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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장항리사지(慶州獐項里寺址)

    건축문화재 |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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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경주장항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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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사적.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절터는 토함산(吐含山) 석굴암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좌우에 계곡을 끼고 있는 낮은 대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계곡은 감은사(感恩寺) 앞을 지나 동해로 흐르는 대종천(大鐘川)의 상류이다. 절터에 있었던 절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지명인 장항리를 따서 장항리사지라고 불린다. 다만 장항사(獐項寺)라고 불린 절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이름을 장항리라고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가파른 계곡 위쪽에 위치한 절터에는 5층석탑인 서탑과 파괴된 동탑, 석조 불대좌(佛臺座) 등이 남아 있다.
    현재 땅 위에 드러나 있는 건물터는 불상을 모셨던 금당(金堂) 자리로 보이며, 불대좌는 이 건물터의 중앙에 마련되어 있다. 건물의 받침 규모는 동서 15.8m, 남북 12.7m로, 남아 있는 주춧돌을 볼 때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인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의 금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석조 불대좌는 위아래가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졌는데, 아래 부분은 측면의 안상(眼象) 속에 신장(神將)과 신수(神獸)를 조각한 팔각형으로 되어 있고, 윗 부분은 연꽃을 조각한 원형 연화대좌(蓮花臺座)이다. 크기는 아래 부분이 높이 0.6m, 최대 지름 2.4m이며, 윗 부분은 높이 0.53m, 지름 1.84m이다. 대좌 위에 놓여 있던 석조 불상은 1932년에 서탑을 복원할 때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현재 북쪽 뜰에 전시되어 있다.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었던 것을 복원하였지만 뒷부분의 광배(光背) 일부와 무릎 아래는 없어진 상태이다. 머리와 얼굴의 모습, 광배의 화불(化佛) 등을 새긴 수법을 볼 때, 8세기 경에 만들어진 여래입상(如來立像)으로 판단되며, 현재의 높이는 3m이지만 실제로는 4m 이상인 큰 불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약 10m의 5층석탑은 금당터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약 15m 쯤 떨어진 곳에 있는데, 1925년에 도굴범이 탑 속에 있는 사리(舍利) 장치를 탈취하기 위하여 폭파한 것을 1932년에 복원하고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위아래 2중 기단 위에 몸돌을 올려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동탑은 부재가 붕괴된 상태로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금당터와 서탑 사이에 모아두었다. 이 탑도 남아 있는 부재로 미루어 보아 서탑과 규모가 같은 5층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장항리사지는 계곡 사이의 좁은 대지를 최대한 이용하여 쌍탑(雙塔)을 배치한 통일신라시대의 가람 양식을 보여주나 강당(講堂)이나 회랑(廻廊)의 존재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조선탑파의 연구(하)』-각론편-(고유섭,열화당,2010)

    • 『문화재대관』-사적편-(문화재관리국,1968)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조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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