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景福宮勤政門─行閣)

    건축문화재 | 유적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는 조선후기 근정전의 남문으로 좌우로 행각이 둘러싸고 있는 궁궐건물.   궁문. 보물.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경복궁 근정문 및 행각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는 조선후기 근정전의 남문으로 좌우로 행각이 둘러싸고 있는 궁궐건물.궁문. 보물.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보물 제812호. 경복궁 근정문은 좌우에 행각이 둘러싸고 있는 근정전의 남문으로, 1395년(태조 4) 경복궁과 함께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타 버려 1867년(고종 4)에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복원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소재 경복궁 관리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경복궁(景福宮)의 근정문(勤政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중층 우진각지붕의 다포식 건물이다. 1395년(태조 4)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함께 세워졌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867년(고종 4)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졌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勤政殿) 바로 앞 남쪽에 위치하여 정전으로 향하는 주출입문의 구실을 하였으며, 행각(行閣)은 문의 좌우에서 직각으로 꺾여 정전 건물을 장방형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이 문의 남쪽에는 금천교(錦川橋), 홍례문(弘禮門), 그리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다.
    조선 후기에 중건되면서 창건 당시의 위치를 그대로 지켰으나 행각의 규모, 부출입구의 위치 등이 약간 달라졌다. 석조기단을 낮게 꾸미고 여기에 세 벌의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기단 위에 원형의 잘 다듬은 주춧돌을 놓았다.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에 창방과 평방을 결구하고 외이출목·내삼출목의 공포를 짰다.
    포작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각각 3구씩 올려놓았으며 기둥머리에는 안초공(按草工)주 01)을 새겼다. 쇠서의 날카로운 곡선, 내부살미의 운궁수법 등에서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경향을 볼 수 있다. 지붕의 각 마루에는 양성을 하고 추녀마루에 잡상(雜像)·선인(仙人)·용두(龍頭)를 두고,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주 02)를 놓았다.
    행각은 창건 때는 단랑(單廊)이었던 것을 중건하면서 복랑(複廊)으로 꾸몄으며, 창건 때 남쪽 행랑 양끝에 있던 일화문(日華門)·월화문(月華門)도 중건하면서 근정문의 바로 좌우에 잇대어 설치하였다. 낮은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는 간결한 초익공(初翼工)을 짰다.
    내부의 가구(架構)는 5량(五樑)집이며 천장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천장이다. 외부 벽체는 하부를 사고석쌓기로 하고, 상부에는 회벽 중앙에 빗살이 있는 창을 대었는데 창의 형태는 장방형의 모서리를 사선으로 처리한 특이한 모습이다. 동쪽과 서쪽 회랑의 앞에서 3분의 1 정도 되는 위치에 각각 돌출한 융문루(隆文樓)와 융무루(隆武樓)라는 누각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남문 중 유일하게 중층 지붕의 건물이며, 행각도 다른 건물과 달리 복랑으로 구성되어 정궁으로서의 위엄을 살린 점이 두드러져 궁궐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기둥머리에 끼워 상부의 주심포를 받드는 부재
    주02
    매머리모양의 장식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동욱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