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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목은선생문집판(稼亭牧隱先生文集板)

    출판문화재 | 유물

     고려 후기의 학자 가정이곡(李穀)과 그의 아들 목은이색(李穡)의 시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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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후기의 학자 가정이곡(李穀)과 그의 아들 목은이색(李穡)의 시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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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이곡과 이색은 부자 사이로 고려말의 거유(巨儒)로서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모두 고려와 원(元)나라 문과에 급제한 명현이다.
    이곡의 시문집인 『가정집』은 1364년(공민왕 13)에 이색이 편집하고 사위 박상충(朴尙衷)이 금산(錦山)에서 펴냈으나 조선 초에 소실되고, 1422년(세종 4)에 손자 이종선(李種善)이 두 번째로 펴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635년(인조 13) 후손 이기조(李基祚)가 경상감사 때 대구에서 세 번째로 펴냈으나 뒤에 멸실되어 1662년(현종 3) 후손 이태연(李泰淵)이 20권 4책을 전라감사 때 전주에서 네 번째로 펴낸 문집판이 지금의 문헌서원(文獻書院) 소장본이다.
    이색의 『목은집』은 셋째 아들 이종선(李種善)이 편수(編修)하여 1404년(태종 4)에 70권을 펴냈으나 1417년 국내 요참(妖讖)의 문적을 없앤다고 할 때 함께 피해를 보았는데, 1626년(인조 4) 8대손 이덕수(李德洙)가 순천현감 때 삭제된 부분을 교정하고 새로 찾아낸 자료를 보완하여 55권 25책으로 다시 펴냈다.
    처음에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의 고촌서원(枯村書院)에 두었는데, 현재는 기산면 영모리의 문헌서원으로 옮겨 장판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975매로 구성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이곡과 이색은 고려말 사대부로 명망이 높기 때문에 조선초기부터 문집 간행이 이루어졌다. 따라서『가정집』과 『목은집』의 목판은 유학적인 측면에서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목판의 내용이 고려 말의 사회상을 충실히 담고 있어서 사료가 부족한 고려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9년)
    김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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