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鷄龍山新都內柱礎石石材)

    건축문화재 | 유적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에 있는 조선전기 제1대 태조가 신도읍지로 정했던 궁궐터.   시도유형문화재.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에 있는 조선전기 제1대 태조가 신도읍지로 정했던 궁궐터.시도유형문화재.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6호. 개국 초 궁궐 건축에 사용하기 위해 일부 다듬어 놓은 주초석이다.
    이 초석들이 있는 신도안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동왕 2년(1393)에 계룡산 남쪽인 이곳에 도읍을 옮기려고 기초공사까지 하다가 물길이 멀어서 중지하고 말았는데, 그 뒤 이곳을 신도(新都) 또는 대궐평(大闕坪)이라 부르고 있다 한다.
    또한 이곳 신도안 주변에는 그 당시 궁궐 건축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 다듬다만 1.5∼2.0m 정도 크기의 주초석들이 흩어져 남아 있었으나 이곳으로 삼군(三軍)본부가 들어오는 바람에 지금은 여군 숙소인 근화원(槿花園) 주변에 주초석을 모아 세 곳에 나누어 보존 관리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 신도안을 신도읍 후보지로 결정한 후 이곳에 궁궐 공사를 하기 위해 다듬어 놓은 초석으로 이 초석들은 한 때 이곳이 신도읍지로 결정되었던 근거로 그 의의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이달훈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