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가락식토기(可樂式土器)

선사문화유물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의 형식.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가락식토기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의 형식.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서울특별시 송파구 가락동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의 형식에 붙여진 이름이다.
1963년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돼 출토유물은 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가락동 유적은 높이 약 40m 가량의 낮은 구릉 위에 있는 집터이다.
이곳은 장방형의 반움집터로, 길이는 동서 10m, 너비는 남북 7m이다. 깊이는 경사진 지면에 따라 각각 다르나 현재의 지표에서 약 10∼50㎝이다. 기둥구멍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출토유물을 살펴보면, 토기는 완형으로 복원된 것 4점, 일부 복원된 것 2점이 있고, 토기조각이 여러 개 있다.
석기는 낫[石鎌] 1점, 돌살촉[石鏃] 3점, 송곳 1점, 가락바퀴[紡錘車] 2점, 숫돌 3점이 있다. 토기의 모양으로는 화분형(花盆形) 3점, 단지형[壺形] 2점, 접시 1점 등이 있다. 바탕흙[胎土]은 대개 진흙에 모래를 섞은 것이며 화도는 낮고, 색조는 적갈색 또는 황토색이다.
가락동 유적에서는 화분형 토기와 단지형 토기가 함께 출토되어 팽이토기의 특징들을 갖추었다. 그러나 밑지름이 비교적 넓고 단지형 토기는 입지름이 비교적 작고 곧은 목이 있어 형식적으로 팽이토기보다 시기가 약간 늦은 것임을 증명한다.
팽이토기는 대체로 한강 북쪽까지 분포되어 있고, 가락동 유적의 토기는 팽이토기보다 약간 늦은 시기의 것으로서 한강 이남 중부지방에 분포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토기가 서울 역삼동 유적, 여주 흔암리 유적 등에서도 발견되어 중부지방 가락식 토기의 양상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흔암리 토기나 역삼동 토기에서는 겹아가리 대신에 입술둘레에 작은 구멍을 뚫거나, 입술 끝을 주걱같은 것으로 찍어누른 수법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일부 토기는 입술에 비낀 줄을 그은 것도 있어 가락식 토기의 전통을 볼 수 있다.
가락동 유적에서는 돌낫이 발견되고, 역삼동 유적·흔암리 유적에서는 반달돌칼이 출토되었으므로 이들 주민이 농경을 주로 하는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가락식 토기 문화의 연대는 민무늬토기의 편년으로 보아 대체로 서기전 7세기 전후로 추정된다.
흔암리 12호 집터 바닥에서 채집된 숯[木炭]을 시료(試料)로 한 방사성탄소측정연대는 서기전 7세기·10세기·13세기의 세 가지로 나왔다. 이것은 같은 층위에서 나온 것에 의한 연대로서는 차이가 너무 크지만, 서기전 7세기라는 연대가 가락식토기 문화의 기준연대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역삼동주거지발굴보고(驛三洞住居址發掘報告)」 ( 김양선 · 임병태 ,『매산김양선교수화갑기념사학논총(梅山金良善敎授華甲記念史學論叢)』,1968)

  • 「광주가락리주거지발굴보고(廣州可樂里住居址發掘報告)」 ( 김정학 , 『고문화(古文化)』 2,1963)

  • Prehistory of Korea ( Kim Jeonghak ,University of Hawaii,1977)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김정학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