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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병산동고분군(江陵柄山洞古墳群)

    선사문화유적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식돌덧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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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식돌덧널무덤·독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강원도 강릉의 젖줄인 남대천(南大川) 하류역의 남쪽 사구지대와 그 주변의 구릉 일대에 분포하는 신라고분군이다. 지금까지 모두 3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1998년 사구지대에서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33기, 독널무덤[옹관묘 ] 9기, 토광묘[널무덤] 3기 등 총 45기가, 2001년 구릉지대에서 수혈식석곽묘 13기, 옹관묘 3기, 제사유구 1기 등 총 17기가, 2004년 사구지대에서 수혈식석곽묘 40기, 옹관묘 2기, 제사유구 4기 등 총 46기가 각각 조사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지금까지 조사된 고분들의 묘제[무덤 형식]는 대부분 석곽묘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토광묘와 석곽옹관묘, 옹관묘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석곽묘 중에는 내부에 격벽시설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시상석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등 다양한 형식이 있다. 석곽묘의 장축은 크게 남-북 방향과 동-서 방향으로 구분된다. 옹관묘는 대부분 석곽묘와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딸린무덤[배장묘]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1기의 석곽묘에 1기의 옹관이 배묘된 것과 1기의 석곽묘에 2기 내지 3기의 옹관이 배장된 것도 있다. 이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경주계 신라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경북 의성계 토기도 일정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무덤에서 공반된 유물로 보아 5세기 전반경부터 고분군이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토기의 굽다리가 약간 짧아지는 6세기경에 해당하는 굽다리접시[고배]들도 출토되고 있어 이 고분군은 5세기 전반경에서 6세기 전반경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8년 조사지역의 무덤들은 사구 평탄지에 위치한다. 장축방향은 대부분 동-서 방향이고 , 평면은 장방형으로 축조되었다. 묘광을 거의 수직으로 판 다음 냇돌이나 깬돌[할석]을 이용해 석곽을 쌓았으며, 바닥은 점토를 일부 깔았다. 출토유물은 굽다리접시·짧은목항아리[단경호]·긴목항아리[장경호]· 시루·금동귀걸이·유리옥·마구류·쇠화살촉·쇠솥 등이 있다. 특히 6호 무덤에서는 금동제 물고기꼬리모양 말띠드리개[魚尾形杏葉]이, 8호 무덤에서는 은제세고리칼자루[삼엽대도]가, 9호 무덤에서는 약 100점의 토기류가, 29호 무덤에서는 굵은고리에 중간식(中間飾)과 수하식(垂下飾)이 있는 신라계 금제 귀걸이가 각각 출토되었다.
    2001년 조사지역의 무덤들은 구릉지에 위치한다. 장축방향은 대부분 등고선 방향과 거의 일치하는 동-서 방향이고, 평면은 장방향으로 축조되었다. 묘광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장방형으로 파고 네 벽을 냇돌과 할석을 이용해 쌓았다. 1호 무덤의 경우, 제법 큰 봉토를 갖추고 있으며, 규모가 큰 덮개돌[蓋石]을 사용한 점으로 보아 주변의 석곽묘들과는 위계를 달리하고 있어 주목된다. 옹관묘 3기 중 2기는 연질의 장란형 옹관을 매납한 석곽옹관묘로서 강릉 초당동고분군에서 조사된 석곽옹관묘와 구조상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출토유물은 굽다리접시·뚜껑[개]·긴목항아리·짧은목항아리·손잡이달린잔[파배]·토기장군 등의 토기류를 비롯하여 쇠손칼[철도자]·쇠도끼[철부]·쇠낫[철겸]·쇠말재갈 등의 철기류가 일부 있다. 특히 11호 무덤에서 출토된 허리띠장식[대금구]은 6세기대 전형적인 '누암리형 대금구'와 그 형식을 같이하고 있다.
    2004년 조사지역의 무덤들은 구릉과 구릉 사이의 곡간지대에 위치한다. 장축방향은 동-서 방향과 남-북 방향으로 구분된다. 평면은 대부분 장방향으로 축조되었다. 묘광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장방형으로 파고 네 벽을 냇돌 또는 할석을 이용해 쌓았다. 무덤 상부에 대부분 3~4매, 7~8매 개석을 덮었다. 특히 26호 무덤에서는 착장형 위세품인 은제 새날개모양[조익형] 관식의 전립부가 출토되었는데, 전체적으로 경주 황남대총 남분 부장품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경주양식의 토기류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북 의성양식 토기가 일부 포함되어 있다. 또한 토우(土偶)가 부착된 토기가 강릉지역에서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강릉병산동고분군은 일정량의 중요한 신라 위세품 및 금속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 점, 중형급 무덤이 일부 축조된 점, 의성계 토기가 출토되고 있는 점, 사구지대와 주변 구릉에 대규모로 무덤을 축조한 점 등을 미루어 보면, 이 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5~6세기경 강릉지역의 유력한 정치세력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신라의 동해안 진출과정에서 강릉지역을 군사적 거점으로 삼아 효율적인 지배와 경영을 꾀한 역사성을 잘 보여 줄 뿐 아니라 신라 중앙정부의 높은 관심도를 반영하고 있는 강릉지역의 대표적인 신라고분군 중의 하나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6년)
    이상수(관동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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