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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이곡리집터(加平梨谷里─)

선사문화유적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 움집터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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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이곡리 주거지 출토 유물(무문평저호)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 움집터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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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경기도 가평군 북면 이곡 2리에 분포하며, 1978년건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유적은 북한강 지류인 가평천변에 있으며, 가평으로부터는 북쪽으로 약 8㎞ 지점에 있다. 현재 움집터의 상부 층위는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가평 마장리유적과는 가평천 상류쪽으로 약 1㎞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유적의 토층은 모두 6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층인 제1층은 두께 30㎝의 경작토, 제2층은 두께 50㎝의 검은 모래층인 움집터층, 제3층은 두께 30㎝의 노란색 모래층, 제4층은 두께 30㎝의 진흙성분이 섞인 붉은 모래층, 제5층은 두께 35㎝의 노란색 굵은 모래층, 제6층은 맨 밑바닥으로서 자갈층으로 되어 있다. 제2층의 검은 모래의 일부가 밑으로 내려와 자갈층까지 닿아 있어 집터층 일부가 자갈층까지 내려온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유물과 제3·4층의 노랗고 붉은 모래층의 유물은 문화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철기시대 Ⅰ기의 움집터가 확인된 제2층(검은 모래층, 집터층)의 유물은 30∼80㎝ 사이, 즉 50㎝ 두께 내에서 출토되었고, 움집터를 나타내는 숯기둥은 45∼70㎝에 박혀 있었다. 움집터의 확실한 벽선은 찾지 못했으나 70㎝ 깊이에서 두께 10㎝의 바닥점토가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또한 돌열〔石列〕과 진흙바닥의 일부가 마치 온돌형태를 갖춘 것처럼 남아 있었고, 진흙바닥 위에는 작은 판석과 납작한 냇돌〔川石〕이 12개 놓여 있었다. 이것들은 길이 약 40∼50㎝, 너비 약 30∼40㎝, 두께 6∼8㎝로, 이러한 작은 판석과 냇돌이 없는 곳에는 진흙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의 지름은 7∼8㎝, 깊이 10㎝ 정도였다. 이곳에서 민무늬토기조각〔無文土器片〕몇 점과 민무늬토기뚜껑〔無文土器蓋〕1점이 출토되었다. 움집터의 면적은 15.70㎡로 3∼4명이 생활한 것 같다. 형태는 거의 원형으로서 완전히 연소된 기둥이 14개 박혀 있었고, 기둥 사이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아 20∼100㎝의 간격을 나타낸다.
남아 있는 기둥 중 가장 긴 것은 깊이가 1.22m로서 이 기둥은 동서방향으로 놓여 있는데, 동쪽 끝이 지게받침대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위에 부연을 올려놓았던 것 같다. 움집터의 중앙에는 지름 30㎝, 깊이 52㎝되는 원형기둥구멍〔圓形柱穴〕자리가 하나 있는 점으로 보아 움집의 상부구조는 이 원형구멍에 기둥을 세우고 지게받침대의 소 기둥에 부연을 걸친 원추형 지붕이라고 볼 수 있다. 움집터 안에 유물은 많지 않았고 상당수의 강자갈만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화덕자리〔爐址〕하나가 움집터의 남동쪽에 직사각형으로 돌출되어 있고, 주위에 기둥구멍 하나가 서북향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움집터와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화덕자리 안에는 진흙이 약 7∼10㎝ 두께로 깔려 있고, 그 위에 상당수의 숯이 탄 채로 있었다. 화덕자리의 크기는 장축 64㎝, 너비 50㎝였다.
제3층과 제4층에서 뚜렷한 유구는 발견되지 않고, 완전한 민무늬토기 납작바닥항아리〔平底壺〕3점이 출토되었으며, 토기 주위에 납작한 강자갈을 깔아놓은 점이 특이하다. 출토 유물을 층위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2층에서 토기로는 빗살무늬토기조각 3점, 민무늬토기 아가리조각〔口緣部片〕15점, 민무늬토기바닥〔無文土器底〕13점, 토기뚜껑〔土器蓋〕2점, 회청색경질토기 아가리조각 14점, 회청색시루조각 2점, 쇠뿔잡이〔牛角形把手〕3점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로는 간돌도끼〔磨製石斧〕2점, 반달돌칼〔半月形石刀〕조각 2점, 간돌살촉〔磨製石鏃〕23점, 돌끌〔石鑿〕3점, 그물추〔漁網錘〕5점, 숫돌〔砥石〕3점 등이 출토되었다. 그 밖의 중요 유물로는 쇠살촉〔鐵鏃〕2점, 쇠칼〔鐵刀〕조각, 토제 풍관(土製風管) 조각 등이 나왔다.
가평 이곡리유적은 크게 2개의 문화층으로 구분된다. 문화 1층은 노랗고 굵고 붉은 모래층(80㎝∼1.44m)이며, 문화 2층은 검은 모래층(30∼80㎝)이다. 문화 1층에서는 회청색경질토기조각과 돌살촉은 한 점도 없고, 다만 민무늬납작바닥항아리와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아가리조각이 출토되었다. 문화 2층에서는 민무늬토기조각 약 80%, 회색경질토기조각 20%가 출토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가평 이곡리유적의 연대는 층위적으로 철기시대 Ⅰ기(또는 청동기시대 Ⅱ기)와 철기시대 Ⅱ기로 구분된다. 제3층과 제4층은 철기시대Ⅰ기에 해당하고, 2층은 철기시대 Ⅱ기에 해당한다. 이곡리유적의 철기시대 Ⅰ기는 춘천 중도유적이나 인근의 마장리유적, 강원도 횡성 둔내유적, 명주 안인리 유적 등의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경질민무늬토기나 타날문토기 등의 공반 관계를 고려하면, 서기 1∼2세기경으로 편년할 수 있다.
이 유적은 한국의 초기철기시대 문화를 규명할 수 있는 고고학 유적지이며, 조사 당시에는 한국고고학계에서 비교적 매우 이른 시기에 조사된 몇몇 안되는 중요한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지로 평가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리곡리철기시대주거지발굴보고서」 ( 최무장 ,『건국대학교인문과학논총』12,1979)

  • 한국고대 야금기술사 연구  (노태천, 2000)

  • 「남한 초기철기문화의 일고찰」 ( 이남규 ,『한국고고학보』13,1982)

  • 「이곡리철기시대주거지발굴보고서」 ( 최무장 ,『건국대학교인문과학논총』12,1979)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최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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