‘다래’ 또는 ‘다레’라고 하나 표준어는 다리이다. 한자로는 ‘체(髢)’라 하고, ‘월자(月子)’라고도 한다.
『태평어람(太平御覽)』 신라조에 신라 부인에는 미발(美髮)이 많고 길이가 길다고 하였으며, 『당서(唐書)』 신라조에도 아름다운 두발(頭髮)을 머리에 두르고 주채(珠綵)로 장식하였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머리 모양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서는 오래 전부터 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성덕왕조에 ‘미체(美髢)’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다리이며, 신라의 명물로 외국에 수출도 하였다.
또한 『당서』 신라조에 남자가 머리를 깎아 팔았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가난한 자가 머리를 깎아 다리로 판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체의 풍습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가체의 풍습은 있었다.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에는 원나라의 영향도 받아 더욱 크게 성행하였다.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가체는 부녀자 수식의 절대적인 조건이 되었다. 『성종실록』에는 사람들이 고계(高髻)를 좋아하여 사방의 높이가 한 자가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다리를 더하여 얹은머리를 높게 한 것이다.
이러한 머리 사치를 위하여 가산의 탕진은 물론, 심지어는 나이 어린 신부의 방에 시아버지가 들어오자 갑자기 일어나다 머리 무게에 눌려 목뼈가 부러진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가체를 마련하지 못한 집에서는 혼례를 치르고도 시부모 보는 예를 행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영조 때는 가체를 금하고 족두리로 대용하게 하는 가체금지령을 내려 이를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예장할 때 꾸미는 머리 모양에 계속 가체가 사용되는 등 금체령의 완전 실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조 때 다시 사대부의 처첩과 여염의 부녀는 가체는 물론 본머리에 다리를 보태는 것도 금지하고, 천한 신분의 여인은 머리를 얹는 것은 허용하되 다리를 드리거나 더 얹는 것을 금하는 내용의 금지령을 내렸으나 이루어지지 않다가 순조 때에 이르러 비로소 사라지게 되었다.
다리는 머리 모양에 따라 다리를 머리에 붙이거나 위에 얹어 사용하였다. 조짐머리·얹은머리·새앙머리·어여머리·대수·큰머리 등은 긴 다리로 모양을 만들어 머리에 얹었고, 첩지머리·쪽머리 등에는 제 머리와 다리를 같이 빗어내려 한데 땋아서 사용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유희경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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