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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경전(加耕田)

    조선시대사제도

     조선시대 한번도 경작되지 않은 무주한광지(無主閑曠地)를 농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간한 토지.   크게 평지가경전(平地加耕田)과 해택가경전(海澤加耕田)이 있었다. 한광지로 있을 때는 토지 대장에 등재되지 않다가 개간이 완료되면 등록되었으므로 양외가경전(量外加耕田)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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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조선시대사
    유형
    제도
    성격
    토지
    시행시기
    조선시대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시대 한번도 경작되지 않은 무주한광지(無主閑曠地)를 농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간한 토지.크게 평지가경전(平地加耕田)과 해택가경전(海澤加耕田)이 있었다. 한광지로 있을 때는 토지 대장에 등재되지 않다가 개간이 완료되면 등록되었으므로 양외가경전(量外加耕田)이라고도 불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미경작 토지라는 점에서 진전(陳田)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으나, 진전은 한번이라도 경작된 적이 있고 가경전은 그렇지 않다는 데 차이가 있다. 개발된 가경전을 토지 대장에 등재할 때에는 기존의 경작지와 구별하기 위해, ‘가전(가답) 몇 결 몇 부 몇 속[加田(加畓)幾結幾負幾束]’등으로 기재하였다.
    조선시대는 개국 초부터 농지 확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지방 수령에게 각 고을의 가경전 개발 상황을 매년 조사해 토지 대장에 등록시키도록 하였다. 또한 가경전의 다소와 토지결수의 증감을 수령의 근무평정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세조 때에는 양반관료, 종친, 유음자제(有蔭子弟), 한량들에게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 등 3도의 황무지를 지급하고 개간하게 하여 성과가 좋은 자를 포상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농지 확대를 위한 가경전 개발 사업은 진전 개간과 함께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특히 진전 개간이 거의 마무리된 17세기 중엽 이후에 본격화되었다. 이 시기 가경전 개발에는 양반관료, 토호, 궁원, 관아 등의 권세가는 물론 무토지 농민과 영세 농민들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갈대밭 등 제언 축조를 필요로 하는 해택의 개발은 전적으로 재력이 풍부한 권세가에 의해서만 가능하였다.
    개발 대상은 일반 평지(한광지)와 해택으로 대별된다. 해택 개발에는 방조제를 쌓아 농지를 개간하는 간척 사업과 폐언(廢堰)을 농토로 개발한다든가 노전에 제언을 축조해 경지를 만드는 방법 등이 있었다.
    개발에 필요한 노동력은 전기의 경우와 같이 노비, 농민, 군사 등의 요역을 징발해 충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로 유휴 노동력을 모집해 광대한 한광지를 개간하고 개간에 참여한 노동자에게 노동력의 대가로 개간지의 경작권을 주는 모민개간(募民開墾)의 방법으로 조달하였다. 이 밖에 품삯을 주고 노동력을 사는 방법도 사용되었다.
    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한 국가의 권장책으로는 가경전에 면세의 혜택을 주는 조처와 개간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정책이 있었다. 즉, 평지 가경전의 경우는 속전(續田)과 마찬가지로 경작된 해에는 반드시 세를 거둬들였다. 해택은 1년간 면세한 뒤 2년째에는 세액의 반을 거두고 3년째부터 규정대로 전액을 받도록 『경국대전』에 명문화되었다. 그러나 이후 모두 3년간 면세시키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1647년(인조 25)에 이르러 평지가경전의 경우는 『경국대전』의 수세 원칙으로 환원되었으나, 개간에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드는 해택에는 3년간의 면세 혜택이 계속 주어졌다. 한편, 가경전의 개발은 관의 입안(立案)을 받고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관의 입안을 받지 않았더라도 실제로 개간한 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주었으므로, 진전 개간의 경우와는 달리 무토지 농민과 영세 농민들도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활발한 가경전 개발은 경작지의 확대와 국가 세입의 증대에 기여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권세가들에 의해 개발이 독점되다시피 했고 그들의 불법적인 개간 때문에 영세 농민이 자주 실농하였다. 또, 입안을 받은 권세가들이 가경전을 실제 개간한 농민의 소유권을 부정하고 단지 경작권만을 인정하는 폐단도 발생하였다.
    더욱이 조선 후기인 18세기말 경 이후에는 전세제의 변경으로 수령과 권세가가 결탁, 전세를 경작자에 전가시키는 사례가 많았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은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층의 형성과 이를 빌려 경작해야 하는 농민층의 성립, 즉 지주-전호제의 광범위한 전개를 가져오게 하였다. 특히 모민개간형의 가경전 개발은 이러한 지주-전호제의 발전을 가속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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