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강릉방내리유적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강릉방내리유적(江陵坊內里遺蹟)

    선사문화유적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기류·토기류·화덕자리 등이 출토된 집터.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강릉방내리유적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기류·토기류·화덕자리 등이 출토된 집터.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태백산맥의 동쪽 경사면에서 해안쪽으로 뻗은 낮은 구릉(표고 35∼45m) 위에 위치한다. 1990년 이 곳에서 체신부 소관의 건물신축부지 작업 중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어 강릉대학교박물관이 발굴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발굴 결과, 모두 12기의 움집터[竪穴住居址]를 확인하였다. 움집터와 주변에서는 신라고분 7기와 고려고분 7기도 함께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장축이 대체로 구릉의 등고선방향과 일치한다.
    구릉 남쪽 완경사면의 풍화암반을 파 들어가 움의 벽과 바닥을 조성하였다. 평면형태는 모두 장방형이다. 크기는 작은 것은 4.7m×4m(제2호, 18.8㎡), 큰 것은 7.8m×5.5m(제7호, 42.9㎡)정도이다. 제10·12호를 제외한 모든 집자리 바닥 둘레에는 기둥구멍이 남아 있었으며 3열로 배치되어 맞배지붕을 시사하는 것(제1·3호)도 있다.
    제1호 주거지에서는 모두 15개의 기둥구멍이 벽선과 중앙에 배치되어 있었다. 바닥은 얇게 점토를 깔고 다졌으며 1∼3개의 저장공을 갖추고 있었다. 제1호에서는 토기를 바로 세워서 묻은 것과 밑동이 없는 토기를 거꾸로 묻은 것을 한 쌍으로 한 저장시설이 두 곳에서 확인되었다.
    주거지 바닥에서는 그밖에 기둥구멍 사이를 연결해 파여진 제습용(除濕用) 홈(가느다란 도랑)을 가진 것도 있다. 화덕자리[爐址]는 제4·7·11호에서 확인되었다. 제4호의 화덕자리는 둘레에 타원형의 진흙띠를 돌렸으며, 제11호는 타원형으로 냇돌을 돌렸다.
    주거지 바닥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주로 출토되었다. 제1호 주거지에서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3점, 돌도끼 5점, 돌칼 1점, 반달칼 4점, 갈판[碾石], 갈돌 각 1점씩, 숫돌 4점이 나왔다.
    구멍무늬토기 3점 중 1점은 구멍무늬만 장식된 깊은 바리형[深鉢形]이고, 또 1점은 이중구연(二重口緣)에 단사선문(短斜線文)과 입술골무늬[口脣刻目文]가 함께 장식된 깊은 바리형 토기이다. 다른 1점은 구멍무늬 밑에 교차단사선문(交叉短斜線文)을 장식하였다.
    돌도끼는 냇돌의 끝을 간 것이다. 돌칼은 홈자루[二段柄新]이며 반달칼은 등쪽[背部]이 약간 굽은 것이다. 그밖에도 제5호 주거지에서 민무늬토기편, 제8호에서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편이 구멍무늬토기와 함께 나왔다.
    또한 제4호에서 슴베가 있는 것과 없는 돌화살촉 5점, 제7호에서 바퀴날도끼[環狀石斧] 1점, 제2호에서 구두칼모양의 돌손칼 1점 등이 나왔다.
    이 유적에서 얻어진 방사성탄소연대는 2650±110B.P.(제2호), 1270∼970B.C.(제3호, 보정연대), 790∼480B.C.(제4호, 보정연대)으로서 그 중간치는 서기전 8∼6세기쪽으로 모여 있다. 유물의 형태나 조합은 경기도 여주 흔암리 유적과 매우 흡사하고 시기도 대체로 비슷한 청동기시대 전기로 편년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강릉방내리주거지」(강릉대학교박물관,『강릉대학교박물관 학술총서』16,1996)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백홍기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