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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계사등록(勘界事謄錄)

조선시대사문헌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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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885년과 1887년 조선과 청나라가 백두산의 국경선을 획정할 때 조선측 대표인 이중하가 작성한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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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1860년(철종 11) 북경 회담의 결과, 러시아는 연해주를 차지하고 블라디보스톡을 건설하면서 두만강을 사이로 조선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청국은 러시아가 연해주를 차지하자, 백두산과 두만강 인근 조선과의 국경을 정비하여 변경의 안정을 기도하였다. 마침 조선인들이 기근과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만주로 대거 이주한 상황이었다.
조선 정부는 백성들의 소환, 청국은 변경 지역의 통제를 이유로 국경회담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후 1885년(고종 22)과 1887년에 조선과 청국은 백두산 및 두만강 인근 양국 국경선을 논의하기 위해 함경도 회령 인근 만주 땅인 화룡욕(和龍峪)에서 양국의 감계 회담이 진행되었다. 이 감계 회담에 조선 측 대표로 참석한 이중하가 그 회담 과정에서 주고받은 외교문서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 『감계사등록(勘界使謄錄)』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편찬/발간 경위
이 등록은 1885년과 1887년에 걸쳐 진행된 두 차례의 감계 회담을 2권의 책으로 구분하여 정리한 것이다. 등록의 작성자는 이중하(李重夏, 1846~1917)로 추정된다. 이중하는 전주이씨 광평대군(廣平大君) 정안부정공파(定安副正公派) 17세손으로, 1846년(헌종 12) 11월 9일에 경기도 양평군 창대리(倉垈里)에서 현감 이인식(李寅植)의 아들로 출생하여 1917년 72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자는 후경(厚卿), 호는 이아당(二雅堂), 규당(圭堂) 또는 탄재(坦齋)이다. 1882년(고종 19) 증광시 병과에 급제한 뒤, 관찰사와 외부협판, 장예원경 등을 역임한 정부 고위 관료이다.
1885년 안변부사였다가 토문 감계사(土門勘界使)로 파견되어 청국 측 대표인 덕옥(德玉)·가원계(賈元桂)·진영(秦瑛) 등과 함께 백두산에서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土門江) 지계(地界)를 답사하였다. 답사를 마친 이들은 국경문제를 놓고 담판 협상을 벌였으나, 청국 감계 위원들의 강압적인 태도로 회담은 결렬되었다.
이후 이중하는 1887년(고종 24)의 감계 회담에서도 대표가 되었다. 이때 청국 측 감계 위원은 이중하의 주장을 무시하고 위협하였는데, 이중하는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국경은 줄일 수 없다[오두가단 국강불가축(吾頭可斷國疆不可縮)].”면서 끝내 양보하지 않았다. 1910년 한일합방에 반대하고 은사금 수령을 거부하였다. 이중하가 남긴 전적으로는 『이아당집(二雅堂集)』과 여러 편의 서찰, 공문서, 일기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서지사항
책의 표지나 주제로는 2권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고, 감계 회담의 해당 연도에 따라 구분하였다. 두 책의 내용은 2년의 간극이 있지만, 조선과 청국 간의 감계 회담이라는 큰 틀에서 연결되는 내용이며, 필체상 동일한 인물이 작성한 것이므로 작성 시기의 선후에 맞추어 1, 2권으로 나눌 수 있다. 1권은 1885년(고종 22)인 을유년 기사 내용이며, 2권은 1887년(고종 24)인 정해년 기사 내용이다. 따라서 편의상 1책은 『을유년 감계등록』, 2책은 『정해년 감계등록』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책명이다.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 이외에 일본 동양문고에도 이본이 존재한다. 동양문고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감계사등록』과 동일한 체제와 내용이다. 책명만 “감계사”가 아닌 『감계등록』 일뿐이지 전체 구성은 같다. 책의 주요 내용은 감계 회담 과정에서 함경도의 각 관서 사이에 오고 간 문서, 조선과 청국 사이에 오고 간 외교문서들을 간지 일자에 맞추어 정리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책인 을유년 『감계사등록』은 1885년(고종 22) 3월부터 11월까지의 보고문, 계초(啓草), 별단초(別單草) 등의 세 개 문서군으로 구성되었다. 보고문에는 감계 회담의 배경과 이중하가 감계를 준비하고 진행하던 중에 해당 지역 관청들과 연락한 내용을 비롯하여 청국에서 파견한 감계 위원이었던 진영, 가원계, 덕옥 등과 주고받은 문서들을 시기별로 정리하였다. 계초와 별단초는 이중하가 감계 회담 이후 고종에게 직접 보고한 것으로 두만강 인근의 국경 영역과 한인들의 거주 상황 및 향후 간도 이주민에 대한 대처, 관리 방법 등을 설명한 것이다.
2책인 정해년 『감계사등록』도 1권과 체제가 대동소이하다. 다만 정해년 등록에는 청국 감계 위원들이 주장한 내용들이 더 많이 기재되었으며, 청국과의 외교문서인 이문(吏文)이 많아 구두와 해석에 난해한 점이 많다.
주요 내용은 1887년(고종 24) 3월 19일 이중하가 감계 회담을 위해 원산을 출발한 것에서, 4월 7일부터 이중하가 청국 감계 위원과 회령 및 장파(長坡)에서 회담한 내용인 담초(談草)와 청국 감계 위원과 주고받은 조회(照會) 및 조복(照覆) 등이 수록되었다. 계초(啓草)에는 이중하가 감계를 마치고 돌아와서 회담 내용을 국왕에게 보고하기 위한 장계(狀啓) 초본이 실렸다. 마지막으로 1886년(고종 23) 3월 25일에 청국에서 조선 정부에 보낸 총리각국사무아문주의등본(總理各國事務衙門奏議謄本)과 1887년 4월 18일의 청국 초간총국(招墾總局)에서 혼춘부도통아문(琿春副都統衙門) 변무교섭승판처(邊務交涉承辦處)에 보낸 공문서가 첨부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19세기 말 한국 북방 영토 연구에서 『감계사등록』을 이용한 결과물은 미진한 실정이며 저자인 이중하의 문집은 해제조차 없다. 또한 감계 회담에 참여한 조선과 청국 위원들의 인물 조사는 물론 감계의 전후에 대한 자료 정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등록의 가치는 더욱 높다고 본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5년)
이왕무(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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