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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창(駕山倉)

조선시대사제도

 1760년 현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 설치했던 조창(漕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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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
경상도 우조창
분야
조선시대사
유형
제도
성격
창고, 조창
시행시기
1760년(영조 36)
폐지시기
19세기 말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760년 현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 설치했던 조창(漕倉).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17세기 이래 경상도 남부 지역의 전세와 대동미는 각 고을의 지토선(地土船)과 경강(京江)의 민간 선박을 이용하여 운송하였다. 그러나 운송 기간의 과다 소요로 제때에 경창(京倉)주 02)에 도달하지 못하였던 까닭에 1760년(영조 36)에 진주 가산창(駕山倉)과 창원 마산창(馬山倉)을, 1765년에는 밀양 삼랑창(三浪倉)을 설치하였다. 그 중 진주 가산창은 경상도 진주와 그 주변 지역의 세곡(稅穀)을 모아 경창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가산창은 조선 후기 경상도 남부 지역에 설치된 이른바 3조창(三漕倉) 중 하나이다. 3조창은 진주 가산창, 창원 마산창, 밀양 삼랑창을 지칭한다. 이 중 가산창은 우조창(右漕倉), 마산창은 좌조창(左漕倉), 삼랑창은 후조창(後漕倉)이라 하였다. 3조창은 수송하는 세곡이 대부분 대동미에 속하였기 때문에, 선혜청(宣惠廳)이 관리하였다고 한다.
좌조창과 우조창은 1760년 경상도관찰사 조엄(趙曮)의 장계(狀啓)에 따라 설치했다고 한다. 즉 경상도 남부 각 고을의 세곡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선박인 지토선과 경강의 민간 선박을 이용하여 운송하여 납부하였으므로, 운송 기간이 길어지는 폐단이 생겼다. 따라서 세곡이 제때에 경창에 도달하지 못하여 상해서 쓸모없게 되는 경우가 잦았다. 또한 17세기에는 진주 장암창(場巖倉)에 진주 등 9개 고을의 전세(田稅)를, 양산 감동창(甘同倉)에 양산 등 7개 고을의 전세를 경창으로 운송하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암창과 감동창은 정식의 조창은 아니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경상도 남부 지역의 세곡 운송을 위하여 1760년에 가산창과 마산창을 설치하였고, 1765년(영조 41)에는 추가로 삼랑창을 설치하였다.
가산창에는 조운선 20척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각 선박에는 사공(沙工)이 1명, 격군(格軍)이 15명, 조보(漕保)가 32명씩 배정되었다. 가산창은 진주, 곤양, 하동, 단성, 남해, 사천, 고성 서북면, 의령 서남면 등지의 전세와 대동미를 모아 한성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가산창의 세곡은 진주목사(晋州牧使)가 감봉(監捧)하고 적량첨사(赤梁僉使)가 영납(領納)하였는데, 감봉하는 사람을 도차원(都差員)이라 하고, 영납하는 사람을 영운차사원(領運差使員)이라 하였다. 18세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여지도서』에 따르면, 가산창은 진주 관아의 남쪽 40리의 진주 부화곡리(夫火谷里)에 위치하였다고 하며, 3월에 세곡을 선적하여 경창으로 출발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산창이 위치했던 현 축동면 가산리는 가화강이 사천만으로 흘러들어가는 하구 지점에 해당하며, 가산창의 바로 서쪽인 현 축동면 구호리에는 장암창이 위치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변천과 현황
19세기 이후 조세의 금납화가 일반화되면서 세곡 운송의 필요성이 점차 감소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이 되면 조운제도는 사실상 폐지의 운명을 맞게 되었으며, 가산창 역시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진주 가산창 설치 이전에는 경상도 서남부 지역의 전세와 대동미 운반에 있어서 각 고을의 지토선과 경강의 민간 선박을 이용하던 방식을 이용하였다. 하지만 이 방식은 운반 시일이 오래 걸려 곡식의 손상을 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가산창을 비롯한 경상도 3조창은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설치된 것이다. 또한 가산창은 1403년(태종 3) 사천 통양창(通陽倉 혹은 通洋倉)의 폐지 이후 360여 년만에 경상도 남부 사천만 지역에 재건된 조창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운임을 받고 곡식 등을 운반하던 제도
주02
중앙에 있었던 조운창고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최완기
개정 (2017년)
정요근(덕성여대사학과교수,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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