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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나원리 오층석탑(慶州羅原里五層石塔)

건축문화재 |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화강암으로 건조한 5층 불탑.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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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명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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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후측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화강암으로 건조한 5층 불탑.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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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국보 제39호. 석탑은 경주시가지에서 금장교를 지나 형산강을 따라 안강으로 가는 68번 지방도변에 위치해 있다. 절터에는 오층석탑을 제외한 다른 유구는 남아 있지 않다. 또한 원래 금당터도 불분명한데, 탑 아래 낮은 대지에 위치했을 것으로 보여 사찰의 방위에 따라 전당후탑형(前堂後塔形) 가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은 신라식 이중기단이나 오층의 탑신을 가진 점이 특이하다. 경주지역에서 신라시대 오층탑은 이곳과 장항리사지의 오층탑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적 변천
석탑이 위치한 사찰을 추정할 만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41대 헌덕왕대에 대각사(大覺師)가 대각료(大覺寮)를 짓고 국운 창달을 기원하던 곳이며, 이곳에 보리림(菩提林)이 있었다고 한다. 근래에 석탑의 남서쪽 협곡에 나원사(羅原寺)라는 작은 사찰이 세워졌는데, 마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석탑은 여러 차례 도굴 시도가 있었으나 다행히 도굴을 면하였고 1995년 11월부터 1996년 7월까지 해체수리가 진행되었다. 해체수리 당시 3층 옥개석 상면 사리공에서 사리함과 금동소탑, 금동소불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특히 사리함 내측에서 필사된 『무구정경(無垢淨經)』 다라니 편이 확인되었는데, 『무구정경』은 704년 한역되어 국내에 유입된 경전이므로 나원리 오층석탑은 8세기 초반 이후에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석탑은 탑의 재질이 유독 흰색을 띠고 있어 예로부터 ‘나원백탑(羅原白塔)’이라 하여 신라의 팔괴(八怪)의 하나로 불렸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석탑은 이중기단에 오층의 탑신을 지니고 있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을 1매로 하고 그 위에 갑석을 올렸다. 하층기단 면석의 탱주는 3주로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고선사지 삼층석탑과 같지만 4매의 ‘ㄱ’자형 귀틀석 결구로 다르다. 하대갑석도 면석과 같은 4매로 구성되었는데 상면에는 호각형(弧角形) 2단 받침으로 상층면석을 받치고 있다. 상층면석은 각 면 1매씩 총 4매의 장대석으로 엇물림 결구법을 사용했는데, 1면에 모두 2주씩의 탱주를 지니고 있다. 상대갑석도 면석과 같은 4매로 구성되었는데, 오랜 기간 훼손이 심하여 1996년 해체·수리 시에 새로운 부재를 끼워 복원했다. 갑석상면에는 2단의 각형받침을 두어 초층탑신을 받치고 있다.
초층탑신은 향우측에 우주를 지닌 4매의 판석을 엇물림 결구하여 만들었다. 초층을 제외하면 2층부터 5층까지의 탑신석은 모두 1매로 탑신 외면에 문비나 다른 조각상은 표현하지 않았다. 옥개석은 1층과 2층이 옥개받침과 지붕을 별석으로 제작하여 올렸으며 3층부터 5층까지는 1매석이다. 옥개석 하단의 층급받침은 5단이며 상면에는 2단의 받침을 두어 탑신석을 받고 있다. 각층 옥개석은 처마의 반전이 경쾌하며 합각선 모서리에 1개, 전각부 양쪽에 2∼3개의 풍경공이 뚫려 있다.
상륜부는 노반석을 남기고 모두 결실된 상태이다. 노반석은 방형 육면체로 중앙에는 원공이 있는데, 그 내부에 부러진 철제 찰주가 꽂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특징
석탑을 구성하는 탑재의 숫자는 기단부가 16매, 탑신부가 15매, 잔존 상륜부가 1매로 총 32매이다. 이 석탑은 크기에 있어 대형에 속하면서 결구방식에 있어서는 일정한 통일성을 보이고 있다. 즉 기단부에 있어서는 상하층기단이 모두 면석과 갑석의 숫자가 4매로 되어 상하층기단 각각 8매, 총 16매로 구성되었다. 또한 초층탑신을 4매의 판석으로 엇물림 결구한 점, 1층과 2층 옥개석을 옥개받침과 지붕을 따로 제작하여 올린 점 등은 다른 신라 석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이다. 대체로 다른 석탑들은 탑신석에 사리공을 마련한 반면 이 석탑은 3층 옥개석 상면에 사리공을 마련한 점도 특이하다. 이 탑이 위치한 지역은 화강암이 산출되는 곳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제작 당시 다른 곳에서 원석을 옮겨와 탑을 건립했다. 특히 해체수리 시 탑 내부 적심에서 원석에서 떼어진 석편들이 다수 발견되어 폐기된 석재를 적심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1996년 해체수리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가운데 금동구층탑 3기, 금동삼층탑 1기가 발견되었다. 이들 금동탑은 형태와 세부모양에서 완벽에 가까워 신라탑 형태 연구와 복원에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사리함에서 발견된 묵서 『무구정경』 조각을 통해 당시 서체와 신라사회에 있어 조탑경의 확산과 유통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석탑은 장항리사지 오층석탑을 제외하면 신라시대 삼층석탑의 범주에서 벗어난 오층석탑이라는 점, 결구법에 있어 다른 신라 석탑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 점에서 한국 탑파사에서 갖는 의의가 크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정영호
개정 (2013년)
신용철()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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