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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家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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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생활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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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생활도구.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의류의 수납에서 식품저장·운반·기거·휴식·동작에 이르기까지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기물이다.
인간은 좀더 안락한 삶을 누리기 위하여 사용에 편한 갖가지 생활도구의 발전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하는 의자, 편히 누울 수 있는 침구, 더욱 효율적인 식사생활의 도구, 이밖에 의류 기타 저장물을 수납하는 장·농류 등 갖가지 발명품을 만들었다.
더욱이 시대가 흐름에 따라 더 편하고 아름답게 발전되는 생활도구로서의 형태를 추구함으로써 이를 위한 많은 연장과 도구·기술 등이 발달하게 되었다.
고대에서는 가구란 단지 실제적인 생활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경제적인 어떤 지위와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로서 발전하였다. 즉, 귀족계급이나 종교사회에서는 가구를 하나의 엄격한 위계를 나타내는 물건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구는 인간의 신체적 안락과 실용의 편리함은 물론 기능과 미적인 요소가 겸비된 생활요구로서의 가치가 더 많이 논의되고 있다. 즉, 실용성과 함께 쾌적한 생활로 이끄는 미적 예술성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구는 아름다움과 쓰임새의 합목적성을 동시에 지닌 조형물로서 더욱 그 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가구를 성립시키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재료·기술·의장(意匠)이다. 어떠한 재료를 가지고 어떠한 기술로 어떠한 형태를 만드느냐의 면밀한 계획과 설계가 진행된다. 또, 계획에 앞서 사회적인 여건, 즉 자연환경과 재료의 생산량, 형태의 개발성, 기술능력, 제작 및 구매층의 경제력 등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여야만 한다.
근대 서구에서는 산업혁명 이후 가구의 새로운 기능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졌음에도 인간의 생활감정을 등질 수 없는 옛것의 조형감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즉, 소규모의 수공가구나 고미술품이라도 단순히 장식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실용적인 면에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가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파악하고 그 가치를 이해하고 있음을 뜻한다.
만일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잘 계승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민족적 자아의식이 빈곤한 탓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그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전통을 되찾고, 현재의 생활정서에 적응하는 형태를 모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시급한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나라 가구도 그 독자적 양식을 되찾고, 그 특색을 바르게 이해하여 우리의 문화적 지역성을 널리 알리는 일이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가구의 시원 및 시대적 고찰
  1. 1. 가구의 시원
    우리나라 가구의 시원적 형태는 광주리일 것이다. 『고려도경』의 등비(籐篚)에 관한 기록을 보면 “옛날 폐백에는 상(箱)·비(篚)를 썼는데 지금 고려의 풍속에서 없어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상이나 비는 모두 광주리를 의미하는데 여기에 예물을 담았다는 것으로, 고려시대까지도 예(禮)에서만은 상·비를 그대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기록으로 고려시대 이전에도 광주리를 사용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광주리의 재료는 대개 대나무·버드나무·등나무와 같은 연질로서, 고대 유목민들이 석기(石器)로도 쉽게 다듬을 수 있고 몸에 지니고 다니기에 간편하고 가벼운 것이었다. 그들은 여기에 옷과 식품을 넣었으므로 광주리의 필요성은 저장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생활자료의 보관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절실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빗살무늬토기시대 유적지에서는 당시 수혈식 주거였기 때문에 바닥에서 저장공(貯藏孔)이 발견되고, 농경이 주된 생활로 바뀐 민무늬토기시기에는 철부도끼의 유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벌목뿐만 아니라 저장을 위한 목공기술이 발전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예로 낙랑고분에서 발견된 인물화상칠채비(人物畵像漆彩篚)와 철기시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중 목제 관곽(棺槨)의 출토를 들 수 있다.
    관곽 유물에는 ㄷ자형 꺾쇠도 있어 이런 대형 목판의 제작이 가능한 도구라면 의궤(衣櫃)나 상자형 농(籠) 등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궤(櫃)에 뚜껑만 씌웠다가 앞면에 문을 달아 농으로 그 형태를 바꾸었고, 다시 농의 윗부분에 개판(蓋板), 아랫부분에 다리가 붙어 현재의 장(欌)과 같은 형태로 진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 2. 가구의 역사
    1. 2.1. 선사시대의 가구
      우리 민족의 최초의 주거환경은 수혈(竪穴)형식이었는데, 고조선 시기를 거쳐 한사군이 설치된 뒤 점차로 초옥토실(草屋土室)로 변하여 갔다. 초옥토실이란 지상에 드러난 귀틀집 형태로, 통나무를 쌓아올리며 짓기 때문에 벌목용 도끼가 필수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도구의 발달이 저장용구인 가구에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 2.2. 삼국시대의 가구
      이 시대의 주거양식은 『신당서 新唐書』 동이전(東夷傳)의 고려조를 보면 귀족층은 목조가구식(木造架構式)의 고상주거(高床住居)양식이고, 서민층은 장갱(長坑)을 놓고 좌식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예로 고분벽화를 살펴보면, 각저총(角抵塚) 후실 후벽에는 두 여인이 앉아 있는 의자와 평상이 보이고 수족형(獸足形) 다리를 가진 목제상(木製床)과 기물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
      또한, 쌍영총(雙楹塚) 후실 북벽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 평상이 있고, 그 위에는 보료를 깐 것이 모두 좌식생활에 알맞는 높이를 하고 있다.
      백제와 신라의 문화도 고구려와 흡사한 점이 많다. 특히, 신라에서는 고구려의 고상주거양식처럼 바닥이 높은 마룻방 구조를 볼 수 있어 판재(板材)를 이용한 평상·의자·궤안 등을 썼으리라 추측된다. 이는 『당서 唐書』 동이전의 기록을 보아도 목재가구에 황칠(黃漆)이 유명하였음을 알 수 있다.
    1. 2.3. 고려시대의 가구
      『고려도경』 민거조(民居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 시대의 주거양식은 온돌과 마루방 구조가 결합된 형태였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온돌이 더 개발되고 마루방을 겹쳐 일반화된 상태이다.
      특히, “탑(榻)마다 두 손님이 앉는데 손님이 많이 모이면 탑을 늘려 각기 마주앉는다.”는 기록을 볼 때 탑은 평상과 같고 그 위에 소조(小俎)를 놓고 식사를 하는 좌식 형태의 도구임을 추측하게 한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나전칠(螺鈿漆)이 유명하여 여러 가지 유물이 보이는데, 이러한 상자는 대체로 장방형이며 의류 내지 귀중품을 보관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고려사』 열전에 주인원(朱印遠)이 세황마포(細黃麻布)를 두 농이나 바쳤다는 기록에서 당시에 농이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고려시대의 등촉구는 그 형태와 크기 등이 조선시대 유물과 많이 유사한 점이 흥미있다. 물론 이 시대의 장인들도 각종 기술을 발휘하였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우리 나라 전통가구의 독자적 방법이 나타난 것은 이미 고려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1. 2.4. 조선시대의 가구
      조선시대에는 신유교인 주자학을 내세워 왕도사상(王道思想)의 신선함과 왕권강화의 명분을 주창하였으며, 또한 가부장적 윤리와 삼강오륜을 통하여 가정도덕과 사회윤리를 확립시켰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이 양반과 상인으로 엄격히 구분되는 신분제도를 낳았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시하복종(侍下服從)의 대가족제도 및 삼종지례(三從之禮)를 강요하는 남존여비사상의 가족제도를 만들어, 주택의 규모도 남자와 여자를 격리시키는 공간으로 구별하게 하였다. 따라서 가구 형태도 남녀용으로 구분되어 발달되었다.
      주택양식은 천연의 자재(資材)를 이용한 단층 목조가구식 구조이다. 각 방의 바닥구조는 기름먹인 장판지를 바른 온돌과 우물마루식 판재를 깐 마루가 대표적이다. 실내의 벽·천장·창호 등은 호지법(糊紙法)에 의한 한지를 발랐고, 마루방 천장은 사량가구식(四樑架構式)으로 하여 서까래를 노출시키며 그 사이에 백색 회반죽 마감을 한다.
      대체로 건물 벽체는 나무기둥 사이에 흙과 회로 마감하였으며, 지붕은 서민인 경우 초가와 흙담, 중류 이상은 기와와 화강석 기초를 가졌는데, 완만하게 곡선을 그린 지붕선이 매우 아름답다.
      평면구성은 대가족제도로 인하여 중류 이상은 동(棟)과 칸으로 나누어 사랑채와 안채의 공간구획이 이루어졌고, 서민은 한 동에서 실(室)로 나누어 사랑방[남자]과 안방[여자]으로 구분된다. 중류 이상인 경우 신분에 따라 동의 외곽에 행랑채가 있고 주택의 뒤나 옆에는 사당(祠堂)과 별당(別堂)이 있다. 각 실의 기능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사랑채
      사랑방 : 남성의 거실이자 접객공간이며 서재를 겸하고 있다.
      누마루 : 흔히 대청마루와 연결되어 있어 유학자들이 예(禮)를 논하는 장소이다.
      침방 : 사랑채에 배치하여 침실 기능을 하는 장소이다.
      서고 : 서책의 보관 또는 독서를 위한 방이다.
      ● 안채
      안방 : 가장 폐쇄된 공간에 위치하여 안주인이 거처하며, 남편과 직계비속 외에는 출입을 금한다.
      건넌방 :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 건너편에 위치하여 장성한 자녀나 노부모가 거처하는 방이다.
      윗방 : 안방 윗목에 위치한 공간으로 귀중품을 수장하는 장을 둔다.
      마루방 : 안방과 건넌방 중앙에 위치하여 통로 구실을 할 뿐만 아니라 관혼상제 때 대사를 치르는 곳이다.
      부엌 : 취사를 하는 곳이며 찬방·찬마루가 연이어 있다.
      ● 별채
      별당 : 본채와 분리되어 서예·가무 기타 용도로 쓰이는 곳이다.
      사당 : 선조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다.
      ● 행랑채
      행랑방 : 대문채에 연결되어 노비를 비롯한 사역인이 거처하는 곳이다.
      청지기방 : 중류 이상 가정의 비서·서기 일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거처방이고 사랑방과 인접하여 있다.
      광·측 : 광은 모든 살림도구 및 음식물을 저장하는 곳이며, 측은 화장실이다.
      조선시대에는 천연의 자재인 목재를 주요 재료로 하는 주택양식과 더불어 가구 역시 목재의 무늬를 잘 살린 아름다운 형태로 발전되어 오늘날에도 널리 극찬되고 있다. 형태뿐만 아니라 목공결구법(木工結構法)에 의한 독특한 기술로 독자적 방법을 나타냄으로써 우리 나라 전통가구양식의 특색을 이루었다.
    1. 2.5. 한말∼일제 강점기의 가구
      고종의 집정기(1864∼1906)는 조선 말기로서 새로운 개혁의 막을 올린 시기였다. 오랜 세월 독점적인 이익을 누렸던 지배층의 사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민중 중심의 동학사상이 전개되었고, 밖으로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의 문화침탈이 물밀듯 밀려왔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임오군란·갑신정변을 거쳐 1910년 경술국치를 맞으면서 시대적 변화에 휩쓸려 가구양식도 점차로 서구화되어 갔다.
      이때에 처음으로 서구문물의 혜택을 입은 곳은 바로 왕실이었다. 궁궐건축으로부터 실내장식·가구·공예품까지 서구화한 입식 형태로 변하였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입식 가구가 제작되었고 서구식 가구와 전통가구가 공용되었다. 그 뒤 광복과 함께 가구양식은 전통양식에서 절충식 양식으로 변하여 갔다.
      현재 궁중에 수장된 것 중 당시 유입된 17∼18세기 프랑스·영국의 르네상스·로코코 양식의 가구와 중국의 화류가구 등을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유입된 가구로는 서랍이 많이 달린 장과, 차단자(茶單子)라 하여 중국의 차탁자와 같이 개구부(開口部)가 많은 형태가 있다. 그리고 전래의 의걸이장이 이불장으로 쓰이다가 현대의 양복장으로 변한 것은 당시의 시대상을 잘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그 뒤 마루방이 입식 생활의 접객공간으로 되면서, 소파가 등장하고 차탁자·협탁(脇卓)·장식장 등의 서양가구가 발전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가구의 의장적 특징
우리 나라 가구의 의장적 특징으로는 첫째, 소탈하고 꾸밈새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것은 나뭇결이 뚜렷한 재목을 써서 아름다운 나뭇결을 살리고, 자재가 지닌 자연미를 그대로 표현하기 위하여 과다한 장식을 피하였으며, 기능과 용도에 적합한 것 외에는 지나친 광택이나 색채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수직과 수평을 강조한 직선이 일관되면서 현대적 조형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직선을 많이 사용하는 가구가 예리하고 강직하여 시각적 피로감을 주는 데 반하여, 선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굴리는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우리 나라 가구는 이러한 단점을 없애 준다.
셋째, 금속못을 사용하지 않고 판(板)과 주(柱)의 다양한 결구식 목공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골재와 판재의 수종(樹種)을 적재적소에 사용하여 심재(心材)와 표면재(表面材)의 구분을 명확히 하면서 역학상의 무리가 없게 하여 결구방식의 표면처리를 아름답게 한 것이 특색이다.
넷째, 좌식 생활에 알맞은 높이와 규격 및 면분할의 비례가 아름답다. 비교적 낮은 천장과 좁은 실내공간의 면적에 조화된 아담한 규격이다. 그리고 장방형과 방형의 연속적인 면분할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황금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다섯째, 금구장식은 장식의 기능뿐만 아니라 이음의 구조적 보강을 겸하고 있으며, 또한 장식문양도 미적인 감각 내지 민간신앙의 상징을 표현하여 행복과 강녕을 기원하는 복합적인 요소를 보여 주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가구의 조형양식
  1. 1. 가구의 종류
    조선시대 가구는 크게 안방가구·사랑방가구·주방가구로 분류되며, 각 가구의 기능과 용도에 따라 종류와 형태를 나눌 수 있다.
    사랑방가구는 검소한 방을 격조 높게 생각하여 색채도 없고 장식이 많지 않다. 안방가구는 사랑방보다 금구장식 기타 채색이 들어간 화각(華角) 및 나전칠기장으로 화려하며, 방 아랫목 뒤에는 부엌 천장에 해당되는 다락이 있다. 이 문짝에는 흔히 화조도(花鳥圖)를 붙이며 그 밑에 보료를 깔고 안주인이 거처한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일상생활을 거의 부엌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주방구조가 소홀히 되어 많은 불합리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중류 이상의 주택에는 찬방이 부엌과 연결되어 찬장과 찬탁자 등이 여기에 놓이고, 찬마루에 앉아 음식을 장만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뒤주는 대청마루에 놓고 그 위에 용충항아리를 겹겹이 얹어 장식한다. 주방가구는 일반적으로 소나무·버드나무 같은 자연목을 살려 자귀 자국을 그대로 살린 것이 많다.
  1. 2. 가구의 재료
    1. 2.1. 목재가구
      우리 나라에서 자라는 수목의 종류는 1,556종에 이르지만 재목으로 쓸만한 나무는 109종에 지나지 않는다. 그 가운데에서도 조선시대 가구재로 쓰인 나무는 소나무·잣나무·자작나무·대추나무·흰노송나무·밤나무·버드나무·가래나무·호도나무·수창목(水蒼木)·오동나무·피목(皮木)·벚나무·회화나무·돌배나무 등이다. 이와 같은 나무들은 그 나무의 재질에 따라 골재(骨材)·판재(板材)·부재(附材)로 구분된다.
      골재는 구조상 힘을 받는 단단한 나뭇결이 좋은 목재로서, 소나무·돌배나무·회화나무·단풍나무·호두나무 등이 쓰인다. 판재는 나뭇결이 아름다운 판목재로서, 오동나무·소나무·전나무·뽕나무 등이 쓰인다. 부재는 치장에 가장 아름다운 판목재로서 회화나무·수창목·버드나무 등이 쓰인다.
    1. 2.2. 죽재가구
      대나무는 화본과(禾本科)에 속하는 단자엽 식물로서 수목보다 성장이 빠르고 재배가 용이하다. 또, 곧고 속이 비어 있어 자연형태 그대로를 살린 공예품이 많고, 탄력성이 강하고 건습에 수분이 적으며 착색도 쉬워 가구용으로 많이 쓰인다.
      더욱이 청량하고 강직한 모습이 선비의 기품을 나타낸다 하여 조선시대 사대부들에게 곧잘 문방구로서 애용되었다. 종류는 600여종이나, 공예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30여종이다.
      그중에서 고죽(苦竹)·맹종죽(孟宗竹)·담죽(淡竹)·오죽(烏竹)·반죽(斑竹)이 대표적인 것이며, 전주·남원·공주·담양 등지에서 주로 생산된다.
      가공법은 벌채한 대나무를 다듬어 윤을 내고 표백하거나 껍질을 벗기고 도장(塗裝) 또는 낙죽(烙竹)을 하여 접합한다. 접착법은 대나무의 원 부분이 보이게 하는 내향법(內向法)과 속 부분이 보이게 하며 낙죽을 하는 외향법(外向法)이 있다.
    1. 2.3. 나전가구
      나전(螺鈿)이란 소라·전복·진주조개 등의 껍데기를 가공하여 여러 문양으로 백골(白骨) 위에 붙이는 것을 말하며, 이 위에 옻칠을 한 것을 나전칠기(螺鈿漆器)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소함(小函)에서 장과 같이 큰 가구에 이르기까지 나전장식이 많았고, 기교는 세련되지 못하여도 다양하였다. 가공법으로는 상감법(象嵌法)과 부착법(附着法)이 있는데, 상감법은 파고박기[掘入式]와 눌러박기[押入式]로 나뉜다.
      파고박기는 백골(白骨)에 상감할 문양을 그려 새김칼로 파낸 뒤 재료를 넣고 칠하는(厚貝 사용) 것이다. 눌러박기는 백골바탕에 옻칠을 두껍게 한 뒤 굳기 전에 재료를 눌러 고착한 뒤 갈아내는(薄貝 사용) 것이다. 부착법은 접착제를 이용하여 나무바탕에 자개를 붙인 뒤 뜨거운 인두로 지져 고착시키는 것으로, 지짐질이라고도 한다.
    1. 2.4. 화각가구
      화각(華角)이란 투명도가 좋은 우각(牛角)을 얇게 펴서 각지(角地)로 만든 뒤 그 뒷면에 채색그림을 그려 백골 표면에 붙여 장식하는 기법이다.
      이러한 기법은 원래 중국 당나라 때 복채(伏彩)라는 채화(彩畵) 대모(玳瑁)기술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대모가 없는 우리 나라에서는 우각을 쓴 것 같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여 규모가 작은 애기장·함·경대·패물궤·반짇고리·실패·부채 등에 치장하였다. 제작과정은 다음과 같다.
      백골 : 은행나무와 버드나무.
      우각 : 곧게 뻗은 젊은 황소의 고추뿔.
      석채(石彩) : 당채(唐彩)라고도 하며 오채(五彩 : 황·갈·녹·적, 금 또는 은박) 사용.
      접착제 : 명태껍질·아교·부레풀을 중탕하여 만듦.
      광택 : 숯갈기는 은행나무·박달나무 숯으로 간다.
      목적(木賊) : 상어껍질로 광택을 낸다.
      이때 재료는 토분(황토를 물에 풀어 고운 가루로 만들고 콩기름에 풀어 만듦.)과 녹각분(녹각을 불에 달구어 하얗게 된 것을 식기 전 찬물에 담가 만든 가루)을 묻혀 쓴다.
  1. 3. 가구의 도장
    조선시대 가구 도장은 자연재를 그대로 길들여 소박미를 나타내도록 하였기 때문에 나뭇결을 살리기 위한 투명한 식물성 기름을 많이 썼고 내구성이 필요한 소반(小盤) 등에는 불투명한 칠을 하였다. 그리고 특수가구에는 색상이 들어간 흑칠(黑漆)·주칠(朱漆)을 하였다. 도장법에는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1. 3.1. 유도장
      유도장(油塗裝)에는 들깨기름(트는 것을 방지)·호도기름(광택)·콩기름(견고성)·오동나무기름(해충방지) 등을 사용한다. 광택을 위한 도장법으로는 콩기름·깨기름·들기름·오동나무기름을 끓여서 풀처럼 만들어 칠하는 임도법(荏塗法)과, 나뭇결이 확실한 표면을 인두로 검게 태워 볏짚으로 강하게 문지르는 유목법(油木法)이 있다.
    1. 3.2. 칠도장
      옻칠이란 옻나무즙으로 만든 도료로, 칠장막이 매끄럽고 단단하여 방수에 좋고 견고성이 강하여 칠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된다. 경북 칠곡군과 경남 함양군은 옻나무 보호지역이고 평안북도 태천 지방이 생산지로 유명하다. 칠의 종류로는 생칠(生漆)·숙칠(熟漆)·주칠(朱漆)·흑칠(黑漆)·황칠(黃漆) 등이 있다.
      생칠은 옻나무 껍질에서 흐르는 액체 상태의 옻칠이며, 숙칠은 옻나무를 불에 쪼여 받은 즙으로 하는 칠이다. 주칠은 주라는 도료를 칠과 혼합한 것이며, 흑칠은 숯가루나 황토를 불에 구워 만든 지분(地粉)을 생칠과 혼합하여 흑색칠한 것이다. 황칠은 황갈색이 나는 옻칠로, 주로 도서 지방에서 생산되며 지장(紙欌)·도배지 등에 사용하였다.
  1. 4. 가구의 구조
    조선시대 가구의 구조는 판재와 골재의 접합으로 이루어지며, 다양한 짜임과 이음의 결구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음새는 목재끼리 서로 이어서 사용할 수 있게 한 접합구조이며, 짜임새란 목재를 어떠한 짜임으로 형태를 만들 것인가에 관한 결구 방법을 말한다.
    공구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① 자[尺]: T자·ㄱ자·각자[角尺: 30°·45°·60°·90°·120°].
    ② 그므개[罫引]: 쪼개기그므개(평행선 표시)·줄긋기그므개.
    ③ 먹통[黑筒]: 수평·수직 표시를 위한 먹줄을 넣은 통.
    ④ 대패[鉤]: 나무의 거친 면을 매끈하게 미는 공구. 평밀이·골밀이·등밀이·살밀이·개탕·쌍사밀이·귀접이·돌림·배꼽·소반대패 등.
    ⑤ 변탕 : 턱이 지게 깎을 때 쓰는 공구. 먹기·턱깎기 등.
    ⑥ 훑이기[鋋]: 둥근 면을 길이로 깎을 때 사용하는 공구.
    ⑦ 톱[鋸]: 나무를 자를 때 쓰는 공구. 탕개톱·옆탕개톱·쥐꼬리톱 등.
    ⑧ 송곳[錐]: 구멍을 뚫거나 넓힐 때 쓰는 공구. 돌대·활비비·네모송곳·타래송곳 등.
    ⑨ 줄〔鑢〕: 거친 표면을 갈아내는 공구. 비탕·어피줄 등.
    ⑩ 자귀〔釿〕: 재목을 깎거나 다듬을 때 쓰는 공구.
    ⑪ 까귀: 날이 가로로 되어 깎기 편하게 된 공구.
    ⑫ 끌〔鑿〕: 재목을 파거나 다듬을 때 쓰는 공구.
    ⑬ 망치 : 끌을 두들길 때 쓰는 공구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가구의 장식양식
  1. 1. 가구의 문양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 같이 불교가 성세를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부녀자를 중심으로 한 민간신앙이 뿌리를 내려 후기에는 동학사상과 더불어 다신교적 잡신을 숭배하는 원시사상과, 도교를 중심으로 한 신선사상이 널리 유행하였다. 즉, 악귀를 쫓고 수복을 염원한 부적관념(符籍觀念)이 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에서 나타난 문양이 자연문(自然文)·관념문(觀念文)·서수문(瑞獸文) 등이다. 초기 나전이나 도기에 사용되었던 연당초문(蓮唐草文)·보상화문(寶相華文)·쌍봉문(雙鳳文)·쌍룡문(雙龍文) 등이 가구에 나타나면서 서수문으로는 불사조·용·봉황, 서초(瑞草)로는 8보(八寶)·연꽃·불로초 등이 많이 쓰였다. 그리고 불교적 문양으로는 여의두문(如意頭文)·안상문(眼象文)·뇌문(雷文)·태극문(太極文)이 연당초의 대문(帶紋)과 더불어 쓰였다.
    후기에 이르러서는 전란과 당쟁의 불안·초조 속에서 재앙을 면하고 장수와 수복강녕을 기원하면서 자연을 사색하게 되었다. 이러한 염원이 봉래산(蓬萊山)·선도(仙桃)·십장생(十長生 : 산·물·나무·돌·구름·풀·사슴·거북·소나무·해) 등의 문양과 오복을 상징하는 박쥐, 부귀를 나타내는 모란, 다남(多男)을 상징하는 석류 등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사대부의 청빈한 사상을 표출하는 매·난·국·죽의 4귀신(四貴神), 즉 군자의 네 가지 기질인 용기·우정·고아(高雅)·절개를 사랑방가구에 잘 표현하였다.
    그리고 17∼18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학풍인 실학사상이 대두되자 점차 왕실 등 특권계층에서도 민가공예화하면서 산·새·곤충·악기·책거리·쌍희(雙囍) 등과 같이 명랑하고 아름다운 문양으로 변화하였다. 이와 함께 수복을 곁들인 기하학·길상 문양이 표출되어 실증적이고 독창적인 한국적 문양을 남기게 되었다.
  1. 2. 가구의 금구장식
    금구장식이란 동석계(銅錫系)인 백동·놋쇠·주석과 철계인 시우쇠·무쇠 등의 금속판을 여러 모양으로 오려 그 위에 문양을 새기거나 조각하여 목기물에 부착한 장식을 말한다.
    금구장식의 문양으로는 앞서 말한 자연문·관념문·서수문도 많지만, 투각(透刻)하거나 선각(線刻)한 만자문(卍字文)·희문(囍文)·수복문(壽福文)이 많고 호리병·제비초리·달개지쇠·박쥐·불로초 모양이 가장 많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배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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