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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포(六十浦)

고려시대사제도

 992년(성종 11)에 고려의 중앙 정부에서 개경으로 운송하는 세곡(稅穀)의 수경가(輸京價)를 지정해 주었던 포구 60곳을 통칭하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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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992년(성종 11)에 고려의 중앙 정부에서 개경으로 운송하는 세곡(稅穀)의 수경가(輸京價)를 지정해 주었던 포구 60곳을 통칭하는 표현.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60포는 고려 초기 개경으로 보내는 세곡을 수납하여 조운선에 실어보내는곳으로 지정된 60곳의 포구를 지칭하며, 992년에는 각 포구별로 개경으로 세곡을 운송하는 수경가가 지정되었다. 이후 고려에 12조창제가 실시되고, 문종 연간(1046~1083) 이후 13조창제가 성립하면서 60포 중 상당수는 조운 기능을 상실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고려시대 조운제도는 12조창제 혹은 13조창제[문종 연간에 안란창(安瀾倉)이 추가]를 전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12조창제가 완성되기 이전인 고려 초기에도 전국의 주요 포구를 통하여 세곡을 수납하고 운송하는 제도를 운영하였다. 60포의 존재는 바로 고려 초기 조운제도 운영의 주요한 근거가 된다. 고려는 992년(성종 11) 한반도의 남해안과 서해안, 그리고 한강 수계에 위치한 60개 포구에서 개경으로 세곡을 운송하는 조운선의 수경가를 정하였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60개 포구가 조운제도 운영의 주요한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수경가가 정해진 포구가 60곳인 까닭에 60포(浦)라고 부르며, 60포는 사실상 조창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60개의 포구는 개경과의 거리에 따라서 수경가가 각기 다르게 설정되었다. 세곡 5석당 1석, 6석당 1석, 8석당 1석, 9석당 1석, 10석당 1석, 13석당 1석, 15석당 1석, 18석당 1석, 20석당 1석, 21석당 1석 등의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5석당 1석은 개경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경상도 남해안 일대의 포구 2곳에 설정되었으며, 6석당 1석은 전라도 남해안 지역과 충주와 원주 등 남한강 상류 지역의 포구 8곳, 8석당 1석 지역은 전라도 영암, 나주, 무안 등과 남한강 중류의 여주, 그리고 황해도 서해안 지역의 포구 7곳에 설정되었다. 9석당 1석은 전라도 서해안의 함평 이북 군산 이남 지역의 포구 등 8곳에 설정되었고, 10석당 1석은 한강 중류의 여주에서 광주 사이의 포구 11곳, 13석당 1석은 충청도 서해안의 아산만과 태안반도 근방 지역의 포구 4곳, 15석당 1석은 경기도 화성 일대의 포구 3곳에 설정되었다. 18석당 1석은 경기도 남양주와 광주, 하남 일대의 한강 포구 4곳, 20석당 1석은 서울 일대의 한강 포구 5곳, 21석당 1석은 경기도 고양과 김포 일대의 한강 포구 8곳에 설정되었다.
60개 포구 중 현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곳들도 일부 있으나, 대체로 개경과의 거리에 비례하여 수경가의 액수가 정해졌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동일 거리 기준으로 한강 수운의 수경가가 연안 해운의 수경가보다 더 비싸게 책정되었는데, 이는 선박 크기와 적재량의 차이와 관계된 것으로 파악된다.
포구 별 수경가
영역닫기영역열기변천과 현황
『고려사』에는 국초부터 12개 조창이 운영되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그러나 992년에 수경가가 제정된 60포 중에는 12개 조창 중 9개 조창이 위치한 포구만이 포함되어 있다. 나머지 3개 조창은 당시에 조창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려의 12조창제는 국초부터 완성된 형태로 운영된 것이 아니라, 992년 이후에 완성된 제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12조창제의 최초 운영 시점에 대해서는 현종 연간(1009~1031)이 유력하다. 하지만 60포를 통한 조운제도가 12조창제로 단번에 변경된 것인지, 아니면 60포를 통한 조운제도가 운영될 당시부터 12조창 중 일부가 이미 조창의 기능을 수행하다가, 점진적으로 60포의 조창 기능이 폐지되고 12조창제로 변화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12조창제가 성립된 후에도 60포 중 일부는 여전히 조운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을 가능성 역시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고려 초기 60포를 통한 조운제도는 고려의 12조창제(문종대 이후에는 13조창제)가 완비되기 이전에 운영되던 제도이다. 992년에 60포에 대한 수경가를 설정한 것은 세곡의 수납과 운송에 관여하는 모든 포구의 수경가를 중앙정부가 일률적인 기준에 의하여 결정하였다는 점에서 주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후 12조창제가 정착한 후에는 60포 중 일부만이 세곡 수납과 운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기록상 60포 중 고려 13개 조창과 그 위치가 일치하는 지점으로 확인되는 곳은 모두 9곳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7년)
정요근(덕성여대사학과교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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