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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

    현대사사건

     1996년 9월 18일 간첩 활동을 위해 투입된 북한 잠수함이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되어 벌어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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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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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9월 18일 간첩 활동을 위해 투입된 북한 잠수함이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되어 벌어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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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강릉지역무장공비침투사건(江陵地域武裝共匪侵透事件)은 1996년 9월 18일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시 부근에서 좌초된 것을 택시 기사가 신고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잠수함에 탑승한 인원은 총 26명이었으며, 이들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부 소속으로서 대좌와 상좌 등 고위급 장교를 포함해 군관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조사결과 이 중 19명이 승조원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잠수함에 탑승했던 26명 중 살해된 인원이 11명이었고, 13명은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으며, 1명은 생포되었다. 한국 측은 군인 11명과 경찰 1명, 예비군 1명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교전 또는 사고로 사망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적 배경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1994년부터 북한은 잠수함을 간첩 활동에 투입했고, 1995년 9월, 서귀포에 간첩을 침투시키기도 했다. 1996년 2월 초 동해상에서 한국과 미국의 합동 훈련이 실시되었고, 4월 4일 북한은 남한 내에서 시행된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북한은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담화를 통해 비무장지대와 관련된 규정들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996년 초부터 북한은 미군의 유해 송환을 계기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고, 9월 21일에는 미국의 대표가 북한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경과
    잠수함이 좌초된 후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1시 30분경 택시 기사가 강릉 해안 20m 해상에서 잠수함을 발견해 파출소에 신고했고, 대한민국 군에서는 2시경 해안 초소에서 잠수함을 확인해 군 병력을 투입했다.
    잠수함 수색과정을 거쳐 국방부는 이 사건을 북한의 대남도발이며 중대한 정전협정 위반 사항이라고 발표했다. 잠수함에서 빠져 나온 북한 승조원들은 육지로 침투했고, 군·경은 동해안 일대에서 이들을 검거하기 위한 작전을 벌였다. 침투한 승조원은 모두 13명으로 파악되었으며, 이후 이들은 곳곳에서 수색대와 교전을 벌였다. 동원된 4만여 명의 군·경찰·예비군과 헬리콥터 5대가 합동 수색을 벌였다. 11월 5일까지 계속된 작전에서 동해안 일대에서 민간인과 군 사망자가 발생했고, 무장간첩 1명을 생포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결과
    무장공비침투사건은 강원도 주민들에게도 피해를 남겼다. 관광 수입 감소와 농림어업 분야에서 약 25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해 도민들은 경제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1996년 12월 29일 북한은 잠수함 사고에 대한 유감을 발표하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날 남한은 판문점에서 이 사건으로 사망한 북한 측 승조원 24명의 시신을 북한으로 송환했다. 일반적으로 이들 시신은 적군묘지에 안장되지만, 남측은 시신을 화장한 후 이름과 키, 몸무게, 혈액형을 기재해 북측에 인도했다. 이것은 남북한 사이의 첫 시신 송환이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강릉 무장공비 침투 전모와 북한의 의도」(이상근,『새물결』187,1996)

    •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교훈」(김영학,『북한』299,1996)

    • 「강릉 무장간첩 침투사건 기록들」(『동아일보』,1996.11.6.)

    • 「공비 2명 교전 끝 사살」(『매일경제』,1996.11.6.)

    • 「무장공비 유해 24구 판문점 통해 북 송환」(『매일경제』,1996.12.31.)

    • 「“막대한 인명피해 유감”」(『매일경제』,1996.12.30.)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5년)
    한성훈(연세대학교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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