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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숙(乞淑)

고대사인물

 삼국시대 신라의 제11대 조분이사금의 아들인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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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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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고대사
유형
인물
성격
왕자
성별
출생일
미상
사망일
미상
시대
고대-삼국-신라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제11대 조분이사금의 아들인 왕자.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신라 상대 박씨·석씨·김씨 삼성(三姓) 집단의 왕위교립기 석씨 왕족의 일원이었다. 신라 수도인 경주 왕경민(王京民) 출신이나 뚜렷한 출신 부(部)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제11대 국왕 조분왕(助賁王)이며 어머니는 나해왕(奈解王)의 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다. 아들은 제15대 국왕 기림왕(基臨王)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걸숙(乞淑)의 생애는 그가 조분왕의 아들이자 기림왕의 아버지라는 가계 관계에 의해서만 추론이 가능하다. 벌휴왕(伐休王)의 둘째 아들 골정(骨正)의 장자로 즉위한 조분왕(230∼246)은 유례(儒禮)와 걸숙 등 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위의 형제상속 경향 때문에 왕위를 동모제(同母弟)인 첨해(沾解)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첨해왕이 자식없이 갑자기 서거하자 조분왕의 딸 광명부인(光明夫人)과 결혼한 미추(味鄒: 262∼283)가 즉위하였다. 그러므로 조분왕은 유례와 걸숙 그리고 광명부인 등 3명의 자녀를 두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광명부인의 남편인 미추가 먼저 즉위하고 이후 유례가 즉위한 것으로 보아 조분왕 가계 서열은 광명부인(장녀)-유례(장자)-걸숙(차자) 순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유례왕(284∼297)은 자식이 없었으므로 걸숙에게 왕위를 물려줘야 했지만 걸숙이 아닌 그의 아들 기림이 즉위하였다. 이로 미루어볼 때, 걸숙은 형인 유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던 까닭에 왕위를 계승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인물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걸숙은 조분왕의 손자라는 전승이 전하는데, 이에 따르면 걸숙과 기림은 형제가 되나『삼국사기(三國史記)』편찬자는 이를 이설(異說)로 소개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2년)
김병곤(동국대학교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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