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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인왕경구결(舊譯仁王經口訣)

언어·문자문헌

 1973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에 소장된 불교경전.   복장유물·구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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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인왕경구결3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73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에 소장된 불교경전.복장유물·구결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구결이란 한문을 우리말로 새겨서 읽던 방법의 하나로, 1973년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문수사(文殊寺) 소장의 금동여래좌상 복장물(腹藏物)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원래 이 불상은 1346년에 조성된 것으로, 이 구결은 그 이전에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구결이 쓰여진 『구역인왕경』은 상하 2권이나 상권의 2·3·11·14·15장의 5매만이 발견되었다.
이 불경은 목판본으로 그 자체(字體)는 고려대장경 자체의 하나인 구양순체(歐陽詢體)이지만, 판식(版式)은 1행 17자의 사간본(寺刊本)의 양식이어서 이제까지 알려진 고려시대 불경의 판식과는 계통을 달리한다.
이 구결은 한문으로 인쇄된 원문의 좌우 행간(行間)에 작은 글씨로 토(吐)를 넣은 것이다. 이 구결에 나타난 어법과 표기법 및 판식 등으로 미루어 보아 대체로 12세기 중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구결의 토는 차자(借字)와 한 개의 점으로 이루어졌다. 토의 종류는 300여 종이나 되는데, 이를 표기한 차자는 모두 51자이다. 차자의 자체는 해서체와 초서체가 섞여 있고, 획이 단순한 한자에서 빌린 차자는 원글자대로 쓰고 획이 많은 한자에서 빌린 차자는 약체(略體)로 썼다.
약체는 원글자의 앞부분이나 뒷부분에서 일부의 획을 딴 것이다. 이 원리는 조선시대의 구결에 쓰인 약체와 공통되므로 자형상(字形上) 일치하는 것이 있으나, 이 구결에만 쓰인 것도 있어서 아직 그 정자(正字)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
한편, 일본 가나(假名)의 구성원리와도 일치하여 자형이 유사한 점이 많다. 이 구결은 한문을 우리말로 새겨 읽는 것이다. 토는 국어의 조사와 어미의 표기가 주가 되고, 때로는 한자의 훈(訓)의 표기와 말음첨기(末音添記)에도 사용되었다.
점은 국어와 어순이 다른 한문을 새겨 읽을 때, 한문의 구성소(構成素)를 국어의 순서로 읽어 나가다가 거꾸로 올라가서 읽어야 될 자리를 표시한 것이다.
이 구결을 읽는 방법은 한문의 구성소 가운데서 그 오른쪽에 토가 붙어 있는 구성소부터 읽어 내려가다가 그 토의 끝이나 한자의 옆에 점이 있으면 위로 올라가 왼쪽에 토가 붙어 있는 구성소를 읽는다.
왼쪽에 토가 붙어 있는 구성소에 점이 또 있으면, 다시 위로 올라가 역시 왼쪽에 토가 붙어 있는 구성소를 읽은 다음, 아래로 내려와 오른쪽에 토가 있는 새 구성소를 읽는다.
왼쪽에 토가 붙어 있는 구성소 가운데서 점이 찍히지 않은 구성소가 두 개 이상 있으면, 어미의 성질에 따라 읽는 순서가 결정된다. 토 가운데는 한문의 좌우 행간 외에 한자의 속에 쓰인 것이 있다.
‘已’자 속에 ‘沙’의 약체인 ‘シ’가 들어가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已’자의 훈 ‘―사’를 표기한 것이지만, 실제 한문을 새겨 읽을 때는 읽어도 좋고 읽지 않아도 무방한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토는 원칙적으로 한문의 구성소마다 모두 달았다. 그러나 한문의 허사(虛辭) 가운데는 국어의 조사나 어미의 기능에 대응하는 것이 있다. ‘之·於·者·爲·云’ 등이 그것인데, 이 구성소에 해당하는 뜻은 다른 구성소의 토 속에 포함되어 풀이되므로 따로 토를 달지 않는다.
토는 국어의 조사나 어미를 주로 표기하지만, 때로는 한자의 훈을 나타낸 것이 있다. ‘如’의 훈은 ‘多爲-·다ᄒᆞ-’ 또는 ‘這·ᄀᆞᆮ’, ‘暫’의 훈을 ‘沙火叱·사○’, ‘是, 此, 斯’의 훈을 ‘是·이’로 표기한 것이 그것이다.
또 토가 훈의 말음을 첨기한 것도 있다. ‘有’나 ‘無’자에 붙은 ‘叱·ㅅ’이 그 훈 ‘잇-’, ‘없-’의 ‘ㅅ’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 구결의 독법에 따라 한문구성소의 순서를 우리말로 배열하고 약체를 정자로 써놓으면 향가의 표기법과 일치하게 된다.
일례로 ‘不可量衆’이란 구절을 그 토가 지시한 대로 다시 쓰면, “量乎音 可叱爲隱 不知是飛叱 衆·量홈 可ㅅᄒᆞᆫ 不디이ᄂᆞᆺ 衆”이 되는데, 이것은 어절을 단위로 볼 때 ‘표의자+표음자’의 순서가 되어 향가의 표기구조와 일치하는 것이 된다.
이 구결이 향가의 표기법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임을 말하여 주는 것이다. 또, 이 구결은 비록 12세기 중엽에 기록된 것으로 추측되더라도 15세기 이후의 어법보다는 고대국어의 어법으로 설명되어야 할 요소가 많아, 신라시대부터 불경을 해석하여 오던 관습이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는 구결이 늦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형성되어 12, 13세기까지는 널리 사용되어 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구결자료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서산문수사 금동여래좌상 복장유물」(강인구,『미술자료』 18,1975)

  • 「구역인왕경상 구결에 대하여」(심재기,『미술자료』 18,1975)

  • 「한자차용표기법의 발달」(남풍현,『국문학논집』 7·8,단국대학교,1975)

  • 「구역인왕경의 구결연구」 1(남풍현·심재기,『동양학』 6,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1976)

  • 「구역인왕경석독구결의 년대」(남풍현,『동양학』 15,1985)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남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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