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효열록(孝烈錄)

출판문화재 | 문헌

 1834년 김영락이 제주도 백성의 효행과 열의(烈義)에 관한 기록을 모아 엮은 언행록.   교훈서.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효열록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834년 김영락이 제주도 백성의 효행과 열의(烈義)에 관한 기록을 모아 엮은 언행록.교훈서.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효열록(孝烈錄)』은 1834년(순조 34) 1월에 김영락(金英樂)이 겸방어사(兼防禦使) 한응호(韓應浩)의 명을 받아 제주 백성 가운데 효자(孝子) 26명·효부(孝婦) 6명·열녀(烈女) 27명·의사(義士) 3명 등 모두 62명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2009년 7월 24일에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고, 제주교육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편찬/발간 경위
『효열록』은 과거 암행어사들이 조정에 올렸던 「장계 초록(狀啓抄錄)」과 각 고을 관부(官附)에 올린 「첨문(帖文)」을 근거로 하여 편찬(編纂)하였다. 서문에는 효행과 열의를 실천한 제주 백성들의 기록을 남겨 아름다운 행실을 드러내고 아울러 다음 세대에 본보기로 삼도록 하기 위해 찬(撰)한다고 그 편찬 경위를 서술하였다.
이 책이 필사(筆寫)된 후 향교(鄕校)·귤림서원(橘林書院)·향청(鄕廳)·영청(營廳)·대정학당(大靜學堂)·정의서당(旌義書堂)에 각 1권씩 배부되었다. 영청에 비치된 『효열록』만이 현전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서지사항
필사본(筆寫本). 1권 1책. 표지에 ‘효열록 영청 상(孝烈錄 營廳 上)’이라 묵서되어 있다. 모두 17장으로, 크기는 세로 34.0㎝, 가로 20.0㎝이다. 본문에 계선이 없으며, 행자수는 10행 29∼30자로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효열록』은 겸방어사 한응호의 명을 받아 김영락이 편찬한 것이다. 책의 내용은 김영락이 쓴 서문, 효자 김칭(金稱)·진대석(秦大石) 등 26명, 효부 김옥(金玉)·최조이[崔召吏] 등 6명, 열녀 정씨(鄭氏)·천덕(千德) 등 27명, 의사 오흥태(吳興泰)·양위경(梁渭慶)·구제국(具濟國)등 3명의 이름과 거주지 그리고 가족과 나라를 위해 행한 일을 기록하고 정려(旌閭)나 표창을 내린 내용을 수록하였다.
효행의 경우, 김칭은 어머니의 병을 낫게하기 위해 종아리 살을 베어 그 피를 먹였고 현윤경(玄胤京)·김종은(金宗銀)·양종인(梁宗仁)·진달열(秦達悅)·강봉한(姜奉漢)·송경훈(宋京勛)·양흡(梁翕)은 부모님의 임종 때에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이를 먹여 생명을 연명(延命)하게 하였다. 또한 홍달한(洪達漢)·부천겸(夫千兼)·현원상(玄遠祥)은 어버이의 변을 맛보고 치료의 대책을 세웠고, 진대석·고찬원(高贊元)·고한원(高漢元)은 각 고을에 음식을 구걸하여 어버이를 봉양하였다. 송계호(宋繼豪)의 처 김조이는 24살에 과부가 된 후에도 증조 시할아버지를 모셔 추운 겨울에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기 위해 하늘에 기도를 하여 여울 밖에 튀어나온 백어(白魚)를 잡아다가 국을 끓였다는 등의 내용도 기록되었다.
그리고 열의의 경우 정씨, 천덕, 국자, 박씨(朴氏), 부가처(夫哥妻) 등은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자, 한스러움을 감당하지 못하여 종신토록 수절(守節)하거나 죽음으로 절개(節槪)를 지켰다는 내용이다. 당시에는 남편을 잃은 아내가 지아비를 따라 자살하면 '열부(烈婦)'라고 하였고, 그 집안의 호별세(戶稅)를 면제하고 자손의 부역을 덜어주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효열록』은 제주도 백성의 효행과 열의를 기록한 가장 오래된 자료로, 충·효·열이 망라되어 있어서 후세에 윤리 교육을 강화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제주 백성들의 향토사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써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3년)
남권희(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