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토기시대(서기전 5000년 전후∼1000년 전후)의 간돌도끼는 편평하고 길쭉한 자갈돌을 다듬은 뒤 인부(刃部)만을 갈아서 사용하였다. 빗살무늬토기문화인에 뒤이어 한반도의 새로운 주민으로 등장한 무늬없는 토기문화인들은 간석기를 더욱 발전시켜 사용했는데, 간돌도끼도 인부만이 아닌 부신(斧身) 전체를 갈아 정교하게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또한 빗살무늬토기시대의 간돌도끼는 ‘도끼’(요즈음의 도끼와 같이 날이 좌우 대칭인 것)와 ‘자귀’(요즈음의 자귀 또는 끌처럼 날이 비대칭인 것)의 구분없이 혼용되었으나 민무늬토기시대에는 ‘도끼’와 ‘자귀’를 따로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도끼는 주로 요즈음의 도끼와 마찬가지로 벌목·절단·절개의 용도로 사용된 반면, 자귀는 요즈음의 끌이나 자귀처럼 나무껍질을 벗기거나 재목을 다듬는 가공구(加工具)로 사용되었다. 민무늬토기시대의 간돌도끼는 용도별로 재료·크기·무게·형태를 달리하여 제작되었으며, 전투용보다는 공구용이 압도적이었다.
종류는 크게 양인석부(兩刃石斧)와 단인석부(單刃石斧)로 구분된다. 양인석부는 부신의 형태에 따라 편평(扁平)·원통·사각석부 등으로 나뉘고, 단인석부는 길쭉한 주상석부와 납작하고 네모난 ‘대팻날’로 나뉜다.
충청도·전라도 지역과 같은 평야지대에서는 소형의 석부가 많이 나타나고, 도끼용보다는 자귀용의 목공구가 우세한 반면, 강원도에서는 대형의 석부가 많이 나타나고 도끼류가 우세하다. 간돌도끼는 청동도끼가 들어온 뒤에도 줄지 않고 상용되었으며, 서기전 2세기 말 무렵에 중국에서 한식 철부(漢式鐵斧)가 보급되면서 급격히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