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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재우득록목판(困齋愚得錄木板)

출판문화재 | 유물

 조선 중기의 학자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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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 중기의 학자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 1529~1590)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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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서지사항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6호. 원래 108판이었으나 권128매 중 13매, 권227매 중 16매, 권333매 중 11매, 부록 20매 중 8매 등 48매만이 남아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문집의 판각작업은 1689년(숙종 15) 왕명으로 홍문관에서 등진(謄進) 작업이 착수된 뒤 나만성(羅晩成)과 나두동(羅斗冬)에 의해 교정이 완료되고, 1691년 전라감사 이현기(李玄紀)가 나두춘(羅斗春)을 시켜 판각을 도와줌으로써 비롯되었다. 무안현감 홍만조(洪萬朝)는 윤세태(尹世泰)·고완(高玩) 등 무안유생들을 모아 판각하여 1692년 여름에 완성하였다. 부록은 1703년에 이루어졌다.
정개청은 자는 의백(義伯), 호는 곤재, 시호는 문청공(文淸公)이다. 어린 시절 보성의 영주산사에서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의학 등의 학문을 익혔다. 그후 서경덕을 스승으로 박순(朴淳)과 교류하였으며, 1570년경에 함평군 엄다면 엄다리 제동 마을로 귀향하여 정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후 정여립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우득록』 이외에 『수수기(隨手記)』와 『변례편성(變禮編成)』이 있지만, 수수기와 변례편성은 기축옥사 때 분실되었다고 전한다.
정개청의 『우득록(愚得錄)』은 334편의 글이 실려 있으며 본편 3책, 부록 1책으로 되어 있다. 서문은 1681년(숙종 7)에 허목이 지었다. 본편 3책 중 1~2책은 성리제설(性理諸說)과 서기(序記)가 수록되어있고, 3책에는 상소·제문·서(書)·습유(拾遺)가 실려 있다. 부록 상권에는 정개청의 세계와 사실(事實), 하권에는 행장과 허목이 쓴 곤재전(困齋傳)이 수록되어 있다.
이 목판은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면 엄다리고성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고,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정개청의 문집 판목 전체가 다 남아 있지는 않지만, 문집의 내용을 통해 당시 호남 사림들의 동향과 인맥을 살펴볼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문화재도록-도지정문화재편-』(전라남도,1998)

  • 국역우득록  (전라남도, 1988)

  • 『우득록목판 조사보고서-1986년도 지정문화재 조사보고서 2-』(이해준,전라남도,1986)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김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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